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직은 ‘괜찮은’ 조직일까?” 아마도 많은 활동가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던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질문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운동 단체에서 정작 기존 사회의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반복되는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접하며 더더욱 고민하게 됩니다. 더 ‘괜찮은’ 조직이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인권운동사랑방은 2002년 ‘성차별금지 및 성폭력사건 해결을 위한 내규(반성폭력 내규)’를 제정한 바 있습니다. “사랑방의 모든 활동가는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지향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종류의 차별과 폭력을 거부하고, 특히 성(sex, gender, sexuality)에 기반을 둔 육체·정신·환경적 폭력 행위에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반성폭력 내규는 오랫동안 ‘성평등한 조직’이라는 사랑방의 지향을 대표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반성폭력 내규는 주로 성폭력 사건의 신고, 접수, 처리, 종결 등 이미 발생한 ‘사건의 처리와 해결’을 위한 절차를 담고 있습니다. 사건의 예방을 위해 연 1회의 반성폭력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조직문화에 대한 일상적 성찰과 변화를 담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나눈 지도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반성폭력 내규 제정 후 20년이 지난 지금, 사랑방에서 반성폭력 내규의 현재적 의미는 어떤 것이며,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과 성평등한 조직을 위해 어떤 고민과 역량이 필요할까요. 이러한 질문을 담아 지난 12월 15일, <성평등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 공동체의 원칙과 역할>이라는 주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오매 님을 모시고 2022년 반성폭력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성평등을 지향하는 조직-공동체에 던져진 질문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은 주로 권력과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드러내 왔습니다. 이는 곧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공간/조직/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피해자의 경험에 대한 사회적 인정, 사건 이후 피해자의 일상 회복,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과 이후의 변화를 위해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할 것입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을 위해서는 사건 처리절차뿐 아니라, 성평등한 조직을 만들어가기 위한 토론과 성찰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성폭력 사건, 특히 여러 지자체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는 성폭력 사건을 부정하며 조직을 비호하는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여성가족부 폐지를 말하는 현 정권의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문제 제기를 성실하게 들으며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문제의 존재, 혹은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조직/공동체를 유지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소위 ‘성폭력 부정주의’는 성폭력이 구조적 문제라는 인식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사건을 개인화하고 피해자를 고립시키며,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자원과 여론의 문제’, ‘조직 공동의 문제가 아닌 대립의 문제’로 왜곡시키며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을 어렵게 만듭니다.
성폭력 부정주의에 의해서 결집하며 유지되는 조직부터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여러 입장과 태도가 공존하며 토론되는 조직, 어떠한 사건이나 문제제기를 겪으며 지향을 다시 확인하고 토론하며 변화하는 조직까지, 성폭력 사건을 겪는 조직이 보이는 모습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건을 당사자끼리의 문제로 개인화시키지 않으며, 조직의 변화를 동반하는 해결을 모색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건 대응과 피해자 지원 활동에 함께 해온 오매 님이 나눠주시는 경험과 말씀을 들으며, 특히 성평등한 조직을 지향하는 사랑방에서 ‘공동체적 해결’의 의미를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평등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사랑방에서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 절차를 규정하는 반성폭력 내규의 역할과 의의가 이제는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반성폭력 내규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사랑방이 성평등한 조직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랑방이 지향하는 ‘성평등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현존하는 내규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최근 사랑방 주변의 운동 사회에서도 활동가 약속문 작성, 다양한 폭력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규정 마련 등 새로운 조직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운동 사회의 고민을 참고하며 사랑방에서도 성평등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반성폭력 내규의 존재를 핑계 삼지 않으며, 그렇다고 반성폭력 내규의 의의를 폄하하지도 않으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성평등한 조직의 모습을 그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