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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윤창중 성폭력 사건이 공분으로 그치면 안 되는 이유

공직자 윤리를 세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온 나라가 윤창중 얘기로 그득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과정 수행 중 윤창중 전 대변인이 벌인 성폭력 사건에 대해 연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내놓은 ‘대안’을 보아도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위 윤창중 ‘사태’로 들끓고 있는 공분이 ‘분’으로만 그치지 않길 바라며, 이번 일을 용기 있게 폭로한 피해자인 여성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그래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윤창중 ‘사태’가 아닌 ‘성폭력 사건’이라는 정확한 표현이 사용되어야 한다.)


진심 없는 ‘사과’,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윤창중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면서 가장 먼저 그의 상급자인 이남기 홍보수석이 사과 발표를 했다. 그런데 그의 사과는 피해자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었다. 이번 일로 공분하는 국민/동포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과였다.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윤창중 전 대변인은 “물의를 일으킨 자로서 국민과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여자‘가이드’에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가이드’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에서 비롯된 물의로 사실과 다르며 이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던 게 주 내용이었다. 이후 공방의 내용은 귀국종용 여부로 전환되었다. 윤창중 개인 사정으로 귀국했다던 청와대의 발표는 거짓이었고, 관계가 없다며 발뺌했던 주미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의 입장 또한 거짓이었다.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가운데, 허태열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이어졌다. 이들 또한 국민들에 대한 사과로 시작하였고, 이번 일을 계기로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에 대해 사과를 언급하긴 했지만, 다른 내용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을 보며 저들은 왜 ‘사과’하는 걸까 질문하게 된다. 줄줄이 이어진 사과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 진실과 진심, 그러나 그들이 말한 진실과 진심은 피해자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런 일”을 저지른 윤창중으로 인해 국격이 훼손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윤창중 성폭력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의 인사실패와 국정운영을 둘러싸고 공격과 수비의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은 애초 부적절한 인사가 문제였고, 새누리당은 윤창중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공직자 기강 점검이 필요하다 말한다. 이번 일로 청와대는 순방매뉴얼을 만든다고 한다. 방미과정 중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의 ‘진상짓’도 제기되는 가운데 저들의 뇌구조에서는 별다른 일이 아니었을 이번 ‘사태’가 과연 어떤 경종이나 울릴까 싶다. 여기에 ‘윤창중의 그녀’라는 지칭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신상털기를 하면서 ‘반역자’, ‘국제좌빨’의 딱지를 붙여 퍼뜨리고 있다는 소식은 광기마저 느끼게 한다.

‘윤창중 성폭력 사건’은 윤창중 개인이 저지른 잘못과 물의를 꾸짖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윤창중 개인’에만 시선이 가는 한, ‘한 번의 실수 또는 재수 없어 걸린 사건’이라는 프레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윤창중 성폭력 사건’은 여성-남성이라는 젠더 위계와 인턴-대변인이라는 직위 차이가 맞물린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 성폭력 사건이 알려졌을 때 무엇보다도 진심을 담아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먼저였어야 했다.

의례적인 ‘사과’는 피해자에게 더 상처가 될 뿐이다. 성폭력 신고를 한 피해자에게 돌아온 것은 문화원과 청와대의 조직적 은폐 시도였다. 처음 성폭력 사건을 접한 문화원의 반응은 묵살이었다. 이어 문화원과 청와대는 사건을 무마하려고 경찰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회유했다. 설득이 되지 않자 한 짓이 가해자를 대동하여 ‘사과’시키고 얼버무리려한 것이었다. 용기 내어 드러냈건만 이를 전면으로 부정당한 것, 이러한 조직적 은폐 시도는 피해자에게 그 자체로 또 다른 가해였다.


제2, 제3의 윤창중이 판치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이번 사건으로 김형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등 과거 공직자들의 성폭력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여도 직함이 유지되고, 공공연하게 성상납이 판치는 현실은 매번 강조되어 온 공직자의 ‘윤리’ 문제로 결코 바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에 대한 공분이 뜨거운 이유는 저마다의 삶속에서 겪었던 경험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작년 한국여성민우회에 접수된 고용평등 상담통계에 따르면 직장 내 성폭력이 가장 많은 상담유형이었고, 피해사례의 절반이 계약직이나 파견직의 경우였다. 여성가족부가 진행한 성희롱 실태조사에서도 비정규직의 성희롱 피해가 정규직보다 2배 이상 높게 나왔다고 한다. 성희롱, 성폭력의 상황에서 대부분이 그저 참고 넘어가는 이유는 문제를 제기하면 바로 계약해지 되는 등 고용 상 불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11년 6월 여성가족부가 있는 청계천변에 작은 텐트가 쳐졌다. 성희롱을 알렸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된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농성텐트였다. 1년 넘게 지속된 관리자들의 성희롱을 제보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징계해고였다. 이후 성희롱 피해의 고통, 가해자, 하청업체, 현대차까지 무수히 반복된 2차 가해에 맞서 싸운 그녀와 그녀의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한 사람들의 힘으로 그녀는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성별, 고용형태별 온갖 위계가 맞물려 권력으로 작동하면서 폭력은 발생한다. 비정규여성노동자의 열악한 지위를 이용한 폭력, 이런 비하와 몰인격적 태도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 자본의 막강한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는 현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근본적인 권력구조의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폭력은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윤창중 성폭력 사건’의 숨겨진 전모가 드러날수록 들끓는 공분이 ‘분’을 넘어 권력관계로 작동하는 다양한 위계들을 흔드는 ‘힘’으로 이동하길 바란다. 자본과 가부장 권력을 뒷받침하는 사회구조와 국가권력을 바꾸지 않는 한,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들이 있는 한 현실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