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요약>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학술대회

2주제: 냉전체제 폭력과 동아시아 여성(한국)


◎ 국가폭력과 여성체험- 제주 4․3을 중심으로
- 김성례(서강대 교수)

50년전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사건은 반공규율체제의 확립에 단초가 되는 사건이다.

당시 토벌대에 의한 여성의 수난은 집단강간과 반인륜적인 성폭력의 양태로 나타난다. 임신부와 출산하고 있는 부녀자를 “빨갱이 종자를 없애버려야 한다”면서 총살하고, 대중 앞에서 연행자들 가운데 남녀를 지목하여 옷을 벗긴 후 강제로 성행위를 시키다 총살하는 반인륜적이고 도착적인 성적 폭행은 ‘집단 광기’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러한 제주주민과 여성의 무고한 희생은 “빨갱이”에 대한 증오의 산물이었다. 4․3 당시 여성들이 경험한 도착적인 성폭력은 여성을 빨갱이 인종을 재생산하는 ‘빨갱이의 몸’으로 재현하여 상상적으로 자행된 빨갱이에 대한 인종적 증오와 테러라 할 수 있다.

빨갱이 혐의를 받고 연행된 마을 주민들이 집결해 있는 장소에서 나체의 여성에게 공개적인 성교행위를 강요하고 나서 성적 부위에 수류탄을 집어넣어 폭파시키는 사례라든지, 외딴 집에서 공포에 떨며 혼자 조용히 갓을 만들고 있던 입산자의 처를 집중사격하여 몸의 흔적도 없이 폭파시킨 사례는 “빨갱이의 몸”에 대한 가혹행위 이상의 의미를 시사한다. 굳이 여성의 몸을 폭파한 것은 폭파된 여성의 몸이 성적욕망의 해방을 의미하고 또한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 마을 주민에게 빨갱이 없는 반공사회의 해방을 전시하는 것이다.

한편 여성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언어도 침묵당한다. 4․3 피해에 관한 증언은 대부분 직접 피해자가 아닌 가족이나 친족, 이웃과 같이 제3자인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생존해 있는 여성피해자 가운데 성적학대 피해자인 경우 공식적으로 알려진 직접적인 증언은 아직 없다. 특히 강간을 비롯해 성적유린에 관한 증언은 주로 남성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3 당시 보편화되었던 성고문의 방법은 여성을 나체로 거꾸로 매달아놓고 쇠좆매(채찍)로 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성고문 여성피해자의 증언에서는 ‘나체’부분이 빠져있다. 토벌대 경찰간부였던 김호겸은 여성을 ‘나체로 매달았다’는 사실에 강조점을 둔 반면, 여성 증언자는 단순히 거꾸로 매달려 매맞았으나 혐의가 풀려나 살아나온 사실을 강조한다. 여성의 침묵과 남성의 증언 사이에는 성고문이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 여성이 고통을 당하는 자라면 남성을 고통을 구경하는 객관자이다. 여성은 자신의 찢겨진 나체를 바라볼 수 없다. 나체의 고통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몸의 고통은 몸 그자체로 밖에는 얘기를 하지 못한다. 이것이 고통의 재현의 한계이다. 당시의 피해자 중에는 미혼의 처녀들도 있었다.

반공폭력의 체험을 말하는 것은 폭력을 몸으로 재현하기 때문에 언어를 거부한다. 대신에 이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현실과 기억의 고통에 맞서는 방법을 취한다. 성폭력의 체험을 언급만 하더라도 여성피해자는 혼절한다. 이와같이 공포에 시달리는 육신은 말을 거부한다.


◎ 4․3을 통해 바라본 여성인권 피해 사례
-오금숙(제주4․3연구소 연구원)

4․3과 관련된 여성피해 유형은 크게 ‘고문치사와 성폭행’ ‘토벌대와의 강제 결혼’ ‘4․3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후유증’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서북청년단이 강제결혼을 감행하게 된 원인은 두 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성적 대상물로 맘에 드는 여자를 골라 강제 결혼하는 사례와 또하나는 제주에 안착하려는 목적으로 재정 확보를 위해 재력가의 딸과 강제결혼하는 사례다.

49년 3월이 되면 초토화 작전이 마무리되면서 유혈 사태는 수그러든다. 수많은 고아가 발생했고 남편과 부모형제를 잃은 여성들이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괴롭혔던 것은 생계 유지, 연좌제, 호적, 사회적 편견과 멸시였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고통만이 전부는 아니다. 강간을 당하고서도 속으로만 삭여야 했던 사람들, 가족의 죽음을 숨죽여 지켜봤던 사람들, 부모가 처형될 때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불러야 했던 사람들, 지옥같은 시절을 견뎌 낸 이들의 정신세계는 과연 어떠할까?

4․3 당시 여성은 ‘인간’이기보다 하나의 ‘도구’이자 ‘수단’으로 취급되었다. 서청이나 응원경찰들은 여성을 ‘성적 노리개’라는 도구로 인식했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왜곡된 남성우월주의적 성의식은 국가적 폭력 속에 더욱 확대되었다.

4․3 피해를 분석할 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동서 냉전상황이라는 점이다. 이승만은 서울에서 열린 서북청년단 총회에 참석해 “당신들이야말로 신원이 가장 확실한 사람들”이라고 격려하면서 ‘저기 남쪽 끝 외딴 섬에 빨갱이들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런 그들이 제주에 와서 ‘빨갱이 여편네’를 고문, 강간, 살해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죄의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명백히 동서 냉전이 몰고 온 국가폭력이고 잔혹한 인권유린이다. 이제 우리는 여성인권운동의 강화, 왜곡된 성의식의 교정, 반전평화운동의 활성화, 국제적 여성운동의 연대로 나서야 한다. 특히 전시와 같은 상황에선 여성 피해가 더욱 잔인하고 큰 규모로 나타난다. 미래의 인류역사에 있어서도 ‘전쟁’은 이와 똑같은 고통을 여성들에게 짐 지울 것이다. 진정한 여성인권확보는 반전평화운동 속에서 보장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