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인권운동사랑방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기꺼이 엮다 – 인권운동사랑방 30년>이라는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엮다’, ‘질문을 엮다’, ‘시대를 엮다’는 주제로 사랑방의 지난 운동을 돌아보며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방이 항상 개별 단체나 사업을 넘어 당시 사회운동의 상황과 시대적 조건이 제기하는 운동의 과제를 고민하며, 시대에 응답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는 사랑방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랑방의 30년은 서로 기꺼이 엮고 엮이며 함께 시대를 겪어낸 수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30주년을 핑계 삼아, 사랑방과 함께 다양한 활동들을 해온 동료 활동가 네 분과 <시대를 엮다>라는 제목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집담회를 가졌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득한 30년의 시간 자체를 돌아보기보다는 과거 사회운동의 문제의식을 현재에 비춰보며,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가 붙들고 있는 운동의 고민과 전망을 함께 나눠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와 함께 사랑방과의 인연, 함께 했던 경험을 나눠주시겠어요?
김건수 : ‘노동당 학생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건수입니다. 사랑방과는 기후정의동맹에서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전에는 ‘체제전환을 위한 청년 시국회의’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이 능력주의 담론과 같이 시대적 요구를 잘못 호도하는 여론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했을 때 사랑방을 찾아와서 조언을 구했던 적이 있어요. 우리가 이런 시대적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보고 싶은데, 보태줄 수 있는 말이 있는지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함께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타리 : 저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에서 활동하는 타리입니다. 사랑방과의 인연은 2003~2004년쯤 열린 제1회 전국 인권활동가대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인권활동가들을 처음으로 봤던 것 같아요. 그때는 사랑방이 국가폭력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오다가 소수자 인권이나 차별 이슈를 다루기 시작할 때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전국 인권활동가대회에 저희와 같은 소수자 단체를 초대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고요. 2005년에 인권하루소식 인권이야기 코너에 ‘타리의 인권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어요. 이후에는 반차별 공동행동이나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의 중요한 국면마다 만났고, 201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 투쟁 때도 많이 만났죠. 당시 서울시의회 점거를 고민하며 사랑방이랑 같이 회의했던 기억도 있어요. 또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2012년쯤에 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했었어요. 「수신확인–차별이 내게로 왔다」 출간 작업으로 이어졌던 ‘변두리 이야기 프로젝트’에 제가 참여했고, 그 당시에는 “이러다 상임활동을 하게 되려나?” 잠깐 생각하기도 했는데, 제가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그렇게 되지는 않았죠. 이 정도가 사랑방과의 인연과 공동 작업인 것 같습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타리, 김건수(위) / 박한희, 엄진령(아래)]
엄진령 : 저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활동하는 엄진령이라고 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안 지는 오래되었는데, 사랑방을 일상적으로, 그리고 옆에 있는 동지로 자주 보게 된 건 월담 노조(전 반월시화공단노동자 권리찾기 모임 ‘월담’) 활동을 하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전에도 다른 단체 동지들과 섞여서 이런저런 연구 사업이나 모임을 하기도 했지만, 사랑방의 여러 활동가들을 계속 꾸준하게 볼 수 있었던 건 월담 노조였죠. 제가 요즘은 조금 자제하려고 하는데, ‘사랑방스럽다’는 표현을 종종 했었거든요. 세상 진지하고, 모든 논의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데 특기가 있으신 것 같고, 뭔가 좀 아니다 싶으면 저 바닥까지 다시 다 끄집어 올려서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하고… 사실 이게 저희 단체의 스타일이랑은 되게 안 맞거든요. (웃음) 스타일이 너무 달라요. 그래서 맨날 “아우, 사랑방 또 왜 저래” 이랬죠. 한 10년 가까이, 월담이 2013년 가을에 출범했으니까 10년 정도 함께하다 보니 우리가 너무 듬성듬성한 면에 대해 배워야 할 부분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철폐연대가 가볍게 가는 부분에 대해 사랑방에서도 좀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요. 그래서 저에게 사랑방은 매사 진지한 동지들, 조금은 가볍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동지들이고요, 저와는 다른 활동 방식을 많이 고민하게 하는 동지들이기도 해요. 일단 인권단체 활동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말투가 되게 고운 분들이라, 저는 인권단체 회의에는 숨 막혀서 잘 안 갔어요. 저는 사실 말도 많고 목소리도 시끄러운 편이라서. (웃음)
박한희 : 저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희입니다. 사랑방 활동가를 처음 만난 건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하면서 미류와 몽을 만나고, 그 다음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에서 정록을,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 어쓰를, 이렇게 여러 연대 활동을 하다 보면 결국 사랑방 활동가를 다 만나더라고요.
