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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의 편지

‘아픔이 있는 곳’에 서서, 임보라 목사를 기억하며

<임보라목사기념사업회>가 올해 10월 발족을 목표로 설립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임보라 목사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1년 반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임보라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계셨던 섬돌향린교회와 교인들을 추스르고, 임보라 목사님이 함께하셨던 수많은 종교·사회운동들의 현장을 메우고, 각자 또 함께 충분한 애도를 나누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을 듯한데… 그 사이에 부지런히 기념사업회 설립을 준비했을 분들을 떠올리니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남습니다.

 

사회적 심방(尋訪) 

사실 저는 기독교를 포함해서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쭉 하다 보니 한국사회에서 보수개신교의 형성과 변화를 살피게 되고, 종교적 논리 구조와 주장에 대해 동료들과 함께 분석하고 공부했던 시간이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쌓여오긴 했지만요. 종교도 없고, 종교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아픔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임보라 목사의 뜻을 이어 ‘사회적 심방’ 활동을 통해 현장에 함께하고, 마음 편히 서로의 기쁨과 슬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임보라목사기념사업회가 앞으로 해 나갈 활동에 대한 소개를 살펴보는데, ‘심방’이라는 모르는 단어가 등장해서 조용히 검색을 해봅니다. 찾을 심(尋)과 물을 방(訪), 방문해서 찾아본다는 뜻을 가진 단어였네요. 예전에 친구가 입원한 병실에 친구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이 함께 병문안을 온 적이 있었는데, 그런 걸 ‘심방’이라고 하나 보다 싶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쓰신 글을 보니 심방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배나 기도, 식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영적인 형편을 살피기 위한 대화’에 있다고 해서 무척 공감됐습니다. (물론 혹시 싶어 그 목사님과 교회 이름을 차별금지법과 조합해서 검색해보니,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열렬하게 전파하시는 분이어서 조용히 창을 껐지만요… ㅠㅠ)

저는 2007년 7개의 차별금지사유-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성적 지향, 학력-가 삭제되었던 법무부의 ‘누더기 차별금지법 사태’ 당시,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차세기연)>로 임보라 목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왠지 제 외장하드 한구석에 임보라 목사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을 것 같아 부리나케 뒤져보니… 안타깝게도 2007년 당시의 사진은 없네요. 다행히 2011년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6일의 짧은 농성 현장 사진에는 임보라 목사님이 가득합니다. 학생인권운동의 헌신과 노력으로 서울시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10만 명의 주민발의가 성사된 후, 차별금지사유에 ‘성적 지향’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의회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성소수자 운동이 최초로 점거농성을 했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은 임보라 목사님이 굉장히 미안해하시며 농성장에 두고 가신 핸드폰 충전기를 퀵으로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보내드렸더니 너무 고맙다면서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내주셨고요. ‘아휴, 뭘 이런 것까지 챙겨주시나…’ 싶었지만 또 그게 너무 임보라 목사님답기도 했습니다.

   

─ 2011년 12월 15일, <차별 없는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촛불문화제>와 농성장에서

임보라 목사님이 함께했던 무수히 많은 운동 현장을 떠올리니 ‘사회적 심방’ 활동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러실 테죠. 2011년 12월 겨울 서울시의회의 차가운 바닥과 시청역, 거리 같은 곳이 바로 임보라 목사님이 언제나 달려갔던 ‘아픔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기독교인·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비종교인도 마음의 위로를 얻고 계속 싸워나갈 힘을 얻었습니다.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임보라 목사님 자신에게도 어떤 위로와 힘이 되었기를. 임보라 목사님이 떠나가신 후 남은 간절한 바람입니다.

 

함께 지키는 일, 함께 살아가는 일

“입으로 외치는 100명 대신 몸으로 싸웠던 단 한 명”이라는 한 기사의 수식어는 임보라 목사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동료였는지, 한국사회에 필요한 변화를 일구는 일에 거침없이 나섰던 얼마나 용기 있는 시민이었는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단 한 명’이 어떻게 두 명으로, 열 명으로, 더 큰 목소리로 계속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모두의 ‘씨앗’이었는지도 떠올리게 합니다.

“감리회 목사로의 복직투쟁은 저에게는 목사직을 되찾는 것 이상의 상징적 싸움입니다. 복직이 되려면 그 전에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성소수자를 긍정하고 환대하는 교단으로 변해야 하고, 앞서 말씀드린 성소수자 차별법이 철폐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에서 이겨서 감리회로 들어간들 또다시 출교 당하겠지요. 그러니 제 진정한 복직은 한국교회가 바뀌는 날에나 가능할 겁니다. 어쩌면 제가 살아있을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일일지도 모르지요. 그럼에도 저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계속해서 축복하고 활동을 하고 사업을 만들고 교회를 찾아가 설득합니다. 오늘의 운동이 있어야 훗날의 열매가 있기에 비록 그 열매를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도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 이동환 목사, 25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저는 이동환 목사님의 이야기에서 ‘아픔이 있는 곳’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지만 ‘아픔이 있는 곳’을 함께 지키는 일은 멈춘 적이 없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아픔이 있는 곳’을 지키면서 싸우는 사람들이 겪는 모욕과 처벌의 부당함에 항의하고, 이 또한 함께 지키려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위안을 얻습니다. 성소수자 축복을 이유로 감리회로부터 출교 판결을 받고, 이에 대한 무효소송을 제기하며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이동환 목사님과 이동환재판공동대책위원회의 활동 덕에 우리는 분노와 눈물 속에서도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울 수 있었습니다. 임보라 목사님이 공동대표로 계시기도 했던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네트워크(평등세상)>의 존재 덕분에, 보수개신교의 공격과 왜곡에 맞서서 ‘그리스도인이기에’ 평등을 지지한다고 외치는 교인들의 목소리를 폭넓게 가시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투쟁은 한국사회의 차별과 부정의에 맞설 책임을 개인에게 홀로 남겨두지 않고, 우리가 발 딛고 선 세상을 조금 더 정의롭고 평등하게 바꾸어 가고자 하는 의지를 계속 나누고 조직하는 이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2011년 임보라 목사님과 함께 농성장을 지키던 사진 속 얼굴들이 여전히 인권운동에서 분주하게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 지금 또 많은 새로운 이들이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임보라 목사님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올해 하반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주요하게 해나가려고 하는 활동 중에도 ‘차별금지법으로 평등세상’이 있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기독교인들과의 접점을 어떻게 넓혀나갈 것인지, 그 목소리를 어떻게 더 많이 가시화해나갈 것인지의 방안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평등세상 두 단위가 함께 토론하고 프로그램을 마련해 구체화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함께하는 수많은 분 모두가 임보라 목사님을 떠올리는 순간이 많을 것 같아요.

“우리는 법 제정과 제도 마련에서 멈추지 않고, 모든 소수자와 약자를 환대하는 사랑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문화가 되고 일상이 되고 기본이 될 때까지 계속하여 기도하고 연대하며 행동할 것입니다”. 2021년 ‘평등세상’이 출범할 때 임보라 목사님이 스스로에게도 했을 이 다짐을 계속 이어가는 분들과 함께, 저도 계속 힘을 내고 싶습니다.

 

  

‘우리 곁의 초록나무’ 임보라목사기념사업회(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씨앗회원 신청과 창립기금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