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단원경찰서(서장 구장회)가 서울신문사에 북한 관련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청하는 '업무협조의뢰'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지역 언론사나 인터넷 언론사에는 이미 같은 방식으로 기사 삭제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이는 경찰의 보안 부서들이 사회단체들을 대상으로 홈페이지들을 지속적으로 사찰하며 친북 게시물들을 삭제하라고 요구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불응시 형사처벌되는 행정명령을 통해 삭제를 강제해 온 것의 확장으로 보인다.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과 인권운동사랑방은 경찰-방심위-방통위의 잇따른 게시물 삭제 요구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노동해방실천연대(준)은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방통위 행정명령에 불응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지 않은 자유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낯선 '북한 찬양' 글들에 대한 검열은, 이렇게 언론보도에 대한 검열로 확장되고 있다. 언론에 이미 보도된 북한 기사를 옮겨왔을 뿐인 게시글조차 삭제 명령의 대상이 되어왔던 걸 감안하면, 언론사의 북한 보도에 대한 검열의 시도는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한 곳에서 슬그머니 제한되기 시작한 표현의 자유는, 곧 다른 곳에서도 제한되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확인한다. 특히 이런 검열의 움직임이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허구적 종북 몰이로 남한 내 진보적 운동들이 위축되는 흐름 속에서 강화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정당 정책이나 학문 연구라고 해서, 확대되는 검열의 예외가 되리라 생각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경찰이 서울신문사에 삭제를 요청한 기사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기사를 연합뉴스가 인용, 보도한 것으로 북한 최고지도자의 동정이나 객원 집필자가 기고한 북한 무기 실태 분석 등의 내용이라고 한다. 최고 지도자에게 권력을 집중하고 있는 북한 정치 체제의 특성상, 북한 지도자의 동정은 곧 북한 정부가 현재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정보일 것이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적대하고 있는 현실에서, 북한의 무기 실태 분석은 남북간 군사 적대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평화통일의 상대인 북한의 현재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여한다. 우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정치·경제 체제를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른다. 60년이 넘는 기간을 갈라져 살며 서로 적대해왔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도 깊어져 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 체제가 얼마나 독재적이며 경제적으로 낙후했는지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지만, 정작 북한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필요와 요구를 갖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상대가 어떤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상황에 놓여있으며 현재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르고선, 상호 이익에 기초한 대화와 협력은 불가능하다. 남북간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고서 군축과 평화 체제의 필요를 느끼기도 어렵다.
한반도는 식민 지배와 강제된 민족 분단, 동족상잔과 내부 학살의 비극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들이 완전히 상실되었던 역사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채 진행 중인 땅이다. 그런만큼 분단과 남북적대의 평화적 극복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존엄과 인권 존중을 위한 기초이자 전제조건이다. 우리 헌법이 평화 통일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다시는 그런 억압과 피흘림의 고통을 겪어서는 안되겠으며 서로 나뉘어 적대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는 국민적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 국민은 주권자로서 우리 정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정부와 평화적으로 통일을 해나가도록 견인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 북한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언론의 자유다. 남한의 국민으로서 북한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거나, 국가 권력의 검열로 편향된 정보만 습득하는 상태에서는, 우리 정부가 평화적 통일을 위해 취해야 할 올바른 방향과 정책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 실현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각자 비추어 판단할 양심을 자유롭게 형성해갈 권리를 침해받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양심은, 다양한 입장과 정보들을 현실과 대조하며 비판적으로 검토해가는 와중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고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사상 경찰'의 임무다.
경찰은 당장 북한 관련 정보와 언론 보도에 대한 자의적 검열을 중단하라. 방심위와 방통위 역시 경찰의 검열을 민간의 자율적인 심의로 포장해주는 역할을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들의 알 권리와 언론 자유, 양심의 자유에 개입하지 말라.
2014.9.5
인권운동사랑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