정록 : 사랑방은 여러 명이 나눠서 하는 걸 한희님은 혼자서 다 하고 계신 거네요. (웃음)
박한희 : 그전에는 인권오름으로 사랑방을 접했어요. 잘 모르겠는 걸 논평이나 글로 써야 할 때 구글에 찾아보면 관련한 인권오름이 있어. 읽어보고 아,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하다 보면 논평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아카이브가 참 잘 되어있다고 생각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어쨌든 저는 이렇게 사랑방 활동가들을 여럿 만나왔는데, 앞서 진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랑방 활동가들은 전부 다 다른 사람인 동시에 사랑방 같은 어떤 느낌이 있었어요. 뭔가를 더 메우거나 빈 공간을 끌고 나가고, 새로운 논의나 담론을 계속해서 가져오고, 너무 치고 나간다 싶을 땐 브레이크를 걸고, 동시에 어떤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 같으면 만들어오고. 항상 많이 배우고 있는 동료들입니다. 사랑방은 연대체에 가면 언제나 있을 것 같아요. 또 사랑방이 껴있으면 연대체가 좀 굴러갈 수 있겠다는 든든함도 느끼고요.
엄진령 : 그래서 가끔 사랑방이 있을 줄 알고 갔는데 없으면 “왜 없지?” 싶기도 해요.
‘시대’와 ‘운동’을 고민하며, <시대를 엮다>
정록 : 본격적으로 집담회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대를 엮다”라는 제목이나 취지가 조금은 무겁고 어렵게 느껴지셨을 것 같은데요, 기획을 보고선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어떤 생각이나 고민이 드셨는지 나눠주시겠어요?
엄진령 : 집담회 기획 취지에 ‘개별 단체 차원의 개별 사업을 넘어 당시 사회운동의 상황과 시대적 조건이 제기하는 운동의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응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표현이 있잖아요? 30주년 홈페이지와 신문에 사랑방이 지난 30년 동안 해왔던 활동을 정리해둔 걸 보면서 들었던 느낌이 딱 이 표현이었어요. 그러니까 사랑방이 지난 30년 동안 이렇게 활동하기 위해서 애썼구나, 이런 게 좀 공감이 됐고 본인들도 이렇게 평가하는구나. (웃음) 그래서 운동이 어렵다고 다들 이야기하는 지금 이 시기에 그걸 뛰어넘기 위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구나, 취지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박한희 : 저희 희망법도 작년에 10주년이었는데, 이번 집담회 기획을 보고 사랑방은 참 행사를 빡세게 준비하는 곳이다 싶었어요. 저희도 10주년 준비하다가 사랑방에서 예전에 20주년 행사했던 걸 두고 ‘우린 그렇게는 못하겠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했거든요. 보통 30주년을 맞으면 그간의 성과를 자랑하며 후원을 모으곤 하는데 그게 아니라 이렇게 시대를 엮자고 주문하는 게 정말 사랑방답기도 하고. 또 사랑방이기에 던질 수 있는 질문 같기도 해요. 사랑방이 여러 시기마다 입장과 운동을 엮으며 조직해온 흐름이 있기에 가능하다 싶어요.
타리 : 지금 시대를 두고 봤을 때, 인권운동뿐 아니라 운동 전반에서 제도화와 체제내화에 대한 고민이 있잖아요. 가령 운동이 자꾸 전달체계처럼 작동하며 정작 해방과는 멀어지고, 그렇게 운동이 길들여진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집담회 기획을 봤을 땐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 집담회가 사랑방의 30주년을 위한 자리이기는 하지만, 또 사랑방이 나에게 운동을 고민하게 해주는 자리이기도 하구나 싶었어요. 각자의 영역에서 움직이는 활동가들이 자신의 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이 운동이 해방으로 가는 걸 방해하는 내외부적인 장벽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청하는 자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왔습니다.
김건수 : 저는 지금이 무슨 시대인지를 질문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의아하게도 답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체제 전환이라는 구호와 목표 아래 활동하는 것 같은데 지금 시대를 한 번에 규정하기 힘든 건 왜일까… 그 이유가 고민되기도 했어요. 저는 시대를 묻는 일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시대를 엮는다는 말은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우리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또 한계와 과제를 밝히며 다음을 그려내는 일이지 않나 싶었죠. 사실 4차 산업혁명, 기후위기, 검찰 공화국이나 윤석열 시대와 같은 주류적인 시대 규정은 있는 것 같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시대를 엮는다’는 우리의 말은 곧 우리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지금의 시대와 불화하는 존재들로서 다른 시대를 고민한다는 말이기도 한 것 같거든요. 결국 시대를 엮자는 말은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질문일 수밖에 없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왔습니다.
