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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무너지지 않고 나아갈 힘'을 찾아가는

김유원 님을 만났어요

 

‘아~ 다들 왜 이렇게 다재다능한 거야? 다들 어떻게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지?’ 분명 처음에는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만났는데, 어느 날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작가를 소개하는 기사에서 손경화 님 (필명 김유원)의 사진을 보았을 때 저도 모르게 외쳤던 말들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구체적인 삶의 경로와 분투를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요. <개청춘>, <그 자식이 대통령이 되던 날>, <의자가 되는 법>을 연출한 독립 다큐 감독을 거쳐, 지금은 장편소설 <불펜의 시간>, <미확인 홀>을 쓴 작가로 변모한 김유원 님을 만났습니다.

 

 

사랑방 후원인 리스트에는 메모 란이 있어요. 어떤 계기나 경로를 통해 후원을 시작했는지 정보를 입력해 놓는데, 유원 님 칸은 비어 있어요. 자발적으로(!) 후원을 시작하셨는데, 계기가 있을까요?

올해 사랑방 30주년이라고 후원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봤어요. 제가 이전에 한동안 돈을 못 벌어서 단체 후원을 많이 끊었는데, 이제 다시 해야겠다 싶어서 사랑방 후원을 시작하게 됐죠. 20대 중반부터 다큐 작업을 하면서 많은 인권 현장을 만났는데, 그때 사랑방이라는 단체 이름을 처음 들었어요.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사랑방 활동가들을 만나기도 했고요. 그때부터 저에게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30주년이 되었다고 하니 나도 이번 기회에 후원해야지 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었어요.

 

다큐멘터리에서 소설로 이른바 ‘전향’을 하셨는데,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아, 그런데 제 마음대로 ‘전향’이라고 해도 되려나요?!

둘 다 같이 하고 있습니다.((웃음)) 올해 초에 두 번째 소설 <미확인 홀>이 나왔거든요. 이후에는 좀 쉬다가 다음 소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영상 제작 의뢰가 들어와서 최근에는 촬영도 열심히 했구요. 오전에는 소설을 쓰고 오후에는 영상을 편집하는 식이죠. 저는 글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쓰는 편인데, 좋더라구요. 다큐 작업을 할 때는 출연자들에 맞춰서 내 모든 일상이 결정되니까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일정 속에서 지냈거든요. 그런데 소설은 혼자서 하는 작업이니까 저의 루틴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중요해졌죠. 이전에도 계획적으로 작업하는 걸 좋아했는데 이 방식이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소설을 쓰는 것도 사실 굉장히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혼자서 할 수 있다보니 그래도 루틴 속에서 가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참 가난하지만 ((웃음)) 이게 저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연출한 세 작품 외에도 <당신과 나의 전쟁>, <어머니>, <자, 이제 댄스타임>, <우리는 매일매일>, <홈그라운드> 등에 촬영이나 제작으로 함께 하셨죠. 가족 내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를 탐구하는 다큐부터 쌍용자동차 해고자나 이소선 어머니, 90년대 말 영페미니스트들이나 성소수자를 담은 작품까지, 길고 또 무척 다양한 여정이었던 것 같아요. 독립 다큐 작업을 오래 하셨는데,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진짜 부지런히 소처럼 일했는데 ((웃음)) 처음에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이슈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어요. 다큐는 앞으로도 촬영이나 구성 등 다른 방식으로 계속 할 생각이긴 해요. 제가 다큐를 막 처음 시작할 때 또래 친구들이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나눈 적이 있어요. 다큐는 오래 기다리며 찾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고, 또 작업이나 활동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일단 10년 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 10년을 해보고 나니까 다른 판단을 하게 되었어요.

