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KBS노조는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유급휴가 중단을 통보했다. 지난 2월 19일 100인위원회의 성폭력사건 실명공개 이후, 가해자와 한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하는 고통을 중단시키기 위한 피해자 보호조치로서의 특별유급휴가가 KBS노조 8대 집행부의 제멋대로식 결정에 따라 두 번째 중단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피해자에 대한 특별유급휴가 요구가 받아들여졌을 때만 해도, 우리는 내심 놀랐었다. 휴가를 준다는 것은 가해자와 대면해야 하는 피해자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므로. 그러나 단지 ‘가해자와 대면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수많은 사회운동단체들이 공문을 보내고 피해자가 몇 번씩 고통을 호소해야 했던 상황은, 원칙 없는 휴가조치란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일방적 휴가 중단 통보 -- 그 첫 번째 배신은 추가 피해자가 확인된 바로 그 날 저녁에, 두 번째 배신은 언론노조의 강철구 제명 조치 이틀 후에 이루어졌다. 피해자 보호에 대한 인식 결여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무원칙’ 속에서 KBS노조는 피해자에 대한 휴가조치를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한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적 성의식은 운동사회라고 다를 것이 없다. 아니, 그러한 무감각함을 ‘조직에 대한 걱정’이라는 비장함으로 능수능란하게 가려 버리는 운동사회는 일반 사회보다 훨씬 더 역겹다. 현재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부서전환”이 고용주의 의무사항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안 지켜도 처벌은 과태료 300만원에 불과하다. 운동사회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이러한 법 조항 자체를 깡그리 무시한다. 하물며 공영방송 노조라는 권력을 가진 이상에야 무서울 것이 없을 게다. 피해자의 침해된 권리보다 가해자의 앞날을 더 걱정하는 사회가 그들의 폭력을 얼마든지 용인해 줄 테니까 말이다.
KBS노조 성폭력사건 피해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과 상처, 끝없이 지독한 싸움의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피해자가 고통에서 벗어나 침해된 권리를 회복하고 완전히 치유되는 것, 이것이 바로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다. 따라서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당 조직이 취해야 할 첫 번째 조치는 피해자의 고통을 중단시키기 위한 가해자 격리이며, 이는 호의도 은혜도 아닌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인 것이다. 운동사회여, 자신의 무감각과 무원칙을 부끄러워하라.
시타 (운동사회성폭력뿌리뽑기100인위원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