지금은 어떤 시대로 기억될까
정록 : 건수님의 질문처럼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금 시대가 이전 시대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소박한 ‘진보’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배 세력이나 권력자도 너무나 명확히 자신들만의 생존을 도모하고, 사람들 역시 각자도생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 시대. 동시에 기후 재난이나 전쟁 등 물리적 조건이 사람들의 인식을 사로잡는 시대가 지금의 시대인 것 같아요. 그 누구에게도 지금 잘 가고 있고, 앞으로도 잘 될 거란 믿음이 없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이미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 인식에 대한 생각, 각자 활동 영역에서의 어려움과 고민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엄진령 : 최근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자주 들었던 고민이 있어요. 세월호 참사나 구의역 사고, 김용균 투쟁 등을 쭉 겪고 그에 사회운동이 대응하며 시민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고, 사회가 최소한 생명과 안전의 문제에선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게 우리의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이태원 참사 추모제 하루 종일 들었어요. 비정규직 문제도, 수십 년 승리와 패배를 오가며 이어왔던 노동자 투쟁이 쌓이며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와 불안정 노동이 옳지 않다는 사회적 공감 정도는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문재인 정부 때 다 뒤집혔잖아요. 우리는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착각했구나. 우리가 바꿨다고 생각한 부분이 권리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는 연민과 동정이 있을 뿐, 언제든지 공격당할 수 있구나. 그런 고민을 최근 이태원 참사를 보며 다시 한번 하게 되었어요. 늘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계속 활동 속에서 성과를 찾고, 또 이것들이 쌓이는 걸 보며 힘을 내기도 하는데, 이게 사회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까지 밀어붙이는 힘까지는 이르지 못하니 언제라도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드는 거죠.
박한희 : 코로나19 확산 이후 방역을 근거로 삼은 인권침해가 계속 있었잖아요.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에서도 계속 이야기는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요. 국제인권규범이나 국제 인권법을 아무리 가져오고, 소위 ‘인권 선진국’은 이렇게 하니 우리도 이 정도는 가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이게 다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드니까… 사실 유엔 메커니즘이 항상 답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걸 통해서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코로나19도 그렇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렇고 이제는 유엔이 거의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규범이 이러하다’는 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걸로 드러났잖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외부의 규범이나 해외 사례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인권의 원칙을 얼마나 더 얘기할 수 있을지,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고민이에요.
그런데 동시에 현실 속에서 인권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꼭 차별의 피해자나 피해 사례로만 귀결되는 데 대한 문제의식도 있어요. 최근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도, 기자들이 연락 와서 요청하는 게 다른 성소수자 커플의 차별 사례를 듣고 싶다는 거예요. 극적인 피해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사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인권의 언어로 이야기되어야 하는데 그게 더 힘든 거 같아요. 사회운동이 그냥 피해를 받은 누군가를 구제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세상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 건지를 잡아야 하는데, 그게 지금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김건수 : 문재인 정권 이후에 20대 대선을 앞두고, 저는 활동가로서 조금 신이 났어요. 소위 ‘이대남’이라 표현되는 청년 남성이 겪는 고용, 주거 등의 어려움도 결국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인 거잖아요. 그런데 보수 정치인까지 나서서 비정규직 사용 금지 조항 같은 걸 공약에 넣겠다고 하니 기대감이 생긴거죠.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못 살겠단 우격다짐이 이제 확실히 정치권에 반영되려고 하는구나. 시대가 정치를 끌어내고, 또 시대가 정치를 초월할 거라고 본 거예요. 그럼 사회운동도 힘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진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보고, 시대가 왜곡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흩어져버리는 느낌을 좀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랬을 때 지금 저의 고민은 이런 거죠. 민주당이 자신들의 맥락에 국가가 기본적인 걸 책임지고 보호하겠다는 그런 국가 책임의 논의를 일정 정도 반영하여 주장하고 있는 건데, 그럼 사회운동은 이런 상황에서 고립되지 않고 확장되기 위해 담론을 어떻게 엮어내고 주도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판을 짤 것인가. 계속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윤석열이라는 막강한 적에 맞서 전선을 확고하게 그으며 단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확장을 가능하게 할까? 시대에 응답한다, 시대를 엮는다고 할 때에는 자기주도적인 관점을 가지고 시대를 바라봐야 하는데, 계속 지치는 상황을 마주하는 거죠.