다큐 연출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말 너무 많은 자질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저의 시선이 밖을 향하는 게 아니라 ‘나는 어떤 인간인가’에 대한 제 안의 질문으로 다시 수렴되는 거예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의 삶을 가져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부대낌이 있기도 했구요. 다큐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이야기 할 만큼의 무게추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카메라가 되어주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자각하게 되었죠. 다큐를 만들 때마다 제가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한계와 계속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었거든요. 겸손이 아니라, 제 한계를 스스로 느꼈기 때문에 멈추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일을 시작했던 20대에 민중가수이면서 문화노동자인 연영석 님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이 해주셨던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창작자들은 저마다 자기 안에 샘이 있는데, 그 샘에서 물이 찰랑찰랑 하는 소리가 나는지 바가지로 벅벅 긁는 소리가 나는지 잘 들어야 한다고요.

 

저 역시 ‘다큐를 만드는 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외부적인 요인 때문은 아니었군요.

먹고 사는 건 영상 작업을 하는 게 더 유리한 것 같아요. 소설과 다큐는 업계 지원금 자체도 차이가 너무 커요. 알바를 해도 벌 수 있는 액수가 다르고요. 돈 때문이었다면 10년 동안 쌓은 커리어로 그 일을 계속 하는 게 맞는 방법이었겠죠. 원래 그런 고민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기도 하지만, 제 내적인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냥 ‘멈췄다’ 보다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아요. <의자가 되는 법>을 마치고는 2016년에 ‘셀프 안식년’을 가졌어요.

 

다큐 <의자가 되는 법> 中

‘셀프 안식년’을 보내면서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하셨나요?

아뇨, 일단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전에는 일중독이라고 할만큼 소처럼 일했는데 쉬게 되니까 ‘내일 할 일이 없네, 어떡하지?’ 싶은 거예요.((웃음)) 다시 관성적으로 익숙했던 다큐 일로 돌아갈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일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다큐멘터리도 할머니가 될 때까지 만들어야지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할 일이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창작을 하던 사람들은 창작을 할 때의 즐거움이 있잖아요. 그 즐거움을 다른 걸로 채우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 장르이기도 했어요. ‘일단 한 번 써보자’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맞는 일이라는 걸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인생에서 두 번째로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래서 저는 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삶에서 이런 직업이 두 번이나 찾아오기는 참 힘든 일인데,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정리가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주변 사람들이 너무 걱정할까봐 말도 안 했지만요.((웃음))

 

유원 님 첫 번째 소설인 <불펜의 시간>을 샀는데… 고백하자면 아직 펼쳐보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무너지지 않고 나아가는 힘에 관심이 있다’고 적힌 작가 소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그래도 책을 샀다는 게 중요하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가잖아요. 어쩌면 무너지는 게 너무나 당연한 조건인데도요. 다큐를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저렇게 나아가는 힘은 뭘까 늘 궁금했어요. 그 힘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구요. 그런데 다큐 이후에 소설을 쓰다보니까 제 관심사가 동일하더라고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여전히 그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장르로 하고 싶은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김유원 작가의 <불펜의 시간>과 <미확인 홀>

   

소설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지 않거나, 성공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거나,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셀프 안식년에 친구랑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야구를 좋아하거든요. 야구가 9회까지 있는데, 투수들 중에서는 선발과 마무리 투수가 제일 중요해요. 중간에 나오는 투수를 계투라고 부르고, 아무래도 주목을 덜 받는 위치죠. 그런데 저는 딱 중간에 한 회만 책임지고 나가는 계투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주목이나 관심은 필요 없고, 적당히 돈을 벌고, 하지만 야구의 참맛은 또 느낄 수 있는 계투로 살고 싶다고요. 그 이야기에서 <불펜의 시간>이 시작돼요. 그런데 그 ‘적당히’가 너무 힘들어요. 필사적으로 목숨을 걸어야지만 ‘적당히’가 가능해지는 상황이니까요. 쓰면서 제가 성공 아니면 실패로 규정짓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두 번째 <미확인 홀>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어떤 사람들은 박음질 된 것처럼 삶에 단단히 붙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갈수록 많이 들었어요. 타고난 기질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사건 때문일 수도 있고, 여러 계기로 인해 소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삶과의 연결이 미약해지는 시기가 오잖아요. 그런 시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어떤 힘으로 그 시기를 넘어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요.

