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과 공장 사이 담벼락을 넘어 함께 모이고 움직일 공간, 그 공간이 되자는 포부로 2013년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이 시작됐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으며 고군분투해왔다. 전국 공단지역 사업단과 공동으로 진행한 임금인상요구를 비롯해 매년 노동환경, 인권침해, 직장 내 괴롭힘,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영향, 그리고 올해 진행한 쉴 권리까지 꾸준히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공단노동자의 권리 현실을 확인하고 드러내 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달 안산역 광장 문화제를 열고 상담부스를 운영하면서, 매주 소식지와 선전물을 배포하면서 공단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월담이 있다는 것을 알려왔다. 안정적으로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바라며 ‘노동자권리찾기’ ‘단결투쟁’ 뱃지를 만들어 열심히 판매했고 지금의 사무실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해왔다. 지역의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공단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한 지역운동의 방향을 토론하고, 안산만원행동과 화학물질조례제정운동처럼 공동의 실천을 벌이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지금도 이어지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역사회에서 함께 목소리 내고 행동해왔다. 어느덧 8년차를 맞으면서 그렇게 쌓아온 시간이 공단노동자들에게 어떻게 가닿고 있을까 질문이 생겼다. 사랑방과 더불어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변혁당 경기도당 등 여러 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월담을 일구어왔는데, 이제 월담의 활동이 가지는 의미에서 나아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작년부터 논의를 이어오면서 노조로의 전환을 결정하였다.
일용직, 파견직으로 일하면서 시급이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찾아 이동하며 노동자들은 부유한다. 이러한 공단에서 사업장 노조를 넘어서야 한다는 고민이 월담의 시작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이라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해있는 공단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다루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조건은 그저 회사가 작고 영세해서, 또는 사장이 나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한 사업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촘촘한 원하청 사슬의 작동, 사람을 일회용품으로 바꾸는 파견의 성행, 이럴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치권이 얽혀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이렇게 구조적인 힘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것, 월담은 개별사업장을 넘어 공단노동자 공동의 문제로 함께 목소리 내고 변화를 바라는 이들과 함께 할 공단지역노조를 그려왔다.
지난 8년 월담과 함께 움직일 노동자들을 기대하며 기다려왔지만, 그리고 예상한 것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월담이 하는 활동에 대해 ‘필요한 일’이라는 공감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체념을 마주해왔다. ‘좋은 일’이지만 시간과 마음을 보태기엔 여력을 내기 어려운 게 공단노동자들의 물적 조건이기도 했다. 월담이 그간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오랜 논의 끝에 노조로의 전환을 결정한 것은 ‘리스타트’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월담을 시작하며 그린 공단지역노조가 공단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과정을 거치며 만드는 결과물이었다면, 월담노조는 공단과 지역에 변화를 만드는 과정으로서 우리가 공단지역노조로 움직여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포부를 갖고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이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노조’로 새롭게 거듭난 자리, 10월 16일 토요일 월담노조 창립총회가 열렸다. 칼바람이 부는 유난스러운 날씨였는데, 가장 먼저 현장팀으로 월담과 함께 해왔던 동지가 지난 시간을 알려주듯 그 사이 태어나 훌쩍 자란 아이와 함께 축하를 전해주고 갔다. 시작 시간인 3시가 되자 월담노조의 출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많은 분들이 사무실 자리를 빼곡하게 채워주셨고 온라인으로 함께 해주셨다. 창립총회에 앞서 함께 자리한 서로를 소개하며 그동안 만나왔던 지역의 노조와 단체 활동가들로부터 덕담(?)을 들었다. ‘버려진 곳’이라고 말하게 될 만큼 외면당하는 공단의 현실을 꾸준하게 고민하는 모습에 지역의 이웃단체로서 든든했다는 이야기, 공단 곳곳 투쟁의 깃발이 힘차게 나부꼈던 과거의 기억을 나누어주면서 다시 새롭게 움직이는 월담이 그러한 힘을 만들어가길 바란다는 이야기, 새로운 노조의 틀을 시도하면서 성과를 조합원 수가 아니라 다른 의미들로 발견하길 기대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영상메시지로, 웹자보 편지로 다른 공단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와 노조에서도 연대와 축하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눈에 보이는 당장의 조직화의 성과보다 눈을 맞추고 마음을 들여다보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노동조합이 되길 바란다”며 ‘동지노조’가 생겨서 기쁘다는 이야기는 월담노조가 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듯했다.
배제와 차별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가 배제된 작은 사업장 노동자와 함께 하는 노조
자본의 책임 전가를 넘어! 원청이 하청에,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노조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현장의 변화를 위한 고민과 실천을 사업장 넘어 공단 전체로 확대해가는 노조
월담노조가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을 이렇게 확인하면서 이어진 총회에서 규약을 제정하고 임원을 선출하였다. 상근자로 그동안 월담을 묵묵히 지켜온 이미숙 동지가 위원장으로, 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로 많은 현장 투쟁을 함께 해왔던 임용현 동지가 사무국장으로 선출되었다. 넓디넓은 공단에서 우선 우리 사업장이 있는 블록에서부터 노동자들과 함께 만나고 도모할 수 있길 바라며 월담과 함께 해온 노조, 매달 월담 문화제마다 상담부스를 지키면서 월담의 조력자로 함께 해준 법률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월담노조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힘을 모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 8년의 시간 위에서 리스타트 하는 월담노조, 월담노조로 움직여가는 시간이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공단의 현실 앞에서 각자 버티거나 떠나거나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우리가 모이고 뭉치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으로 바꾸어가길 기대한다.
새롭게 단장한 월담노조 블로그 https://goover20000.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