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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이창호의 인권이야기

지옥의 묵시록 - 삼청교육


1980년 '서울의 봄'은 5월 18일 광주에서부터 유린되기 시작했다.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은 7월 하순 국민을 협박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 출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권력의 기반이 오로지 무력뿐이었던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책은 전체 국민을 공포정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취임 직후,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인 소위 '삼청계획 5호'가 발동되었다.

이제 전 국민은 잠재적인 '광주의 폭도'로 간주되었다. 불량배 소탕이란 미명 하에 천인공노할 광주의 만행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였다. 국민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삼청교육대로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과 공포 속에 떨어야 했다. 연일 텔레비전에서는 군부대에서 실시되는 혹독한 삼청교육의 현장을 방영했다. 다만 죽음의 현장은 은폐한 채로...

이 끔찍한 삼청교육의 폭력은 사회보호법의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또 다시 신군부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지옥, '청송감호소'로 처박혀졌다. 그들은 사회를 더럽히는 불량배들이므로,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야말로 '사회 정화'라는 명분으로...

그러나 과연 누가 사회를 어지럽힌 진짜 불량배였던가? 그들을 불량배로 몰고 죽음으로 내몰았던 신군부 일당이 역사의 법정에서 진짜 불량배로 낙인찍힌 지 이미 오래이다. 그런데도 아직 삼청교육 피해자들의 한은 풀리지 않고 있다. 아니 전혀 체계적인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군부대로 끌려간 6만여 명 가운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54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도 397명에 이른다. 반면 피해자나 유족들은 사망자가 1천여 명이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가권력이 초헌법적 권력을 발동하여 불량배로 지목한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것이 사실임이 밝혀진 이상, 당연히 국가는 그 진상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광주항쟁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것 이상의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난 다음에는 그 책임 소재를 정확히 가려 가해자에게 엄중히 책임을 추궁하여야 한다. 책임 추궁에 공소시효를 내세워 방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삼청교육은 이미 5.18특별법이 예정하고 있었던 '헌정질서 파괴행위'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아직 삼청교육에 관한 특별법은 번번이 무산되고 있는가? 그 까닭은 그때의 가해자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요소 요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대와 경찰과 검찰과 국회의 일부에서 삼청교육 피해자들의 피맺힌 한을 더욱 더 깊게 증폭시키고 있다.

최근 광주지법은 정부가 배상 약속을 위반했으므로 삼청교육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선진적인 판결을 내놓았다. 하지만 약속 위반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가 배상 약속을 한 지 이미 15년이 흘렀다. 더 늦기 전에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배상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이창호 님은 경상대 법학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