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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손수건

대용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되었을까. 기억도 가물가물한 언젠가 엄마의 생일이라고 '문방구'에 들렀다. 이 물건, 저 물건을 뒤적거리니 주인장이 뭐 사려고 그러는지 물었다.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려고 한다니 손수건을 추천해주었고, 가진 용돈 전부와 손수건을 맞바꾸었다. 10살 정도의 어린이가 손수 물건을 고르고, 선물하는 행동을 떠올리니 지금와서 생각해도 기특하다는 마음이 드는데, 당시 엄마는 어린 자식이 얼마나 기특했겠는가. 그 칭찬이 좋아서 문방구에서 이런 저런 작은 물건들을 사서 엄마에게 이런 저런 선물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취향 아닌 물건을 싫어하는 엄마는 3번을 넘기지 못하고 고마운데 이제 사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마 마지막은 카네이션 조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음을 담기만 하면 선물이 되는 것이라 여기던 어린이에게 마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어쓰

그 전까지는 손수건을 들고 다닌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2011년 희망버스 때 받았던 손수건은 아주 유용했던 기억이 있다. 찌르는 듯한 영도의 햇살도, 흐르는 땀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최루액 냄새도, 난데없이 쏟아지는 비도 조금이나마 막아주었던 진홍색 손수건. 지금의 나는 여전히 손수건을 들고 다니지는 않지만, 몇 번의 희망버스를 거치며 조금 너덜너덜해진 그 때의 손수건 만큼은 아직도 서랍 한 켠에 보관하고 있다.

정록

손수건을 사본 적도 없고, 사용한 적도 없다. 얼마 전에 미류에게서 손수건을 선물 받았다. 갖고 다니면서 사용해볼 요량이었는데, 개시를 못하고 누군가를 빌려줬다. 그분이 세탁해서 돌려주시겠다고....

민선

머나먼 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된 지인에게 선물을 하고 싶은데 정말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짐이 되면 안될텐데 뭐가 좋을지... 돈이 최고라곤 하지만 웬만한 액수도 아닌데... 그러다 떠오른 게 손수건이었어요. 한국에서 온 티가 살짝쿵 날 문양이 새겨진 손수건에 그리울 거라는 마음도 조금 포개 전했습니다.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힘껏 응원하면서.

지난 2년 동안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하며 무수히 많은 물품들을 제작했는데, 그때마다 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게 바로 작년 가을 30일의 도보행진을 준비하며 만들었던 노란색 손수건이었다. 단 며칠 안에 바로 제작이 가능한 (땀흡수는 기대할 수 없는) 아문젠 원단을 선택하고 디자인도 맡길 시간이 없어서 저해상도 인쇄를 감수했던...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는데도 막상 받아보고 나니 왜이렇게 아쉽던지. 37년만에 일터로 돌아가는 날 푸른 작업복과 함께 김진숙 지도 목에 둘러진, 단식투쟁 기간 내내 종걸의 무지개 손수건과 함께 미류의 목에 둘러진 그 노란색 손수건 덕에 아쉬움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을 것 같아' 도보행진을 담은 다큐 <평등길 1110> 상영회마다 여전히 남은 손수건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소중히 여겨주는 동료들 덕분에도~

미류

방에 있던 물건들을 한차례 정리했다. 입지 않는 옷, 쓰지 않는 물건들을 꺼내어 일부는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고 버릴 것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그 중 가장 난감했던 게 손수건이다. 꽤나 많이 쌓여있는데, 통 쓰게 되지 않는 것. 버릴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잘 써보기로 결심. 가제손수건을 들고 다니며 땀을 닦고, 조금 빳빳하고 큰 손수건은 여기저기 깔개처럼 쓰고, 어떤 것들은 목에 두르고. 열심히 써볼 요량인데, 왜 이런 마음을 먹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복귀하기 전 사랑방 동료들에게 손수건을 선물하면서는 이렇게 말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정의운동 하려면 손수건 정도는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 응? ㅋㅋ

해미

손수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랐던 장면 둘. 하나는 여성이 닭똥 같은 눈물을 콕콕 찍는 장면, 또 다른 하나는 등산하는 중년 남성이 흐르는 땀을 닦는 장면. 둘 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손수건의 존재를 괜스레 꺼리던 와중, 예상치 못 한 곳에서 손수건을 다시 만났다. 톨게이트 수납노동자가 있는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종착지로 하는 희망버스에 수많은 사람들과 보라색 손수건들이 몸을 실었다. 우리 몸 곳곳의 선명한 보라색 손수건들은 경찰의 단단한 플라스틱 방패들을 뚫고 우리를 연결했다. 아마 김천을 수놓은 현수막 중 가장 강력한 현수막은 보라색 손수건이었을지도. 그 이후로 손수건 선물은 눈물과 땀을 흘리는 순간도 함께 하자는 의미 같아서 항상 반갑다.

다슬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희망 버스를 타기 전에 받았던 손수건을 보니... 예전에 세월호 집회 때 받은 노란 손수건이 생각난다. 집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노란 손수건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모르는 사이여도 속으로 엄청 반가워했었다. 언제부터 집회 때 손수건을 나눠주기 시작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원

고3 때인가 가수 태진아의 노란 손수건이라는 노래가 발매되었다. 이 노래 후렴구의 중독성이 어찌나 강했던지, 손수건하면 태진아씨가 샛노란 손수건을 좌로 우로 흔들며 "미안, 미안해~ 미안, 미안해~ 너를 두고 여길 떠나가서 미안해" 라고 하는 장면만 떠오른다.까지 썼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그건 <노란 손수건>이 아니라 태진아의 또 다른 노래 <미안, 미안해>라고 정정해주었다.....잘못된 정보 미안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