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활동 이야기

기후위기도 삶의 위기도 멈추는 공공재생에너지 체제로

작년 11월, 첫눈으로 폭설이 내렸다. 서울은 117년 만에 가장 많은 적설량을 기록했고, 경기도와 강원도 등지로부터 노동자가 제설 작업을 하다 눈에 깔려 숨지고 농민과 골목 상인들은 생계를 꾸리던 터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폭설의 원인으로 ‘기후위기 심화’가 지목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해결이 우리가 당장 직면한 과제임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한정된 자원을 착취하고, 돈벌이를 위해 많이 생산하여 많이 소비하고 폐기하게 하는 구조 등 사회 곳곳의 총체적 ‘전환’이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건 중요하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추진이 그 일환일 테다. 온실가스 주범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이 하나둘씩 중단되고 있고, 올 2025년 12월부터 2038년까지 총 40기를 폐쇄하는 흐름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정의’롭지 않다는 점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기후위기 주범으로 지목되기 이전에 발전노동자의 생계 수단으로 역할 해왔던 현실이 있다. 어두컴컴한 노동 현장에서도 한국 곳곳의 어둠을 밝히는 빛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며 생계를 꾸리던 노동자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실업위기를 맞닿뜨리게 됐다. 정부의 대책은 취업 교육 등 소극적인 대응에 불과하다. 사실상 8천 명을 훌쩍 넘는 노동자에게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지난 11월 26일 당진을 시작으로 태안, 영흥, 삼천포와 하동에서 진행된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순회 간담회>는 폐쇄 예정인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과 앞으로 닥칠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대응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발전노동자뿐만 아니라 인권운동사랑방이 함께하는 기후정의동맹, 청소년기후행동과 같은 기후정의 활동가들도 함께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의 본격화를 앞둔 지금의 상황을 노동자와 기후정의운동이 함께 ‘다른 체제’를 만드는 시간으로 채워보자는 의지를 모았다. 그 구체적인 경로가 바로 ‘공공재생에너지’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화력발전이 축소된 자리에 재생에너지가 들어서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럴 때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함께 에너지의 ‘민영화’를 멈추고 ‘공공성’을 확보하는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지 에너지원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만든 근본 원인, 즉 지금의 문제적 체제가 전환되어야 기후위기도 기후위기로 인한 삶의 위기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려는 공공성은 단지 실행 주체가 ‘정부’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정부가 ‘공공’을 내세우며 많은 이들의 권리를 침해했던, 가령 2014년 밀양에 초고압 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행정대집행이라는 ‘국가 폭력’이 자행됐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공공성을 세우기 위한 투쟁의 방향을 잘 세우기 위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있다.

가령 이런 질문이 필요할 테다. 에너지 체제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을 ‘누가’ 부담할 거냐. 에너지 공공성을 세우는 투쟁은 온실가스 배출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곳, 가령 대기업 자본에서 더 큰 비용을 부담하는 ‘형평성’을 세우는 투쟁이기도 할 것이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로 해고나 지역경제 쇠퇴와 같은 부담이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비용’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은, 국가가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져야할 책임이다.

또 에너지는 본질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필수재’이자 ‘공유재’다. 어딘가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며 상품을 끝없이 찍어내고, 어딘가에서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송전탑 등에 농사를 짓고 살아가던 터를 빼앗기며, 어딘가에서는 치솟는 난방비를 감당하지 못해 옷을 최대한 껴입고 가스난로에 의지하며 겨울을 살아낸다. 그래서 에너지는 그 자체로 존엄한 삶이 모두에게 보장되는가를 가늠하는 ‘평등’의 척도이며, 존엄한 삶을 공동체에서 보장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할거냐는 ‘체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산업 전환, 에너지 전환의 과정에서 노동자들과 지역 주민, 에너지 빈곤을 겪는 이들이 에너지의 생산과 분배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경로가 만들어지는 게 중요한 이유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시도 이후 매주 탄핵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기후정의동맹은 기후정의를 이뤄낸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이야기를 널리 나누고자 기후위기비상행동, 종교환경회의, 탈핵시민행동과 매주 토요일 퇴진집회 본행사 전에 <윤석열 퇴진! 기후정의 오픈마이크>를 열고 있다. 12월 28일에 열린 3차 오픈마이크에서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인 이태성 동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계엄, 사살, 수거, 총부리를 시민에게 겨누는 그 권력”을 윤석열에게 부여한 세상을 끝내고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노동을 거부할테니, 햇빛과 바람을 이용해 만들어낸 깨끗한 전기가 누구에게나 가닿을 수 있게 하는 싸움을 ‘함께’ 해보자고 했다. 그의 말처럼 윤석열 탄핵 이후의 세상은 단지 윤석열이 대통령 아닌 나라가 아니라 기후위기, 기후 부정의를 멈추고 그 누구라도 존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노동자들과 기후정의운동의 투쟁은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