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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길가던 대학생, 황당한 구금

불심검문 응했더니 어느새 피의자로


황당한 이야기 하나.

연세대 기계공학과 선후배인 조영상(남·3학년) 씨와 나정인(여·1학년) 씨. 두 사람은 지난 5월 30일 오후 3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까닭모를 구금을 당해야 했다. 이유가 있다면 단지 그들이 '대학생'이라는 사실.

두 사람의 봉변은 서울역에서부터 시작됐다. 남대문시장에 옷을 사러 가던 그들은 이날 서울역 주변을 지나던 모든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경찰의 검문을 받았다. 당시 서울역광장에서는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국민대회가 열렸고, 경찰은 이 집회에 대학생들의 참여를 봉쇄하기 위해 일제 검문검색을 벌였던 것이다.

버스에서 내린 그들에게 전경 한 명이 다가와 '학생증 제시'를 요구하자, 별로 거리낄 게 없던 그들은 순순히 학생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학생증만 보여주면 보내줄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순진했다.


학생증 제시하자 임의동행 요구

학생증을 보여주고 나니 이번엔 "잠깐 조사를 할 게 있다"며 임의동행을 요구한다. 두 사람은 순순히 따랐고,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학교 이름까지 불러주었다. 잠시후 "더우니까 조사가 끝날 때까지 '잠깐만'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에 두 사람은 전경버스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누군가가 "언제 끝나요"라고 물으면, 전경과 사복형사의 대답은 항상 "금방 끝나니까 잠시만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차 안에는 주말을 맞아 고향에 내려가려던 사람, 친척의 49제를 맞아 지방에 내려가는 사람, 1주일전 군에서 제대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던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바쁜 사람들이었다.


정해진 속셈

하지만 경찰의 속셈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잠시 뒤 경찰은 "잠깐만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하자"며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일순 반발했다가도 "아주 잠깐이면 된다"는 말에 곧 흥분을 가라앉혔다. 불만을 표시하는 학생들에게 한 전경은 "다음부터는 학생증말고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라"며 친절한 충고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20-30분이 더 경과한 뒤 버스는 동대문경찰서로 이동했다. 이때서야 비로소 버스 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피의자'의 신분으로 끌려가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호출기 비밀번호까지 들춰내

동대문서에 도착한 두 사람은 다시 노량진경찰서로 이송되었고, 경찰의 태도는 이제 범죄자를 다루는 듯했다. 의자도 아닌 맨 바닥에 앉을 것을 지시받은 채, '조사'는 시작됐다. 형사는 조 씨에게 '연행' 전날인 29일부터의 모든 행적을 조사하고는 밤 11시경 집으로 확인전화까지 걸었다. 또 허락도 없이 소지품을 뒤진 것은 물론, 집으로의 연락도, 임의퇴거(임의동행 후에도 임의퇴거는 가능하다) 요청도 모두 묵살했다.

나정인 씨가 당한 수모는 더 치욕스럽다. 형사는 그에게 학회 구성원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했고, 심지어 호출기 비밀번호를 말하도록 해 메세지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나 씨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숙직실에 나뒀던 가방에서 물건이 사라진 것이었다.


"대학생인 걸 탓해라"

새벽 2시까지 조사를 받은 조 씨가 경찰에게 따져 묻자 그 경찰은 "내가 너희 잡아왔냐? 나는 니들이 잡혀왔기 때문에 조사하는 것 뿐이다"며 "이 땅에 태어나고 니들이 대학생이라는 것을 탓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12시간이 지난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조 씨 일행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것도 '훈방'이라는 처분을 받고…. 나정인 씨는 "이 나라의 대학생은 자유롭게 아무 곳이나 다닐 자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