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은 한 국가의 상징이다. 국기, 국가, 국장, 국화와 더불어 국법(국헌)은 국민 모두가 소중히 간직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애국가는 4절까지 지어놓고 1절만 부르는 것이 상례가 되었고 그나마 생략하는 국민의례가 새 부분이다. 나라꽃인 무궁화에 대한 인식은 더욱 한심하다. 무궁화강산이 되어도 부족할 판에 벚꽃이 이 땅을 뒤덮고 있으니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망언과 망발을 일삼을 만하다. 나아가 국헌에 이르러서는 아예 말문이 막힌다. 우리나라 헌법을 이해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법전공자들이나 알 일이지 일반국민이 알 바 아니라고 내팽개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헌법, 뒤틀림의 역사
헌법은 초등학교때 부터 알기 쉽게 가르쳐야 한다. 헌법을 생활화하여야 한다. 헌법을 국가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의명분은 그동안의 치욕스런 헌정사에 의해 묵살되었다. 헌법을 소중하게 여기려는 애국적 자세보다는 집권가들이 자신들의 권력야욕을 채우기 위해 정략적 도구로 전락시킨 매국적 작태의 악순환이었다.
이른바 제헌헌법부터 뒤틀림이 시작되었다. 이승만이라는 한 개인의 군림야욕에 휘말려 내각제헌법만이 대통령중심제 헌법으로 급조되는 진통을 겪었다. 그것도 모자라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수치스런 흔적을 쌓아가다 결국은 4월혁명으로 무너져 내린 이승만 정권은 쓰레기통이었다. 4월 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은 못할 망정 훼손시키지나 말았어야 할 박정희의 이른바 군사쿠데타는 한국도 사람이 사는 곳인가라는 반문을 하게 만들었다. 후진국․미개국의 전형을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황폐시킨 박정희 정권은 악취가 진동하는 두엄자리였다. 삼선개헌, 유신헌법으로 이어지는 헌법유린사태는 국민들에게 헌법이란 독재자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유신헌법이라 불리는 72년 헌법은 이름이 좋아 헌법이지 독재권력의 인권폭압장치였다. 남과 북이 비슷한 시기에 강력한 권력집중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도 의아스러운 일이다. 70년대 한반도의 상황을 극명하게 들어낸 남과 북의 헌법은 민주화의 여정에서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돌출변수였다.
그 이후 전두환 정권의 자칭 제5공화국 헌법도 예외는 아니었다. 약간의 각색으로 국민을 호도하려했다. 박정희의 적자를 자임한 전두환은 헌법 개정에서도 그 본성을 그대로 들어냈다. 7년 단임이라는 사탕발림으로 국민을 우롱했고 국민을 속였다. 6월항쟁의 산물인 현행헌법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 헌법도 상처뿐인 영광인 셈이다. 서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과반수득표라는 마지노선을 무시하고 한 표라고 더 많은 자가 되도록 하였다. 그러다보니 40%도 되지 않은 득표율로 대통령을 하게되고 그만큼 정당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60년 헌법과 87년 헌법을 그나마 국민의 뜻이 많이 반영된 헌법이라고 한다면 이 두 헌법만이 우리헌정사에서 민주적 헌정질서로 평가될 만 하다. 독재권력이 국민의 저항에 굴복하고 난 후의 불가피한 선택. 이제는 더이상 어리석은 뒷걸음질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헌법을 기본권보장 차원에서 인식하는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정치인들의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툭하면 권력구조부문의 개헌을 들먹이는데 그 목적이 불순하다.
국민기본권 보장을
앞으로 개헌을 생각하려면 기본권 부문부터 먼저 적극적 보장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그것도 몇 개월 사이에 졸속으로 처리되어서는 안된다. 몇 년을 두고 진지하게 논의한 후 최선의 방안을 도출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한 국가의 얼굴로서 손색이 없고 자랑스러워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헌법이 있는 것이지 집권자의 편의를 위해 헌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헌법은 국민들에게 되돌려져야 한다. 모든 국민들은 헌법을 상식화, 생활화하여야 한다. 이 길이야말로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민주사회의 지름길이다.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상처받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더기헌법을 새롭게 깁자
지난 17일은 49주년을 맞는 제헌절이었다. TV 프로그램으로 2개가 방영되었고 기념식 장면을 방영한 것 말고는 이날이 왜 공휴일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관심의 분위기였다. 중앙종합일간지들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기념식 주관이 국회로 바뀌었고 조촐하다 못해 초라한 기념식으로 전락했다. 제헌절 노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이고 제헌절이 무슨 날인가를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은 편은 아니다. 명색이 4대 국경일의 하나인데도 부끄러운 대목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의 헌법을 우리가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겨주겠는가. 만신창이된 누더기 헌법이라고 천대만 해서는 안된다. 한 나라의 민주화수준은 인권의식수준이고 헌법인식수준이다. 모래성 같은 경제발전에 희희낙락하는 골빈 작태는 속으로 곪고 있는 인권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우리헌법에 규정된 기본권 조항은 비록 30개 조항이 채 못되지만 그 속에 담긴 인권보장의지는 헌법전체에 이른다. 헌법은 나를 지켜주는 인권의 등불이다. 인권의 사각지대가 없는 정말 살맛 나는 세상은 제대로 된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 헌법이 생활화된 사회이다.
김동한(법과 인권연구소장, 광주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