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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이야기

923기후정의행진, 내년은 또 달라질 것이다

 

9월 23일은 기어이 왔고, 또 지나갔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3만여 명이 함께 한 집회와 행진이 23일 펼쳐졌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923기후정의행진은 지난 1년 동안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속도와 방향아래 기후정의운동을 해왔던 정말 다양한 이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누군가에겐 작년에 이은 두 번째 경험이었고, 누군가에겐 난생 처음 집회에 나오는 경험이기도 했다. 이러한 참여자들의 다양성만큼이나 923기후정의행진은 다르게 해석되고 행진에 대한 평가도 각양각색이었다. 9월 23일 하루는 너무 짧았지만, 3개월 동안 준비했던만큼 923기후정의행진을 마친 지금,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떠오른다.

 

왜 이렇게 다들 진심일까?

923기후정의행진을 준비하면서, 당일 현장에서도 머릿속을 맴돌았던 생각은 ‘왜 이렇게 다들 진심이고, 열심일까?’였다. 각 단체에서 파견된 활동가들과 수많은 자원활동가가 함께했던 집행위도 그렇고, 600여개가 넘는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들과 특정 소속 없이 개인들이 함께했던, 당일 행진의 열기와 분위기도 그랬다. 민주노총이나 전농과 같은 커다란 대중조직들이 일사불란하게 조직하고 동원한 집회와는 다른 분위기는 414기후정의파업에서도 느꼈던 그것이었다. 당일 행진은 밝았고 힘찼다. 기후정의를 외치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확인하면서 서로가 힘을 북돋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진심이 결코 ‘밝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사회운동단체들과, 다양한 지역과 동네에서 이런저런 소모임들에서, 아니면 홀로 나섰을 수많은 923기후정의행진 참여자들은 마음 한구석에 갈수록 심해지고 명백해지는 ‘기후위기’와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전환의 절박성’을 품고 있었다. 그 힘이 우리 모두를 9월 23일로 모이게 했다. 행진을 준비했던 이들도, 그날을 함께 걸었던 이들도 9월이 ‘기후정의 투쟁의 달’이 되어가고 있다는 뿌듯함과 함께, 이 행진이 때 되면 모이는 연례행사가 아니어야 한다는 불안감을 함께 느꼈다. 우리가 이렇게 큰 힘을 보이며 모였지만, 우리의 행진은 이 답답한 현실에 파열구를 내고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아직은 자신 없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

 

2019년 9월 이후, 우리는 계속 변화 성장하고 있다

9월 유엔기후정상회의와 11월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앞두고 이를 압박하기 위해 2018년부터 9월 국제기후행동이 펼쳐지고 있다. 2019년 9월에 시작된 한국의 기후대중운동은 바로 이러한 국제기후행동의 흐름 속에서 조직됐다. 그 이후 지난 4년 동안 한국의 기후운동은 급성장했고, 질적인 변화를 겪어오고 있다. ‘기후위기 비상상황을 인정하라’는 요구에서 출발했던 9월 행동은 작년 924기후정의행진에서는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을 외치며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가 전면에 등장했다.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은 5대 대정부 요구를 통해 ‘기후정의’와 ‘체제전환’과 같은 운동의 지향이 구체적으로 지금 무엇을 요구하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것인지를 밝히고자 했다. 특히 이는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구체적 현실과 정세에 개입하면서 기후정의운동의 전선을 만들고자 함이었다. 오송참사는 기후재난을 야기하면서 재난을 참사로 만드는 기존 체제의 실패였으며, 일본 핵오염수 방류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부정의한 핵발전 체제였다. 철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경쟁과 이윤논리 속에서 쪼개지고 위축되고 있는 공공교통의 현실을 드러냈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보여준 것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지역의 온갖 개발사업이 작동하는 추악한 이해관계의 현장이었다.

이러한 기후재난의 한복판에서 기후정의운동이 만들고자 하는 변화의 전망과 경로를 구체적인 현실의 싸움과 투쟁을 통해서 조직하려 했다. 그리고 그 힘을 923기후정의행진을 통해 모아내고 드러내고자 했다. 기후재난이 참사가 되지 않도록 재난대응체계의 근본적인 전환, 공공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공공교통체계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언뜻 보면 작년처럼 하루 집회와 행진을 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한국의 기후정의운동은 작년과는 또다른 부단한 변화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연례행사가 아닌 세상을 뒤흔들 투쟁으로 장으로

그럼에도 우리의 9월 행진이 3~4개월의 준비를 통해 하루의 대규모 집회를 치러내는 ‘연례행사’의 성격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923기후정의행진은 대정부 요구를 통해 현재의 정세와 투쟁에 적극 접속하고자 했지만, 언론을 통해 비치는 923 당일의 모습은 여전히 ‘기후위기의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모였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윤석열 정부에게 우리의 요구는 전혀 압박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SK 에코플랜트(건설)는 ESG 경영을 이야기하면서 923기후정의행진을 홍보했다. 우리의 요구가 사회적 압력이 되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과 싸움이 벌어지는 ‘전선’이 형성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923 행진에 함께 했던 이들 대부분 하루 행진으로 무엇이 바뀌거나,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의 변화와는 별개로 우리의 투쟁이 ‘단 하루 집회’가 아니라, 지속적인 싸움의 자리와 압력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회적 인정과 공동의 감각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9월 행진의 조직자나 참여자 모두 ‘연례행사’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9월 행진의 기획이나 집행의 문제일 수는 없다. 9월 행진 앞뒤로 기후정의운동의 투쟁이 한국사회에 ‘정세’를 만들지 못한다면, 여전히 9월은 ‘행사’를 치루는 방식으로 준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심각한 현실과 변화의 절박함은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다. 우리가 겪는 기후재난은 더욱 심하게 잦아질 것이고, ‘정의로운 전환’의 상징인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고용위기는 이제 2~3년의 시간표를 가지고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요구가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선 한국사회를 뒤흔들 대중적인 기후정의투쟁을 조직해야만 한다. 앞으로 이어질 9월 행진은 바로 그 투쟁의 계기이자 기폭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