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살인 인혁당 사건
74년 4월 중앙정보부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결성된 후 유신반대운동을 벌이던 학생들을 배후조종해 정부전복을 기도했다’며 소위 인혁당 사건을 발표했다. 인혁당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도예종씨 등 8명에 대해 대법원은 75년 4월 8일 사형을 확정했으며, 다음날 바로 사형이 집행됐다. 당시 국제법학자협회는 이 전무후무한 판결을 기억하기 위해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한다.
도예종씨 등은 대구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민주화 운동을 해온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은 고문에 의해 조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으며 △인혁당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도씨는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심장병인 협심증을 일으켜 졸도하기도 했고, 검사에게 중앙정보부 조서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면 즉시 중앙정보부로 또 불려가 고문을 당하며 조서를 다시 작성했다고 상고이유에서 증언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충분한 변론을 보장하지 않았다. 당시 변호인측은 피고인들과의 면회를 부당하게 제한당했고, 공판 2-3일 전에도 진술서 사본을 접할 수 없었으며, 검찰측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이 허용되지도 않았다. 또한 변호인측 증인은 한 사람도 채택되지 않았으며, 관계당국은 재판기록의 공개를 완강하게 거절했다.
권력유지를 위해 정권과 사법부가 담합해 만든 인혁당 사건은 오늘날 이른바 ‘사법살인’으로 불리고 있다. 27년이 지난 현재, 피해유족들은 인혁당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국가범죄의 당사자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