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군사재판 '다'급 판정, 8개월 삼청교육
"삼청교육대는 국민을 공포 속에 잡아넣어, 시키는 것만을 무조건 하도록 만드는 제도다. 국민을 세뇌시켜 바보로 만들고, 정부에 감히 도전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삼청교육대인 것이다." 김제시에 사는 평범한 농민 나기년 씨가 80년대 삼청교육대에 대해 입을 떼었다. 그는 삼청교육대 피해자 중의 한 명으로, 80년 9월부터 8개월간 삼청교육대에서 교육을 받았다.
나씨는 80년 8월 19일 영문도 모른 채 김제경찰서로 연행된 후, 21일 35사단으로 끌려가 교육을 받다가 군사재판을 받았다. 군사재판에서 나씨는 전주 가톨릭 농민회에서 활동했다는 사실, 몇몇 비리사건을 관계기관에 진정한 사실 등을 심문받았다. 여기서 나씨는 변변한 변론은 물론 죄명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고지받지 못하고, 가∼라 중 '다'급으로 분류되어 강원도 양구 21사단으로 보내졌다. 나씨에 의하면, 이때 재판에선 '가'급이 죄질이 가장 나쁜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삼청교육대로 간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삼청교육대는 무법천지였다. 가자마자 엎드려 뻗쳐,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시켰다. 내가 왜 이런 것을 하느냐고 멀뚱하게 서 있었더니 내게 구둣발이 날아 왔다. 그때 '여기서 이러다가 개죽음 당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나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삼청교육대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인권유린이었다. 외부와의 연락은 절대 불가능하며,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른 채 하루 하루를 보내야했다. 한번은 백내장 치료를 위해 사단병원으로 후송된 적이 있었다. 이때 나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다시 삼청교육대로 복귀하자 충격에 실신을 하기도 했다. 나씨는 81년 4월이 되어서야 제도가 바뀌어 집으로 연락할 수 있었고, 같은달 27일 교육을 마친 당일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나씨는 삼청교육대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 줄곧 농사만을 짓고 살아왔다. 삼청교육대에서 당한 일들이 너무나 억울했지만,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한 나씨에게 작년부터 간간이 들리는 삼청교육대 관련 소식은 작은 희망을 불어넣었다. 나씨는 삼청교육대 문제의 해결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배상이라고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나아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국가의 과거청산 활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제언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개혁을 좀더 강력히 밀고 나갔으면 한다. 의문사규명위의 활동기간이 짧던데,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문사위 위원들에게 좀더 막강한 권한을 줘야 한다. 그리하여 더욱 철저히 조사를 해서, 앞으로는 감출 수 있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을 국민들이 깨우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나씨는 80년 당시 자신을 군사재판했던 35사단을 상대로 재판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할 계획이다. 이것이 명예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씨의 작은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