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후원인 인터뷰

시민들이 운동보다 앞서 나가고 있어요

정진임 님을 만났어요

12월 7일 국회 앞 집회에서 무대는 보이지 않았지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계엄과 관련한 어떤 기록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국무회의 회의록과 속기록, 녹음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한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활동가였습니다. 후원인 인터뷰를 핑계 삼아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행사기획팀장을 맡아 더욱 바빠진 그를 만났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정보공개센터’라는 알 권리 운동을 하는 단체 활동가예요. 서울 은평구에 살면서 여러 곳에 후원인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알 권리’를 ‘권리를 위한 권리’라고 설명해요. 사실 정보 자체가 필요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내 건강이 이유를 알 수 없게 해쳐지거나 생명이 위태로워지거나 하는 등 권리가 침해될 때, 정부가 주권자인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때, 왜 권리가 침해됐는지 내 권리는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궁금해질 때 정보를 필요로 하거든요. 그래서 다른 운동들과 더욱 밀접하게 관계 맺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운동들과 관계 맺기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요즘 ‘일하다 죽지 않을 직장 찾기’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한국이 중대재해가 너무 많은데 기업 명단이 공개가 안 돼요. 정보공개센터는 노동안전보건단체는 아니지만 기존에 기업의 산재와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활동해 온 단체, 연구자들 덕분에 활동을 하고 있죠.산재 예방을 위해 기업 명단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면서 최근 몇 년간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 명단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어요. 그걸 가지고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 구인 공고에 중대재해 관련 정보를 매칭하자는 구상이에요. 기업이 복리후생이나 급여 조건만 올려놓는데 이 공정에서 사람이 사망한 사실을 알려주는 거죠. 직업소개 사이트들에 최저임금 미만 사업장이나 임금체불 사업장은 등록을 못 하거나 등록했을 때 알람이 뜨는데 중대재해 기업도 그렇게 하라고 직업안정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어요.

 

운동들에 알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을 느끼나요.

네. 여러 운동의 의제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알 권리가 제시되는 걸 느껴요. 재난참사 피해자의 알 권리, 노동자의 알 권리, 지역사회에서 주민의 알 권리… 예전에는 예산감시운동에서 주로 쓰이던 것이 정말 확산됐어요. 하지만 이건 권력이 정보 은폐를 계속하고 있는 현실의 반증이기도 하니 안타깝기도 하죠.

제가 활동하면서 너무 힘들다, 이 방향이 맞나 고민이 들었던 때가 세월호 참사였어요. 4월 16일 참사 당일부터 너무 당연하게 정보공개청구를 시작했어요. 해양수산부에도, 대통령실에도, 행정안전부에도, 선박 안전 점검은 어떻게 됐는지 안전관리체계는 어떤지 컨트롤타워 회의는 누가 이제까지 어떻게 했는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막 청구했어요. 그중 어떤 것들을 받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언론에서 계속 인터뷰 요청이 오는 거예요. 우리가 선박안전 관련 정보를 받았다고 그 정보를 분석할 전문성이 있는 단체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인터뷰 못 한다고 하면 정보공개센터가 받은 자료인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냐, 너네가 받았으니까 너네가 말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앞으로 재난컨트롤타워는 어떻게 가야 됩니까’ 하고 물어보면 제가 할 말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후에 단체 안에서 활동가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여러 현안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걸 왜 하는지도 잘 정리하자. 우리가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자료를 받아내는 것이 어떤 이유로 무엇에 뛰어드는 것인지 잘 정리하고 알 권리 운동이 다른 영역에서 도구로 잘 쓰일 수 있는 준비도 하자. 각자의 영역에서 정보가 필요한 상황들이 생기는데 어떻게 정보들을 활용해야 하는지 무엇을 중요한 포인트로 삼아야 되는지 등을 알려주자, 정보공개운동이 운동을 위한 도구를 만드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활동가를 위한 정보공개와 데이터활용교육이나 시민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을 알리는 활동을 계속하려고 해요.

 

운동들과 관계 만드는 게 알 권리 운동에도 중요하겠네요.

우리 단체가 초반에는 다른 단체와 적극적으로 만나지 않았어요. 형식적인 연대는 하지 말자는 취지였는데 그러다 보니 주로 혼자서 활동하게 되더라고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더 적극적으로 연대활동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활동가 개인이 여러 다른 활동을 같이하는 방식이었다면 단체 차원에서 지속적인 네트워크에 들어가거나 만들고 참여하는 방식으로 고민하게 된 거죠.

 

그러다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거죠. 정보공개센터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 단체도 하고 여러 단체와 연대하면서 정보공개센터 혼자로는 못하는 것들에 도전하기도 하고 고비들을 넘겨왔어요. 세상 혼자 못 바꾸니 연대 요청이 오면 할 수 있는 선에서 동참해야 한다는 마음들이 있어요. 그러다가 12월 3일 이후, 연대체가 구성될 것이고 상황실이나 운영위원회에 결합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느 정도는 마음먹었는데 갑자기 행사기획팀장을 맡아달라 요청이 왔어요. 내가 해본 적도 없는 일을 어떻게 하냐고 거절했는데, 정보공개센터가 여러 단체와 접점이 있으니 잘할 수 있을 것이고 광장에서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역할도 잘해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맡게 된 행사기획팀은 어떤 일을 하나요.