타리 : 건수님 이야기를 듣다보니 더 그런데, 활동가로서 시대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진짜 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냥 지금 여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세상이 망해가고 있는 듯한 느낌 정도는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느낌과 내가 활동가로서 지금 하고 있으며 해야 하는 일을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점점 더 어려워요. 그래서 출근하고 나면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을 하면서, 뉴스나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이나 아득함에 대한 기분을 조금 내려놓으려고 하거든요. 좁으면 좁고 넓다면 넓은 나의 운동 지형에서 이렇게 매일매일 뭔가를 쌓아나가며 준비하는 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수도 있다는 그런 느낌으로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에 대한 분노는 점점 커졌죠. 사회운동을 진짜 망치는 건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의 국가는 시장을 보조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기후정의 활동가들이나 연구자들이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국가랑 싸우는 게 제일 마음 편하죠. 시장이랑 싸운다고 생각하면 진짜 너무 막막한데, 한편으로는 지금 이 시장 논리에 완전히 갇혀 있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어떻게 운동으로 견인해 나갈지가 고민이에요. 예를 들어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고 헌법 불합치를 이끌어낸 뒤에는 이제 행정부, 입법부와 싸워야 하는데, 이미 기재부를 비롯해서 시장질서를 최우선 국정 가치로 삼는 이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는 어렵고, 이전의 운동과 달라져야 한다고 느끼는 지점이 분명 있는 것 같아요.
권리 담론과 사회운동의 보편성의 위기
정록 : 말씀들을 듣다보니 결국 지금 시대에서 사회운동의 이야기나 주장이 보편적인, 모두의 것으로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어려움이나 난감함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전에는 운동이 어떠한 대의나 도덕적인 정당성, 혹은 모두를 위한다는 보편성을 가졌던 것 같은데, 그런 게 점점 침식되는 지금 상황에서는 사회운동이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민주당과 가까운 세력으로만 보이는 거잖아요. 이런 프레임으로 윤석열이 지금 공격하고 있는 거고요. 그렇게만 이해되니까 사회운동의 모든 주장과 이야기들이 정쟁처럼 보이는 처지에 내몰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진령 :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민주노조가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정서가 있었는데, 사실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거나 민주노총을 탈퇴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당선되는 경우도 있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철폐연대에서 고민했던 건, 우리가 한동안 사회가 달라지고 운동의 성과가 쌓이고 있다는 인식 때문에 오히려 기본적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할 것을 놓쳤나 싶은 거예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 같이 투쟁하고 고민하면서 산별 노조를 만들기도 했던 시기가 있잖아요. 그 이후 한 10년 사이에 철폐연대는 이제 노동조합이 없는 미조직 노동자, 작은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고민을 이어왔는데, 정작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을 이어오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에 와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뿐 아니라, 노동조합이 있는 노동자와 없는 노동자가 구분되면서 결국 노동조합이라는 단결할 권리 자체가 공격당하는 상황도 생기는 거죠. 정말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노동삼권이란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으로 시민들과 나눠야 할 인식을 형성하는 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거예요. 우리가 어딘가로 나아가고자 할 때, 아니면 지금의 시대에 대응하고자 할 때, 지금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 구성이나 운영 원리를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자리 잡게 하지 않는다면 그다음 운동을 하기 너무 어렵겠단 고민이 있어요.
타리 :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권에 대한 당위나 보편성이 그저 약자를 위한다는 정도였고, 지금은 약자에 대한 정의가 마치 나도 약자가 된 것 같잖아요. 그래서 누가 인권 이야기하면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면서 “그러면 내 인권은?” 이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어떤 관용과 포용이 불가능해진 시대 같아서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박한희 : 정말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노동조합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고 어떻게 더 잘 활동할 수 있도록 할지를 이야기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진짜 한순간에 노동조합이 왜 있어야 하냐는 공격이 들어오고, 또 그게 어쨌든 먹히는 거잖아요. 성소수자도 인간이라고 충분히 말해왔으니 이제 좀 더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에 집중하려 했는데, 최근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표현을 제외하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는거죠. 여기서 우리가 뭘 더 얘기하겠어요. “성소수자도 차별받으면 안 된다.”, “성소수자도 학생이다.”라는 수십 년 된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다시 끄집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 이게 그만큼 튼튼한 기반을 갖지는 못했다는 뜻인 것 같아요.
