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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국민연금 개혁, 존엄한 노후를 만들 수 있을까

지난 9월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4대 개혁 과제로 연금개혁을 임기 내 반드시 하겠다고 공언하고 3년 만에 처음으로 나온 정부안이다.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니, 연금기금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 현행 보험료율을 올리고 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개혁안이었다. 하지만 미래 세대의 부담만큼이나 현재 은퇴한 세대들의 극심한 빈곤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도 함께 답해야 한다. 국민연금, 바뀌긴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까.

국민연금은 공적연금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흔한 인식 중 하나는 내가 낸 보험료를 노후에 은퇴하면 돌려받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다만 의무가입이며, 소득에 따라 보험료가 다르고, 그 운영을 국가가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여길 뿐이다. 시중의 연금저축상품과 기본 원리는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초저출산으로 연금을 납부할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반면 연금을 수령할 노령인구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낸 돈’이 모인 연금기금이 고갈되는 상황을 우려하게 만든다. 결국 고갈될 연금인데 내가 일평생 내는 것이 합리적인지, 은퇴하고 나서 과연 제대로 수령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그저 개인의 노후 대비 저축을 의무화한 것이라면 공적연금일 이유가 없다. 국가가 전 국민 가입을 의무화하고 월급이 통장에 스치기도 전에 연금 보험료를 먼저 납부하도록 하는 이유는 은퇴한 세대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사회는 나이에 따라 경제활동인구를 분류해 일자리의 기회를 집중시키고, 특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은퇴를 시키는 생산 체계가 작동한다. 은퇴세대의 소득이 단절되는 것은 이런 구조의 결과인 것이다. 소득이 단절된 은퇴 세대가 빈곤에 빠지거나, 열악한 노년노동에 허덕이는 삶을 살지 않도록 국가가 공적연금을 운영하는 것이다.

동시에 공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는 그저 노령의 빈곤계층을 구호하는 복지정책을 넘어서는 기획이기도 하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은퇴한 이후에도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연결과 유대를 위해 사회적 돌봄을 소득의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역할이다. 이를 통해 사회에 속한 누구나 공적연금에 가입하여 은퇴한 세대를 부양하고, 또 내가 은퇴하면 부양받는 경험을 통해 사회적 부양과 돌봄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연금저축상품처럼 내가 낸 돈을 연금공단이 잘 투자해서 이득을 남겨 돌려주는 상품이 아니다. 내 노후를 내가 대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 노후는 미래 세대가 나의 노후를 부양해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일하고, 나는 현재 노후 세대의 부양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연금을 사회보험으로 규정하는 이유도 이 부양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사회 전체가 나누어 짊어질 것을 약속한 보험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가 직접 장기적 관점을 갖고 제도를 유지, 갱신하며 변화하는 사회의 조건을 살피고, 존엄한 노후 생활을 보장하려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금융상품처럼 만드는 연금개혁

하지만 정부는 국민연금을 공적연금이자 사회보험에 걸맞는 제도로 설계하고 운용하지 못해왔다. 1988년 제도의 시작부터 사회적 부양의 의미를 확인하고, 의무와 역할을 나누기 위한 논의의 장이 만들어지기보다 내 노후를 위해 얼마 내면 언제, 얼마를 돌려받는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해왔다. 국가운영 연금상품과 다를 바 없는 질문만 마주하게 만들어 온 것이다. 문제는 ‘지금 납부하면 노후에 돌려줄 것’이란 방식으로 가입을 유도하는 것조차 이제는 설득력을 잃었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언론이 늘상 이야기하는 미래의 인구구조 이야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비정규직,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이 확산되고, 초단기 노동, 가짜 프리랜서 사업자 등 불안정 노동이 증가한 데 반해 국민연금제도는 이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해왔다. 전체 국민연금 가입률이 73.9%인데 반해 특수고용 노동자의 가입비율은 37.5%로 절반에 불과한 현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플랫폼 노동의 경우 직장 가입의 경로가 없고, 기타 비정형 노동자의 경우도 기업 부담 없이 혼자 비용을 부담하며 90만 명 중 47만 명이 지역가입의 형태로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다. 여기에 중위소득 2/3 이하에 해당하는 저소득층 가입률이 약 40%라는 사실까지 더하면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고, 소득이 적을수록 국민연금은 가입도 유지도 쉽지 않다.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사회적 부양을 위한 연대가 작동하기 어려운 조건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연금개혁 논의는 여전히 얼마 내면 얼마를 돌려받는 방식인지에 대한 논의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윤석열 정부의 연금 개혁 방안은 사회적 연대를 더 축소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고 있다. 2007년 연금개혁 이후 17년 만의 정부안이라고 나온 연금개혁안은 보험료는 올리되 소득대체율은 동결하겠다면서도 ‘자동조정장치’를 둬서 실질 연금액은 깎겠다는 둥 복잡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결국, 정부의 요지는 현재 경제활동을 하는 세대가 보험료를 상대적으로 덜 내고, 미래에 많이 받으니 미래 세대의 ‘억울함’을 고려하여 지금부터 많이 내고, 노후에는 조금 받으라는 것이다. 세대 간 연대, 노후 소득보장이란 과제는 사라지고 억울함과 공평함이 난무하는 정부의 개혁안에서 노후의 삶은 사회적 과제가 아니라 보험료를 납부한 만큼 돌려받는 각자도생의 문제가 된다.

