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후원인 인터뷰에서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수 님을 만났습니다. 청소년 인권운동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 쉼터 활동까지, 수수 님이 활동해온 궤적을 짧게나마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수수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청소년 인권운동을 했고, 지금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주 예전에 어쓰와 함께 카페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도 있어요. (웃음)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열림터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겠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는 반성폭력 운동을 하는 단체고, 열림터는 상담소의 부설 기관으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머무는 쉼터에요. 입소하는 데 나이 제한은 따로 없지만, 주로 친족성폭력 피해 청소년들이 많이 입소하는 공간입니다. 한국에서는 쉼터의 종류가 다양하고 각자의 특성이 있는데요, 열림터의 경우에는 말하자면 ‘중장기 청소년쉼터’와 비슷한 형태에요. 긴급 지원이나 단기 지원보다는 입소하는 생활인들과 장기간 함께 머물고 생활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청소년 인권운동에서 열림터까지, 수수 님이 활동해온 궤적이 궁금해지네요.
제가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다가 대학원에 갔는데요, 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되니 아무 소속도 벌이도 없다는 점이 불안해졌어요. 그때 상담소에서 일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마침 열림터에서 활동가를 모집하고 있으니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었어요. 열림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던 것은 아니라서 관련 자료와 책을 찾아봤고, 청소년들이 많은 생활 공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죠. 아무래도 청소년 인권운동을 해왔던 만큼 청소년 당사자가 많은 곳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또 그 당시 학업에 너무 지쳐있던 때라서, 활동할 수 있는 현장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도 컸어요. 그렇게 열림터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접하는 활동 공간에서 적응하는 과정은 어떠했나요?
막상 와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제가 이전에 친구들과 함께 집을 구해서 살았을 때나 ‘빈집’과 같이 공동체 운동을 지향하는 곳에서 머물렀을 때 경험한 공동 주거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고 할까요. 저는 공동 주거라고 할 때 자치적으로 생활을 꾸리고,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논의를 통해서 운영하고, 서로를 일상적으로 돌보는 방식에 익숙했거든요. 그런데 열림터는 ‘활동가=지원하는 사람’과 ‘생활인=지원받는 사람’이라는 경계가 있는 공간이었던 거죠. 물론 항상 일방적인 관계만 맺는 것은 아니지만, 주로 열림터 활동가들은 지원자의 포지션이고 생활인들은 돌봄을 받는 쪽이라는 게 처음에는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가령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고 한다면, 저에게 익숙한 방식은 그걸 발견한 사람이 직접 뚫어보려고 노력하거나, 수리공에게 연락하거나, 아니면 공동의 논의를 통해 해결 방식을 찾는 쪽이었어요. 그런데 열림터에서는 생활인이 저에게 “선생님! 화장실 변기 막혔어요!”라고 말하고 그 현장을 떠나는 식이에요. 언제나 ‘함께 논의해서 함께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방식’에 익숙했는데, 제가 소위 ‘어른’이자 ‘보호자’로서 역할하기를 기대받는 상황이 당황스러웠어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방식의 관계 맺음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 같아요.
이전에 청소년 인권운동을 할 때나 공동 주거를 할 때나, 저는 주로 동등한 활동가들끼리 지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활동가와 피지원자가 각각 따로 있는 공간, 각자의 권한과 발언력이 다른 공간에 오니 낯설었죠. 처음 열림터 지원을 염두하면서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라는, 열림터의 20년 활동을 정리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책에서 통금 시간, 휴대폰 사용 규제, 생활 규칙 등으로 인한 열림터 내부의 갈등을 접했어요.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접했던 쉼터는 주로 청소년을 억압하는 공간이기도 했으니 더더욱 내가 쉼터에서 활동해도 될까 하는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림터의 경우에는 사회복지기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의 부설 기관이기도 하잖아요? 상담소와 열림터에서 페미니즘의 주요한 가치인 ‘평등’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함께 살아보니, 상담소와 열림터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과는 별개로 생활인들이 나에게 선생님, 혹은 엄마가 되어주기를 요구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거죠. 이게 정말 돌봄인가, 혹은 지나친 개입이나 통제일까,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종류의 활동인 것 같아요. 그런 걸 정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그럴 때 열림터를 포함해서 쉼터에서 생활인과 맺게 되는 관계의 특징 중 하나는, 해당 생활인이 언젠가 쉼터를 떠나게 된다는 점이에요. 쉼터마다 머무를 수 있는 기간은 다르지만 어쨌든 계속 쉼터에 살 수는 없으니까요. 이 사람이 열림터를 떠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될 테니, 그때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역량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쉼터 활동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해요. 그래서 혹시 내가 생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활인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 들거나 간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될 때면 ‘이 사람이 열림터를 나간 후에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과정’의 중요성을 떠올리려고 해요. 물론 모든 생활의 순간이 이렇게 깔끔히 정리되지는 않고, 실제로 제가 정말로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통제하려는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죠. 그럴 때면 왜 내가 이렇게 간섭하고 있을까, 나의 욕구는 뭘까, 다시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해요.
