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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바라본 외국인노동자의 현실

“외국인노동자 보호법 제정 서둘러야”


일전 신문에 보도된 내용이다. 필리핀을 방문하던 한국인 사업가 두 사람이 필리핀 마닐라 공항의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내리는 필리핀 청년 여섯 명에게 둘러 싸여 몰매를 맞았다. 즉시 공항경찰대에 신고를 했는데, 출동한 경찰들에게 연행된 필리핀 청년들은 한국에서의 취업기간중에 당한 학대와 모욕을 이야기했고 이에 흥분한 경찰들이 합세하여 재차 폭행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에 신고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 강제출국을 당하고 말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봉변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놈 개새끼』라는 책이 출간되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그 모든 봉변의 이유인 즉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봉변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 주변에서 쉽게 중국교포나 외국인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언어나 문화의 차이, 불법체류, 불법취업이라는 신분상의 약점들 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여러 가지의 사건과 사고, 생활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하소연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겪는 문제와 고통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고 함께 아파해야 할 문제이다.

작년 한껏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13일 건축현장에서 열사병으로 쓰러져 3일만에 사망한 중국 내몽고에서 온 교포 유영희(49․남) 씨는 국립의료원 영안실에서 2백35일간 방치되다가 약 8개월만에 장례를 치르고 화장되었다. 그것도 몽고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아버지의 비보를 접하고 한국에 온 아들 유성호(18) 군이 부천에서 공장을 다녀 벌은 돈 1백만 원을 가지고 병원측에 사정을 하여 서두른 결과였다.


8개월만에 겨우 장례식 치러

방글라데시인 3명 모타레브, 굴짜르, 화룩 씨는 플라스틱 사출공장의 천장 지붕 속에, 창문 하나없는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발생한 화재와 유독가스를 피하지 못하고 온통 숯덩이처럼 타버렸다. 하루에 4구의 장례를 치러 시신을 방글라데시로 보내고자 비행기를 기다리며 김포공항 화물청사에서 세찬 눈발 속에서 허무하게 허공을 응시하던 방글라데시 대사관의 공사 바타차야 씨와 그 직원들,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과연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숯덩이로 변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한국 정부는 지난 8월말 현재 외국인 노동자가 18만3천 명이 넘어섰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인력의 2%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이들의 대부분이 소위 3D 업종으로 분류되어지는 영세한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고임금과 심각한 인력난을 해결해 주고는 있지만 일한 만큼의 대가나 최소한도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고통을 겪고 있다. 작업장 이탈을 위한 정보교환을 차단하고자 전화통화 금지, 편지 금지, 외출금지, 여권압수 등을 일상적으로 당하고 있다. 또한 고의적으로 5-6개월씩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붙잡아 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이러한 결과가 작년 1월 9일부터 17일까지 전 국민을 충격 속에 몰아 넣었던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들의 명동성당 농성사건이었다.


외국인노동자 18만3천 명 육박

우리나라는 법치국가로 근로기준법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5조를 보면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으며 이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됨을 알리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헌법과 국제인권법은 ‘인간의 사회, 문화, 경제적 기본권리에 대한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들은 이러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차별금지는 헌법에 명시뿐

현재 김영삼 대통령은 ‘세계화’ ‘국가 경쟁력 강화’를 부르짖고 있다. 그런데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해 이같이 행하면서 어떻게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국가 경쟁력 강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우리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안타까와하면서도 국가 위신이나 국가 이미지가 추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안타까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비근한 예로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대학졸업자 이상의 고학력자들이며 장차 그 나라의 지도자로 살아 갈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국에 와서 이처럼 수모와 천대를 당하고서도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 갈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이며, 그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서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일 것인가?”하는 중장기적인 긴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을

유엔은 97년을 ‘이주 노동자의 해’로 선포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의 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이자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과거 ‘자본’은 이동하지만 ‘노동력’은 고정되어 있다는 학설이 무너지고 ‘자본’도 이동하지만 ‘노동력’도 이동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WTO협정에 이은 블루라운드의 논의도 그 연장선이다. 우리 정부도 당장 올 하반기에도 3만여 명을 추가로 도입하기로 이미 결정한 상태이며 이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외국인노동자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은 첫째, 통일시대를 대비한 외국인력 도입정책의 수립 둘째,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사면조치 셋째, 산업기술연수제도 철폐 넷째, 외국인노동자 보호법 제정 등이다. 이점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외국인노동자보호법에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해성 목사(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소장, 한국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