김건수 : 인권의 언어가 생활이나 상식의 범주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저항의 언어으로서의 유별난 게 아니게 된 건 인권운동의 성과 같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운동성이나 저항성 같은 건 그냥 뚝 떼어버리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인권의 규범성이 망가졌다기보다는 뭔가 정치적으로 운동이 고립될 때, 이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전략을 잘 수립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곳은 어딘가, 이런 걸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진령 : 아까 타리님이 ‘약자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고 표현하셨는데요. 우리는 인권이든 노동권이든 삶과 사회의 원리로 이야기를 하고 운동을 해왔는데, 그게 수단으로 사용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다 보니, 약자의 정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필요 없거나 반대해도 되는 말처럼 생각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박한희 : 오히려 인권에 규범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최근 군대에서 전역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군대에서 인권 활동을 했다고 하니까 주변의 20대 남성들이 되게 좋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들에게 인권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 홈리스나 국가폭력 피해자들 도와주는 일인 거예요. 군대에서 누가 조용히 물어봤대요. “형, 근데 혹시 페미니스트는 아니죠?” 그래서 여성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거라고 하면 “여성 인권 좋죠.” 이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여성 인권은 예를 들어 성폭력 피해 여성이나 불쌍한 여성들 도와주는 일인 거죠.
이런 식으로 막연히 ‘좋은’ 것, 예를 들어 체벌은 나쁘고 사람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건 나쁘다는 건 보편화되어 있는데, 그걸 넘어서 인권이 제기하는 질문들이 있잖아요. 지금의 체제나 구조에 대한 질문에는 전혀 공감이 안 되는 거죠. 그냥 좋게좋게 말하는 정도의 인권까지만 받아들이고, 체제 변혁을 말하는 인권운동은 그걸 벗어나서 그냥 자기들끼리 이상한 얘기 하는 집단 정도로 보이는 게 아닐까요.
타리 : 저는 혐오 세력이 전략을 바꾼 이유는 인권과 관련해서 가져갈 자원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인권센터라는 게 있고 예산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 혐오 세력을 분노하게 하고 관련 조례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게 했는데, 동시에 저 조례를 근거로 자꾸 무언가 사업을 하고 누군가는 인건비를 받아간다는 거죠. 그래서 한쪽으로는 폐지 전략, 다른 한쪽으로는 전유 전략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인권의 제도화에 대한 고민과 평가를 우리가 많이 나누기도 했잖아요. 국가 차원에서 인권을 실질화하거나 실제로 규범화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국위선양으로만 활용하려고 했던 그 얄팍한 전략이 지금의 인권을 취약하고 허약하게 만든 토대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에 사회운동이 일정 부분 협조하고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서 인적 자원을 투여하기도 했죠. 저는 잘 모르겠어요. 운동이 여기에서 좀 더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그러면 제도화에 대해서 좀 더 비판적이었어야 했나? 그럼 유엔 인권규범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물질화하고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지? 결국 이건 정치적인 싸움일 텐데, 질문이 여기로 돌아오면 이전에 진보정당에서 활동했던 경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멈춰 서게 돼요.
엄진령 :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나 불안정 노동자의 투쟁은 사실 체제가 할당한 권리로 더 열심히 들어가기 위한 투쟁이었죠. 예를 들어 특수고용 노동자의 경우에는 내가 얼마나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열심히 입증해야만 노동자성이 인정될까 말까 하니까요.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를 넘어서는 투쟁은 다 불법을 감수하고 하는 것일 텐데요, 노동자들은 불법을 감수하는 투쟁을 하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됐어요. 법이 한 번 바뀌면 아무리 문제가 많은 법이라도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고, 법률학교를 열어서 교육하고, 그걸 다 지켜가면서 싸워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죠. 물론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소송을 열심히 하기도 해요. 시기 집중 파업이라든지 총파업 대회라든지 하는 이름으로 투쟁을 하기는 하는데, 체제가 할당한 틀을 넘어서는 권리를 이야기하거나 상상하지 않은 지도 좀 오래된 것 같고, 상상을 하더라도 그걸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많이 풀어왔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로운 결집과 투쟁으로 이후의 전망을 고민하고 만드는 과정으로 운동을 사고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1990년대 초중반에 한창 신자유주의에 맞서 현장에서 싸우던 시기에는, 한 민중가요의 구절인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라는 말이 노동자들에게 동의가 되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면 노동조합 지도부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조합원이 대다수이지 않을까요.
정록 : 철폐연대는 권리를 활동의 주요한 키워드로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사실 인권단체라고 한다면 약간 자연스러운데, 노동운동 단체는 그렇지 않잖아요.