야당은 정부안보다 노후에 더 많이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미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연금 가입의 문턱은 언급하지 않는다. 사회적 연대와 부양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말하지 않고 연금 지급액만 올리자고 말하며 장밋빛 노후를 그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정치권이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연금 제도의 필요와 의무를 설득하지 않고 오히려 퍼센트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국민연금을 거대한 연금상품처럼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정치권의 헛발질 논의가 길어질수록 개인들에게 연금기금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1,100조 원, 세계 3위 규모의 연금기금이지만 연금 가입자들의 저축금액과 다르지 않은 말처럼 이해되는 현실에 기금 고갈될 것이란 예상이 더해지면, 곧 국민연금이라는 금융상품이 부도날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연금의 신뢰를 정치가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연금기금을 현재 노후 세대 부양이 아닌 금융에 투자하는 것이 지금 연금기금의 현실이다. 돈을 쌓아놓고도 노후 세대 부양에 연금기금을 사용할 방안을 찾기보다 연금기금으로 삼성전자, 애플, 사모펀드까지 투자하니 현재 대한민국의 노인빈곤율이 압도적인 OECD 1위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공적연금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자

연금개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먼저, 공적연금의 의미를 확인하며 가입의 범위, 납부 의무를 확대해야 한다. 기존 연금 개혁에 관한 논의는 청년세대의 부담과 노후 세대의 생계 사이에서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연금의 수입구조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현재 제도는 가입자 개인을 중심으로 부양의무를 지도록 설계됐다. 이 부담을 함께 짊어질 단위를 더 확장해야 한다. 특수고용, 하청 노동자의 고용을 인정하지 않는 원청 기업, 일감 단위로 노동을 지시한다는 이유로 보험료 부담을 회피하는 플랫폼 기업 등에 연금 납부의 의무를 확인시켜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규모가 커지고 고도화되면서 노동소득보다 사업소득, 부동산, 주식 등 자본소득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 수입에 대해서도 사회적 부양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적연금이 사회적 부의 일부를 분담하여 은퇴한 세대의 생계를 책임지는 연대의 약속이라면, 사회 전체의 부가 크게 늘었는데 연금 가입인구 감소라는 이유로 사회적 부양을 축소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애초에 기업이 국민연금 가입자, 즉 고용인의 국민연금 보험료 절반을 부담하도록 한 이유 역시 자본의 책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연금 보험료를 가입자의 노동소득으로만 한정하기 때문에 가입자 개인 간 납부 금액의 공정성이 논란이 된다. 이 방향을 바꿔 사회적 부 전체에 대하여 부양의 의무가 있음을 제도로 확인시키는 개혁 방안이 필요하다. 연금수입 확대는 미래 세대의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회적 부 그 자체에 부양의 의무를 부과할 때 가능하다.

또한, 연금기금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적절한 사용방안을 사회적으로 합의해가야 한다. 연금기금 고갈은 마주할 현실이지 예방해야 할 재난이 아니다. 지금 연금기금이 쌓인 이유는 연금제도가 30-40년 이상 납부한 이들이 지급 받을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입자의 보험료 납부가 연금 지급액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보험료가 쌓이는 것은 당연했다. 연금제도 역사가 오래되어 연금기금을 이미 연금 지급으로 대부분 사용한 영국, 독일,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도 있다. 이제 본격적인 지급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연금기금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여기에 예상되는 인구구조 등 변화하는 사회적 조건에 대비하는 용도로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앞서 언급했듯 OECD 노인 빈곤율 1위 국가가 연금을 명목으로 엄청나게 큰돈을 쌓아만 둔 채 부양의 의무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연금기금을 통해 현재의 노인 빈곤율을 낮추며 부족한 공적 돌봄을 위해 사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금융투자가 아닌 사회보험으로 제대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을 한국사회가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국민연금을 더는 금융상품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공적연금의 위상에 맞는 재원 확대방안과 목적에 맞는 사용 선례를 지속해서 만들어 가야 한다.

존엄한 노후라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자

공적연금 제도는 사회적 연대에 기대면서 동시에 긴 호흡으로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구성원들의 합의를 만들 때 운영이 가능하다. 사회적 부양이라는 목표에 맞추어 연대와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 연대의 감각이 우리 사회에 없지 않다. 당장 건강보험제도 역시 민간 의료보험상품이 팽창했음에도, ‘아프면 누구나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지키며 지금까지 유의미하게 제도를 운용해왔다. 국민연금 역시 ‘경제 생활에서 은퇴해도 누구나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며 제도를 운용해가야 한다. 이제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의 장을 그저 보험료, 소득대체율과 같은 재정문제로 흘려보내지 않고 부양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어떻게 함께 나눠질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