제가 요청을 드리기도 전에 먼저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이 되어주셨는데, 사랑방을 후원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랑방과 구체적으로 함께 활동한 경험은 없는데요, 그럼에도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던 시절부터 사랑방에는 괜히 친숙함과 친근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실 청소년 인권운동의 문화와 방식 등은 사랑방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 간의 수평적 문화를 강조하며 직위와 직책을 두지 않는 점이라거나, 의제를 발굴하고 띄우는 방식이라거나. 아마 청소년 인권운동을 초기부터 함께 일궈온 류은숙 활동가, 배경내(개굴) 활동가, 고은채 활동가와 같은 이들이 당시 사랑방 소속이었다는 점도 영향이 있었겠죠? 제가 청소년 인권운동을 했던 시기는 운동의 초창기에서 시간이 조금 흐른 뒤였지만, 사랑방과 함께 사무실을 쓰는 인권교육센터 들 회의실을 빌려서 사용한다거나, 현재 류은숙 활동가가 있는 인권연구소 창에서 세미나를 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알게 모르게 마주칠 일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괜히 ‘사랑방은 청소년 인권운동과 가까운 단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듯해요. 원래부터 언젠가는 후원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제가 열림터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수입이 생기고, 또 청소년 인권운동의 동료였던 어쓰가 사랑방에서 상임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후원을 시작했어요.
사랑방 활동 중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이 있나요?
사랑방이 참여하는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이하 코인넷) 활동을 종종 찾아봐요. 코인넷에서 발표한 입장을 검색해보거나, 사랑방 소식지에서 공유해주는 코인넷 소식을 눈여겨보게 돼요.
제가 지금 쉼터에서 일하고 있다 보니까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받는데, 이 지침이 너무 별로일 때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서 쉼터 생활인들의 외출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지침이 몇 개월씩 이어졌어요. 이게 사실 말이 안 되잖아요? 전 사회적으로 외출을 금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쉼터는 감염에 취약한 공간’이라는 이유로 쉼터 생활인들에게만 전면적 외출 금지 지침을 내리는 식이에요. 만약 정말로 쉼터가 감염에 취약한 공간이라면, 예를 들어서 쉼터 활동가들과 생활인들에게 백신 접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냐고 하면 또 그것도 아니거든요. 새로 쉼터에 들어오는 생활인들은 PCR 검사를 받아서 음성을 증명해야 하고, 심지어 쉼터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에게는 매주 한 번씩 PCR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까지 내려왔어요. 이렇게 문제적인 방역 지침을 접하게 될 때, 코인넷에서 방역 정책을 비판하며 발표한 입장을 읽고 힘을 받았어요. 나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내 편이 있구나 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사실 다른 쉼터들에서는 이런 식의 지침에 별로 문제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도 함께 문제라고 말해줄 곳이 있다는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저희가 서로 너무 바쁘기도 하고, 둘 다 쉴 때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성격인지라 자주 못 만나곤 하잖아요? 혹시 집에서 쉬실 때는 주로 뭘 하시나요?
OTT 서비스를 많이 구독해서 보고 있어요. 넷플릭스, 왓챠, 애플TV, 디즈니 플러스, 쿠팡플레이 등등 구독한 서비스가 많아요. 긴 시리즈물보다는 주로 영화를 많이 보는데요. 요즘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마블 영화들을 정주행하는 중이고, 최근에 캡틴 아메리카랑 캡틴 마블을 봤어요. 미국 특유의 애국심을 강조하는 내용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재밌게 봤네요.
마지막으로, 사랑방에 한 마디 남겨주시겠어요?
사랑방과 사랑방 활동가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바라는 게 있다면, 사랑방 후원인이 많이 늘어나고 상임활동가들의 활동비도 올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어쓰가 저와 함께 맛있는 것들을 풍족하게 먹고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