 

역시 소설가는 표현부터 다르네요…((웃음)) 현대인의 가장 큰 공통점이 ‘불안’일 텐데, 대화를 하다보니 유원 님은 ‘불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크게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저의 장점이라는 걸 시간이 가면 갈수록 느껴요. 셀프 안식년일 때도 ‘내가 바로 시간 부자다’ 좋아하고, SH 덕분에 주거가 안정되기도 했고요. 그 전에는 무조건 생존을 위해서 벌어야 하는 비용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제일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을 계속 했어야 했는데,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게 되면서 돈을 조금 덜 벌어도 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늘 다른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긴 해요. 다큐 하는 사람들이 다큐 작업으로는 생계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다큐를 ‘고급 취미’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하는데요. 소설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면 비슷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현실을 모르고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아무런 책을 내지 못해도 괜찮겠다, 이렇게 소설을 10년이고 20년이고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했고,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남들보다는 적은 것 같아요.

지금 쓰고 있는 세 번째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나요?

특허청에 ‘우산 특허’가 등록되고 나서 이를 지켜보는 유튜브 작업자의 이야기랄까요…? ((웃음))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책 아시죠? 지금의 기후위기도 그렇고, 우리 삶에 성장 담론이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 왔는데, 그런 고민을 담아서 쓰고 있어요. 내년 후반부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다큐나 소설 외에 요즘 관심이 가는 이슈가 있다면요?

다 마음이 가요. 맞아요, 다 마음이 가요. 세상에 큰일이 날 것 같다가도 ‘아니야,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을 거야’ 혼자 생각하고. 지금까지는 좀 멀다고 생각했던 전쟁이나 극단적인 혐오와 같은 일들이 이제는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정도까지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몇십 년이 가장 좋았던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막연하게 ‘옛날이 좋았지’라거나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가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인 각오를 필요로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최근에 성평등 도서를 공공도서관에서 퇴출시키려는 흐름이 있어서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대응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는 다큐 <퀴어 마이 프렌즈>도 예정된 도서관 상영이 취소됐어요.

영화 지원금도 다 삭제되어서 난리고, 문학 쪽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불펜의 시간>이 문학나눔도서에 선정되어서 지원을 받았는데, 그 예산도 다 사라지고요. 책 읽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안그래도 열악한데 목소리 내는 사람들의 싹을 다 잘라버리겠다는 의지가 너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유원 님의 고민이 사랑방 활동과도 많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사랑방 활동 중에 인상적이거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을까요?

어떤 하나를 꼽기에는 굉장히 다방면의 활동을 하고 계시지 않나요…? 차별금지법이나 노조법과 같은 첨예한 사안들에 목소리를 내는 부분도 있지만, 하나를 꼽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이 ‘큰일났다’, ‘이제 망했어’ 하잖아요. 그럴 때 사랑방 소식지를 통해서 정리된 목소리로 상황을 진단하거나 행동을 제안하는 역할을 하는 걸 볼 때 다행이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권운동사랑방 혹은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사실 사랑방 후원을 할 때 깊은 생각 없이, 망설임 없이 했거든요. 인터뷰하러 오면서도 왜 후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최전선’이라고 말하면 싫어하실지도 모르지만 ((웃음))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항상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그런 사회운동이 좀 더 많았다면 지금은 또 굉장히 듬성듬성해졌고요. 사랑방처럼 계속 목소리를 내는 곳이 필요한 담론이 쪼그라들지 않게 하는 역할을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칼을 갈 때 쓰는 ‘숫돌’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사랑방이 커다란 담론의 숫돌이라면, 저 같은 사람이 살다가 가끔 숫돌 아무데나 몸을 기대서 생각을 갈 수 있게 해주는….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지만, 늘 까실까실한 단체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게 저의 욕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