엄진령 : 비정규직법 투쟁이 계기였는데요. 비정규직법이 개악되고 나서 법을 폐기하는 투쟁을 할지, 아니면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 개입할지에 있어서 운동 안에서 대립이 있었어요. 이게 비정규직 운동에서 굉장히 큰 국면이었어요. 직후에 현장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면서 이 법이 시행령에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 폐기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확인되기는 했는데, 그 이후에 철폐연대에서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거죠.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지 않을 권리처럼 법에 적혀있지 않은 권리를 이야기해야지만 우리의 노동과 삶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이 권리를 계속 넓혀가며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예요. 노동삼권이 노동조합의 권리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이듯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하나하나를 계속 발굴해내는 운동이 필요하겠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2008년에 권리선언운동을 하면서 주기적으로 해고되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여러 권리들을 쭉 제시했던 거죠. 물론 그 권리의 대부분은 여전히 현행법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권리를 중심으로 노동, 노동자의 삶을 설명하는 방식에 좀 익숙해지고 있어요.
사회운동,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야 할까
정록 : 사랑방 10주년 자료집을 보면 ‘진보적 인권운동의 푯대를 세우겠다’는 표현이 있어요. 2000년대 이후 정리해고와 같이 폭력적인 신자유주의에 대해 전선을 긋는 과정에서 사회권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내용이 구성되었던 것 같은데요. 진보적 인권운동은 사랑방의 특정한 의제라기보다는, 적어도 인권운동 안에서는 확실히 일정한 의미에서 세력화, 또는 사회운동에서 하나의 진영을 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 시대에 무엇을 내거는 어떤 운동이 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하나의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건지 고민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어떤 가치나 의제, 주장이 필요할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 같아요. 예전에 인권운동사랑방이 ‘진보적 인권운동’이라는 이름, 반신자유주의라는 내용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호기롭게 던졌던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요?
타리 : 지금은 세력화가 더 어렵다고 느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권리가 왜곡되고 공격받는 상황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체 형성으로서의 권리를 위해 뭘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해봤을 때, 저는 대중을 조직할 때 전통적으로 피해 당사자나 이해 당사자를 중심에 두고 이야기해왔던 걸 벗어나지 않으면,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들이 조직될 수 있을까 고민이 들어요. 예를 들어 내가 대학생이 아니더라도 대학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도대체 기업은, 국가는, 지하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없는 사회는 사실 정치적인 운동이 생겨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사회고, 그 여지를 만들지 않는 상황에서 대중을 조직한다는 건 정말 당사자주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운동이 해야 하는 일은, 이해관계가 아닌 것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각자가 기여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지금 운동이 할 수 있는 조직화가 아닐까 싶어요.
박한희 : 대중에게 어떤 담론이나 영감을 제공하는 것과, 정말로 운동에 참여하게 만드는 건 다른 일이잖아요. 사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작년까지 엄청나게 많은 활동을 해왔고 의제에 대한 대중의 지지율도 엄청 높으니, 한 1만 명씩 모일 수 있는 파괴력이 있어야 하는데 차제연 집회는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뭔가 비극적인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움직이는 건, 사실 내 권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뭔가 슬프거나 안타까운 일이 있을 때인데, 이걸로는 한계가 있잖아요. 비극이 아니라 일상을 이야기하는 게 하나의 권리가 될 수 있다는 감각, 사소한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감각을 계속 갖춰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권리라는 게 엄청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라 내 삶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까요. 결국은 구조적인 문제나 체제의 문제를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어쨌든 무언가 길을 찾아서 차별금지법으로 10만 명 집회 좀 열어보고 싶네요.
김건수 : 건설노조에 대해서 깡패니 건폭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사회운동의 감각은 건설업계의 원하청 구조와 같은 근본적인 불평등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개선을 요구하는 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도 근본적으로는 더 과감한 대안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말하는 ‘체제 전환’이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이라거나, 이에 동의하는 세력이 적을 것이라는 식의 힘 빠지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있지도 않은 블루오션을 찾아서 새로운 정치 세력화를 해내려고 하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 대안을 내는 식으로 새로운 판이나 전선을 짜야 하지 않나 싶어요. 가령 기획재정부 투쟁도 학생, 장애인, 청소년, 여성이 각자 자기 예산안을 가지고 모이는 ‘민중 예산 운동’ 식의 집회로 엮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직접민주주의 행동을 해보자는 게 아니라, 민중의 요구를 수렴하는 근본적 대안을 가지고 법이든 정책이든 정치 운동을 계속 벌이자는 거죠. 저들의 구조적인 공격에 맞서서 대안을 제시하는 게 지금 시기에 길을 잡아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거라 생각하고, 그런 게 바로 공세적인 운동이라고 봐요. 윤석열 정부 시기에 저는 오히려 구조에 대해서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과 대안을 명징하게 설명했을 때 대중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엄진령 :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치가 제도 정치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또 그걸 넘어서서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권리의 주체, 정치적 주체, 어떤 주체라고 표현하더라도 결국은 삶의 주체가 되는 문제인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과정을 각자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하려면 운동은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제공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제공하고 장을 열고 화두를 던지면서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엮어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데 다양한 결집과 행동이 일어나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질서와 통제와 억압에 길들여져 있으니 이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삶의 태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운동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가 고민이에요. 철폐연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고, 총회 때도 정치적 주체화의 문제를 계속 고민하지만 여전히 추상적이라서 어렵더라고요. 그걸 말이나 사업의 형태로 풀어내기는 더더욱 어렵고요.
