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넷, ‘인텔 펜티엄Ⅲ 프로세서’ 반대운동
컴퓨터 칩을 통한 사생활침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국내 민간단체가 관련 제품의 판매중단과 제품회수를 요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나섰다.
지난 2월 28일부터 시판된 인텔 펜티엄Ⅲ 프로세서에 대해 ‘시판 철회운동’을 벌이고 있는 진보네트워크센터(대표 김진균)는 “프로세서에 부여되는 고유번호가 컴퓨터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가 크며,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이 칩은 컴퓨터의 주기억장치를 운영하는 부품으로, 인텔사는 칩마다 고유번호(Processor Serial Number, PSN)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고유번호가 부여된 칩이 내장된 컴퓨터를 사용해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할 경우, 그 인터넷 사이트는 어떤 컴퓨터가 자신의 사이트에 접속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인텔 펜티엄의 고유번호를 추적하면, 컴퓨터 이용자가 네트워크 상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세히 파악할 수 있으며, 결국 컴퓨터 이용자의 가상공간 활동 전체가 감시당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정보기관 악용 가능
특히 컴퓨터 이용자들의 인터넷 이용현황을 분석하는 것이 개인의 주요활동과 성향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PSN을 바탕으로 축적된 이용자들의 정보가 정보기관이나 기업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도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사회단체들은 PSN 개발에 FBI(연방수사국) 등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의혹을 제기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얼마 전 시행계획이 폐지된 전자주민카드 사업에 안기부와 경찰이 개입한 사실에 비춰볼 때, PSN에 대한 정보기관의 개입가능성은 매우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밖에도 특정 PSN에 대한 접속 차단이 가능해짐에 따라,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해지며, 해킹을 통해 PSN 정보가 유출될 경우, 범죄행위(신용카드번호 위조사용 등)가 빈발할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앞으로 고유번호를 제시하지 않는 사용자의 인터넷 접근을 막는 웹사이트가 생겨날 수 있으며, 이는 사용자들이 어쩔 수 없이 PSN을 사용하도록 강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진보네트워크센터는 “결국 PSN은 인텔사가 인터넷이라는 세계적인 의사소통 공간을 통제하고 지배해 21세기 빅브라더로 성장하려는 독점야욕 때문에 개발한 기술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한편 인텔사는 지난 1월 25일 칩 운영에 대한 보완책을 발표했으나, 사생활 침해를 막는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인텔이 프로세서 고유번호 작동을 중지시키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소프트웨어적으로 이를 보완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독일의 컴퓨터전문지 <C'T>가 ‘인텔사의 보안장치에 허점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바도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펜티엄칩에서 PSN을 제거하고, 이미 출시된 제품 전부를 리콜(Recall)하는 방법뿐”이라며 인텔사가 이를 거부할 경우, 국내외 사회단체들과 함께 강력한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통합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