환경을 위해 휴대용 잔(일명 : 텀블러)을 쓰고, 음식은 먹을 만큼만 요리해서 남기지 않고, 재활용 가능한 용기는 분류하고 씻어 내놓는 번잡하고 귀찮지만 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환경과 기후에 대한 작은 실천을 역행하듯 대중매체는 여전히 삶을 위해 다양한 그리고 많은 소비를 세뇌시키고 있으며 끈질기고 자연스럽게 권유하고 있다. 다양한 SNS 형태와 미디어 형태에 발맞춰 소비를 요구하는 광고 또한 그 노출 방법이 진화되고 있다. 광고는 시청자 혹은 구독자가 보는 화면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보이거나 대중이 많이 보는 예능이나 드라마에 협찬을 넘어서 간접광고라는 이름을 달고 프로그램 중에 그 시용 장면을 삽입해 노출하고 있다.
이런 여러 형태의 광고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필수품으로 오인되는 품목들이 이웃들의 새로운 소비 목록과 더불어 늘어만 간다. 그리고 그 목록 덕분인지 서울에서 대구로 거주지를 일시적으로 옮기면서 의아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울의 도심은 심각한 공기 오염으로 외부에 빨래를 건조시키는 경우 빨래의 의미가 무색해 지는 일이 발생되어 실내 건조대 설치나 건조기 사용이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대구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지 않아 외부에 빨래를 널어놓을 수 있고 특히 여름에는 고온 건조한 기후로 2시간 30분이면 빨래가 완전히 마르기 때문에 자연 건조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서울보다 좋은 자연 건조 조건을 가진 대구에서도 빨래 건조기를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어 의아했다. 그래서 대구에 거주해온 지인에게 외부에 빨래를 말리지 않고 건조기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답변은 생각보다 즉각적이었다. 먼저, 편리성을 들었다. 빨래를 외부에 널었다가 빨래가 마르면 다시 수거 후 개서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건조기 사용 후 바로 빨래를 개서 넣을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으며 다음 이유로 옷에서 발생되는 많은 먼지는 건조기에 넣어야 해결할 수 있다는 필요성을 꼽았다. 지인이 이야기 해 준 이 두 장점은 건조기 판매 사이트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선전되고 있었다. 이 싸이트에서는 건조기의 전력 소비량에 대해 세탁기보다 조금 높은 정도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건조기를 통해 옷의 먼지 해결을 강조하고 있어 환경에 유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업들의 광고 효과로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불필요한 물건의 구매 욕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소비자의 편리성에 대한 개념도 타인의 노동에 의한 고마움이 아니라 자신의 재력에 의한 당연한 권리로 변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배달 음식은 일반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없어서는 안 되는 서비스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배달 관련 사업은 증가 되고 있으며 관련 광고도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 소재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거 평온권 등을 이유로 단지 내 오토바이 주행이 금지되어 오토바이 배달의 경우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서 주문자의 아파트 입구까지 도보배달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제50조 3항에 따르면 이륜차 운전자의 경우 인명보호장구의 착용이 의무화 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한 경우 범칙금을 내야 한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 38도의 한 여름 낮에 헬멧을 착용한 상태에서 또는 헬멧을 벗어 놓고 넓은 단지를 뛰거나 걸어 소비자의 집 앞에 배달해야 하는 노동자는 정당한 지불 관계에 있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입장과는 또 다른 입장에 놓이게 된다.
물론, 이 도보배달의 배경은 여러 가지 입장이 얽혀 있다. 2007년에는 이륜차의 운행으로 인한 소음 및 매연 그리고 이륜차 특유의 속도와 인도 주행으로 보행자 특히 어린이들의 보행권 위협 등으로 오토바이 배달을 지하주차장으로 제한하는 아파트 단지가 늘었다. 이 경우는 정원형 아파트 단지의 특성을 살리고자 배달의 수단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경로를 변경하는 것으로 아파트 입주자들의 차량 또한 지하를 이용하고 있었으나 2020년부터 문제로 제기된 단지 내 도보배달의 경우는 배달 경로의 변경이 아니라 배달 수단의 변경을 요구하며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부터 이륜차를 정차시킨 후 도보배달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배달기사는 도보배달이라는 노동에 비해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이 되어 부당하다고 하면서도 도보배달을 거부하는 경우 배송의뢰가 감소되는 불이익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배달을 한다.
위에 제시된 두 가지 사안 모두 언뜻 보면 기후위기와 무관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소비를 촉진하는 사회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탄소사회의 한 모습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의 결과로 예견된 팬데믹과 사회 노동약자의 인권 문제들과도 필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일상이라고 불리워지는 이웃과 사회의 현상들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멈추어 생각해 보는 것이 인권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삶에 대한 결정권의 일환으로 소비재와 타인의 노동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삶에 대한 결정권으로 ‘공생하는 소비’란 무엇이며 ‘편리를 제공해 주는 이웃 노동자의 인권’은 어떤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더운 여름이라도 손끝의 노트북 자판이 뜨거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되뇌며 이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