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납치․강제노역은 인정 못받아
98년 7월 인권유린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양지마을 수용자들에 대해 국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위법행위가 발생한 것에 대해 감독을 소홀히 한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법납치, 강제노역에 관한 청구를 기각했으며 장기간의 불법감금 등이 미친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 비해 배상액이 지나치게 적어 미온적인 판결이란 비판 역시 제기되고 있다.
의미있는 판결, 불완전한 승소
28일 서울지법 민사합의14부(재판장 손윤하 부장판사)는 충남 연기군의 부랑인 수용시설 '양지마을' 퇴소자 박모 씨 등 2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1인당 25만~3백만원씩 모두 5천 1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재중 당시 법인의 이사장 등 직원들이 수용자들을 불법 구금하고 수시로 폭행하는 한편, 강제격리해 탈출할 수 없게 한 점"을 인정했다. 이어 재판부는 "국가로부터 감독 권한을 위임받은 군청 공무원이 수용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양지마을 내 인권유린행위를 쉽게 적발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등한히 해 불법구타나 원고들이 불법감금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담당공무원이 위임사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과실로 원고들이 겪은 정신적 피해를 국가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불법납치 및 강제노역 주장에 대해서는 "원고 등의 일방적인 진술 외에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작업수락서 등에 비춰볼 때, "양지마을 측이 원고 등의 동의를 얻어 노역을 시킨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래도 강제노역이 아닌가?
98년 7월 당시 민변․천주교인권위․인권운동사랑방이 조사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수용자들은 적법한 절차 없이 수용돼 짧게는 4개월에서 길게는 9년까지 쇠창살이 설치된 방에서 강제구금생활을 했다. 또 수용자들은 축구공․쇼핑백․자전거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월 1만원 가량의 낮은 임금을 받으며 강제노역을 당했다.
직원들은 강제로 수용자들이 작업수락서에 무인을 찍도록 만들었고, 이에 불응하면 폭행을 가했다. 이밖에도 수용자들은 퇴소의사를 밝히거나 노역을 거부할 때도 이사장 및 직원들에 의해 상습적인 폭행을 당했다. 이러한 인권유린은 경찰과 구청 공무원들의 묵인 내지는 비호에 의해 은폐가 가능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99년 2월 노재중 이사장 등 직원들과 관련 공무원은 징역 1년에서 4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당시 검찰 역시 공소단계에서 불법납치, 강제노역 관련 핵심죄목을 제외해 인권단체들로부터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재판결과, 피해자 처지 반영못해
민사소송을 대리한 이덕우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도 검찰과 마찬가지로 강제노역을 시키고 노동력을 착취한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무척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98년 당시 직접 조사활동을 벌였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박래군 씨(현 의문사진상규명위 소속)는 "감금상태에서 쓴 작업수락서를 자발적인 동의로 해석한 건 법원이 현실을 등한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박 씨는 "다수의 수용자들이 동일한 진술을 했음에도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원고들이 부랑인, 즉 최하층이란 것에 편견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고 꼬집었다.
양지마을에 8년간 수용됐던 문모 씨는 "우리는 양지마을 수용 당시 입었던 피해 때문에 퇴소 후에도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 하는데, 판결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 갑갑하다"고 말했다. 양지마을 퇴소 후 4년, 이들은 수년간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된 탓에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기 힘들고 가정도 파탄난 경우가 많다. 민사소송을 통한 금전적 배상은 많은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모 씨 등 서너명은 소송결과도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기도 했다.
99년 7월 민사소송 제기 후 3년이 지난 후에야 나온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의 이런 처지를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