매주 열리는 집회와 긴급하게 열리는 집회나 문화행사 전반을 책임져요. 일이 많으니 세부 팀을 다시 나눴어요. 집회에서 공연을 기획하고 연결하고 섭외하는 연출팀, 시민발언을 온라인과 현장에서 접수를 받고 선정하는 시민발언팀, 행진의 구호를 정하거나 경로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행진팀이 있어요. 집회에서 발언이나 공연에 혐오표현이 없게 하는 일도 행사기획팀의 중요한 역할이예요. 얼마 전에는 공연이 예정된 뮤지션의 노래 가사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표현이 있어 바꿔주실 수 있냐 상의하기도 했는데. 아주 멋있게 바꿔주셨어요!

언젠가 온라인 회의를 하는 정진임 님의 모습

 

이제 한 달 정도 됐는데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음… 기억이 안 나는 거? 솔직히 저는 제가 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ㅎㅎ. 그런데 계속 그 생각이 들어요. 너무 많은 일이 쏟아지고, 현안들에 바로바로 대응해야 하는데, 머릿속에 서랍이 안 만들어져서 들어오는 게 정리가 안 돼요. 타닥타닥 서랍에 넣었다가 바로바로 설명도 해주고 집행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처음이라서… 잘 되겠죠. (잘 되어갈 거예요!)

 

시민발언 신청이 엄청 많다고 들었는데요.

네 매번 100명 가까이 신청이 있어요. 하지만 집회 시간 때문에 10명~15명 정도가 발언하는 거죠. 생생하게 살아있는 언어가 넘치는데 이걸 놓치는 안타까움이 많아요. 아카이빙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많고요, 무대에 서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도 널리 나눌 방법이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하지만 어떤 발언에는 혐오표현이 배어 있거나 특정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메시지만 있기도 해요. 행사기획팀에서 차별과 배제가 없는 집회를 위한 발언자 가이드를 드리는데, 다행인 건 이미 광장에서 어느 정도는 정제가 되고 혐오를 지양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거죠. 혐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확산되었고요.

어떤 분들은 시민 발언 중 왜 이렇게 여성과 퀴어가 많고 페미니스트라고 하느냐는 항의도 하시는데 그 사람들이 광장에 제일 많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려요. 성별이나 연령에서 얼마간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도 하지만 기계적 균형은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기존의 관성으로 활동하던 사람들도 주춤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광장을 채우는 이 흐름이 너무 좋아요.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상황실에서 가장 소중하고 수고로운 일을 꼽는다면.

자원봉사(자봉)입니다. 자봉 하는 분들은 집회 무대를 한순간도 보지 못해요. 저도 가끔 자봉을 하는데 인류애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집회에 오는 분 중에는 자봉이 현장 관리를 위해 뭔가 안내할 때 욕설하는 분들도 계셔요. 자봉 분들은 행진 사회 맡는 것도 아닌데 맨날 목이 쉬어요. 수십만 명 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집회에 수십 명 되는 사람이 피켓도 나눠주고 안전 안내도 해야 하고 다 해야 하니까 정말 힘들어요.

 

어려운 일도 많지만 윤석열 퇴진 투쟁의 한가운데서 주목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비상국민행동 명칭이 비상행동이 된 순간이 가장 짜릿했어요. 범국민대행진은 범시민대행진이 되고. 그게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나가는 방향이 이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광장에서 시민발언을 듣고 접수받다 보면 사람들이 다 사회대개혁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각자의 현장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모두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윤석열을 퇴진시키고 사회대개혁으로 나가는 것이 이미 시작되고 있어요. 사람들이 농민운동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투쟁에 이렇게 결합한 적이 있었나 보면서도 시민들이 운동보다 훨씬 앞서나가고 있다 느껴요. 박근혜 퇴진 촛불에서 운동이 잘 담지 못했던 요구와 열망을 잘 받아안아야 한다는 운동의 의지도 있고 막중한 책임도 있는 것 같아요.

 

투쟁의 시간을 경과하며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것이 있나요.

사실 지금은 당장의 실무들을 하느라 기대와 흐름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ㅎㅎ. 다만 이제까지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 젊은 활동가들의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기대는 있네요.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활동가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하고 배우면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요.

 

새해 첫 소식지니 새해 소망과 후원인들에게 인사 부탁해요.

저는 새해 계획 같은 거 안 세우는 인간이에요. 하지만 매해 세우는 계획이 있다면, 하루에 한 번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꼼꼼하게 양치질을 하자-입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실천을 잘 안 하게 되는데, 양치질을 할 때라도 하자는 계획이에요. 저는 귀여움이 세상을 바꾼다고 페이스북에 써놓았는데요,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인 분들도 주위에서 귀엽고 다정한 것들 많이 발견하시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귀엽고 다정한 게 최고다, 그게 제일 힘이 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