타리 : 저는 건수님이 말씀하신 매력적인 대안이 인상 깊은 게, 좀 더 나아보이는 비전이나 방향성이 담긴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정말 있는 것 같거든요. 그게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당사자로서의 요구만 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할 테고요. 그러니까, 정말로 사회가 조금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감각을 원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의 막막함을 걷어낼 수 있는 대안을 원하는 거고요. 저는 각자의 운동이 대안이나 비전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좀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1차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각 운동의 요구들이 도전받으며 다시 재구성되고, 그렇게 더 나은 비전을 설정하는 역량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기르는 과정, 저는 사회운동이 이 준비가 되어있어야 어떤 시점에서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운동이 필요한 이유
정록 :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네요. 사람들에게 지금 사회운동은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요? 큰 의미에서 사회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을 것 같고, 혹은 각자 지금 하고 있거나 주로 해왔던 운동이 인식되는 방식에 대해 말씀해주셔도 되고요. 더해서 각자가 느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의지와 결의를 가지고 운동을 펼쳐나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엄진령 : 결국 사회운동에 필요한 건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안정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논쟁이나 분쟁 같은 걸 되게 부담스러워하거든요. 그래서 논쟁 뒤에 불편해지거나 분란이 생기는 등 파생될 수 있는 문제를 많이 고민하는데, 그런 걸 미리 우려하지 않고 일단 좀 던지고 토론하고 논쟁하며 같이 이야기해서 털어낼 건 털어내고,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든 불안정노동 철폐라는 과제를 두고 봤을 때 어떤 부분이 비판을 받는 건지, 혹은 지지하는 사람들은 왜 지지하는지. 이들이 단순히 힘든 일 하는 활동가들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자리잡기 위해서라도 그 미묘한 간격과 차이들을 좀 더 정확하게 직면하면서 단체 운동을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철폐연대는 사랑방 동지들의 고민처럼 저 바닥부터 깔아야 할 걸 다시 깔자, 우리가 말하는 권리가 삶의 원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동’이나 ‘권리’ 같이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이야기하는 운동을 하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김건수 : 지금 사회운동, 학생운동이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감각을 기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운동이 정치와 거리를 둬왔다는 이야기를 앞서 나눴는데, 사실 사회운동은 문제를 제기하며 항상 전선을 긋고 정치권의 과제를 만드는 방식으로 정치에 개입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정책 몇 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개입의 통로가 협소해져 온 거잖아요. 학생운동, 그리고 다른 부문의 운동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고, 그 문제를 집단으로 해결하는 감각을 살리지 못하면, 소위 MZ세대의 정치적 우울과 자조, 몰지각함이 쭉 이어질 거라는 고민이 있어요. 그래서 정치라는 감각, 그러니까 공동으로 문제를 탐구하고 논의하고 또 해결하는 집단적 노력을 다시 복원하기 위한 고민이 여전히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사회운동은 계속 패배하고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저는 사회운동이 제시하는 대안만큼 매력적이거나 현실적인 담론이 없다고 보거든요. 사회운동이 스스로를 평가하고 자기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걸 이어나가는 데 있어서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지금은 우리가 해왔던 이야기를 더 꾸준히 힘 있게 밀고 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한희 :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성소수자 같은 경우는 예전에는 커뮤니티가 특정한 사이트나 모임 같은 식으로 어느 정도 잡히는 게 있었다면 지금은 오픈 카톡방 같은 식으로 굉장히 흩어져 있거든요. 이런 데는 사실 소통을 하는 곳은 아니잖아요. 정보를 교류하거나, 각자 자기 얘기만 하고 있으니까요. 운동이 함께 싸우고 있다는 감각, 내 삶을 적어도 대변하거나 함께 싸우는 동료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파편화된 의제 운동이 아니라 보편적인 모두의 운동을 하기 위한 언어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저는 소수자 운동에서 ‘당신도 언젠가는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발화하는 게 정말 싫거든요. 결국에는 동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인 것 같고, 그런 식으로는 궁극적인 해결은 되지 않으니까요. 반차별 운동, 평등을 지향하는 운동이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길이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구상과 비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타리 : 결의를 이야기하기 어렵네요. 재생산 정의를 생각해 보면, 권리는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어떤 과학적인 근거나 유엔이나 세계보건기구 같은 국제적인 근거가 인권 규범을 뒷받침하더라도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는 관철되지 않는 반면, 권력을 지닌 사람들의 편의는 시장 안에서 권리 이상으로 충분히 보장되고 있잖아요. 결국 이건 정치적인 투쟁의 문제인 거고, 이걸 넘어서지 않으면 사실 운동의 역할이 없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성과 재생산 영역을 훨씬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도 셰어가 굳이 이걸 운동으로 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가 해방이나 사회 변혁의 비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 의제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이야기와 관계성들이 있고, 이게 필요하단 걸 자각한 사람들이 있는 거죠. 저는 그것들을 하며 지금의 시대를 버텨나가는 것 같아요. 이 정도가 제가 가지고 있는 결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집담회 소감과 함께 30살을 맞이한 사랑방에게 덕담을 남겨주시겠어요?
