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원회, '복수노조 유보' 담합
노동자의 기본권인 '단결권'이 노사정 '흥정' 속에 유보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9일 노사정위원회(위원장 장영철)는 '단위사업장 내의 복수노조 허용'을 5년간 다시 유보하기로 결정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이번 결정에 대해 "복수노조 시행에 필요한 노사 의식과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복수노조금지 조항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으로써 수 년 전에 폐기되었어야 할 조항이었다. 이미 97년 노동법 개정 당시 '5년간 유보'라는 단서 아래 복수노조 허용이 결정됐음에도, 이를 '의식과 여건의 미성숙'이라는 모호한 이유 아래 또다시 유보시켜 버린 것이다.
복수노조 허용에 반대해온 재계는 '교섭창구의 단일화' 문제를 그 이유로 내세워 왔다. 단위 사업장에 노조가 여러 개 생기면 협상 과정도 복잡해지고 노무관리가 곤란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복수노조 허용을 극구 저지하려는 재계의 속내는 이른바 '민주노조'의 건설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을 원천봉쇄하려는 데 있다.
파견철폐공동대책위 구미영 집행위원은 "삼성그룹의 경우 이미 유령노조가 있기 때문에 노조 설립 신고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인데, 그나마 희망을 가졌던 복수노조 허용이 유보됐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힘은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권리를 주장하려 해도 기존 정규직 노조가 자신들을 받아들여주지 않는 곳이 허다한데 복수노조조차 안되면 소외되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비판했다.
비정규직 단결권 원천봉쇄 가능
특히 이번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은 '복수노조 금지'와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이라는 두 조항을 거래 형식으로 합의하고 있어 더욱 충격적이다.
하나는 노동기본권에 해당하고, 다른 하나는 각 사업장별 특성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사안임에도, 두 사안이 '흥정'이 대상이 된 것이다.
노사정 합의의 한 주체인 한국노총(위원장 이남순)의 정책실 관계자는 "노동자들의 단결권 보장이라는 큰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현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사업장 중심의 노조 운동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하면 노동 운동대오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파견철폐공대위의 구미영 집행위원은 "이번 합의는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과 대규모 사업장 노조 사이의 역학 관계를 지키기 위한 담합"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민주노총(위원장 단병호)의 교육선전실 관계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했다고 해서 그대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라며 "앞으로 단위 노조와 지역별 노조와 함께 국회 통과 전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