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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박하사탕, 그리고 홍자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문인들이 영화, 박하사탕에 대하여 말하고 있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을 느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영상 운운의 선전포스터를 보고 철도원을 볼까, 어쩔까, 하다가 왜, 뭣땜에 사람들이 그리도 박하사탕, 박하사탕, 해쌓는가, 궁금해져서 마지막 순간에 나도 박하사탕 쪽으로 기울어졌다. 영화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내가 처음부터 울 준비를 하고 봐서 였을까.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그리고 배우 설경구의 표정, 몸짓들이 시간을 거슬러 가며 보여지는 풍경들이 사람 가슴을 '애리게' 했다. 흔히 이야기꾼이라 하는 소설가 출신 감독이라서인가. 영화 속에는 확실히 '이야기'가 녹아 들어가 있었다. 맞다. 소설을 쓰려면 저렇게 써야 하는데, 개인과 시대를 짓누르는 아픔을, 아프더라도 헤집어 보지 않고는, 그런 시도 없이 하는 소리란 '부질없는 헛소리'들일 뿐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영화는 정말 좋은 영화였다.

하지만....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설경구, 영화속 주인공 김영호의 아내로 나오는 김여진이 분한 홍자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건데, 영화는 정말 좋았지만, 그래서 더 이상 딴지 걸 건덕지가 없긴 하지만서도 그래도, 영화 속 홍자, 혹은 현실 속에 있을지도 모를 '홍자들'에 대해서 뭔가 이게 아닌데, 하면서 한마디쯤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홍자는 철저하게 윤순임이라는 여성과는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는 듯이 보였다.

말하자면 김영호의 첫사랑인 윤순임이 성녀라면 현재의 아내인 홍자는 악녀라는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잣대가 그대로 투영된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누차 말하건 데 영화는 좋았지만, 내가 여성으로서, 그리고 아이엄마로서 늘상, 눈에 안보이게, 혹은 눈에 보이게 느끼는 '폭력적인 시선'이 영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이분법적 잣대란, 늘 육체적으로 '순결(?)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 김영호라는 인물이 시대에 대하여, 작은 가해자이자 큰 피해자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동정과 연민이나마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물로 그려졌다면 홍자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주인공의 비극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부속장치로만 기능하다가 '아파트 문을 닫는 것'으로 영화 속에서 사라지고 마는, 한마디로 '나쁜 여자'로만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 김영호의 망가져 가는 삶을 바라볼 때 만큼이나 내 가슴을 '애리게' 하던 것이었다.

기실 우리의 삶은, 주인공 주변에 머물다 사라지고 만 무수한 '홍자'들에 의해, 정말, 버리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그 어미들에 의해 유지되고 우리 아이들이 그나마 커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홍자들'에게도 '인격'과 '인권'이 있다!

공선옥(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