박한희 : 저는 처음 연락받고 왜 나에게 부탁했을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쨌든 하고 있는 고민이 있으니까 이야기를 나눈 것 같고요. 오늘 들으면서 고민은 깊어지고 당장 해결은 안 되겠지만, 이렇게 같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랑방이니까 기획할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아요. 누가 30주년에 이런 걸 기획하고 있겠어요. 희망법이라면 절대 안 할 거예요. (웃음) 어쨌든 이런 사랑방의 역할이라든가, 사랑방이 그동안 해온 활동들이 정말 ‘엮다’라는 말로 그려지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엄진령 : 이 집담회가 후원인을 늘리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후원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작년에 회원들하고 집담회를 할 때 어떤 분께서 지금 운동을 하는 저희의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을 얘기하면서, “당신이 운동을 그만뒀을 때 이 운동 계속할 사람을 만들어 놓고 간다고 생각해라.”,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요. 사랑방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가끔씩 인권단체는 계속 활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분들이 있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조금 부럽기도 했거든요. 노동이라는 주제는 되게 매력이 없나 봐요. 그래서 노동단체에서 활동하겠다고 오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노동 문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우리가 서로 충실하게 만들 수 있는 여건도 안 되고요. 근데 이 상태로 계속하면 사랑방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니까 다음 세대가 운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금 단체의 조건을 더 탄탄하게 갖추는 게 굉장히 큰 물적 조건일 것 같아서, 사랑방 후원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네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철폐연대는 30주년 기념집을 만들거나, 아니면 그냥 후원주점 이런 거면 모르겠는데, 이런 행사는 못할 것 같아요. 인권운동사랑방은 40주년, 50주년 계속 이렇게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타리 : 맞아요, 완전히 동의합니다. 운동 자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판을 사랑방이 계속 만들고 있고,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공공성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게 되잖아요. 그래서 사랑방에 감사의 얘기를 드리고 싶고, 종종 궁금하기는 해요. 사랑방이 되게 넉넉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장을 계속해서 펼치려고 하는 걸까. 저는 그게 사랑방의 운동이라고 일단 이해하고는 있어요. 그래서 계속 그런 역할을 해주시길 바라고, 그러한 사랑방의 역할과 운동을 정확하게 보면서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후원인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활동가들이 고생하니까 후원하는 게 아니라, 사랑방이 뭘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이건 진짜 사랑방이 꼭 해야 하고, 또 사랑방이 아니면 못 할 수도 있겠다”, 그런 ‘정확한 사랑’이 중요하니까요.
김건수 : 시대라는 게 다른 말로는 정세 판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정세, 시대, 민중 같은 말이 사실 잘 안 들리는데, 사랑방 30주년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되게 반갑고 중심이 잡히는 느낌도 드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유지해 온 단체일수록 더 흔들리거나 궤도가 많이 이탈해 있을 수도 있는데, 30주년에도 여전히 시대적 질문을 통해서 정세를 판단하고 민중운동의 지향을 계속 가져가려 하는 게, 전 사랑방을 잘 모르지만 이런 걸 ‘사랑방답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좀 오랫동안 정신을 놓고 살고 있었는데, 시대 인식이나 정세 판단 같은 걸 개인적으로 잘 안 하고 있었거든요. 오늘의 좋은 시간이 뭔가 계속 열심히 하자고 제안하는 자리 같았어요. 사랑방이 저에게 “계속 열심히 운동해야지, 열심히 싸워야지.”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고요,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맺어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