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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박영희의 인권이야기

장애여성에겐 절박한 쉼터

가족 여러 명이 상담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보며 우린 조용히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에 시름이 가득 담긴 어머니, 분노로 충혈된 눈을 가진 남동생, 걱정과 혼란스러움이 담긴 눈의 오빠. 이들을 따라 들어서는 미자(가명, 35세, 정신지체 2급) 씨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마치 죄인처럼 우리 눈치를 살폈다.

이럴 때 장애여성 성폭력 상담원들은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 먼저 가족들과 피해 여성을 분리시킨 다음, 안정된 공간에서 피해 여성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상담원과 상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난 가족들의 상담을 맡았다.

사건은 온 가족이 직장을 나간 사이 빌라 위층에 살고 있는 60대 남성이 미자 씨가 늘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낮잠을 자고 있는 사이 침입해 성폭력을 한 것이었다.

미자 씨는 가족들이 알면 자신이 혼날까봐 말을 안 했다고 한다. 낮에는 늘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가해자가 몇 차례나 방문할 때마다 집안의 모든 문을 잠그고 화장실 안에서 종일 두려움에 떨며 지낸 적도 있었단다. 가족들이 알게 된 것은 가해자가 술에 취해 동네 이웃에게 자신의 여전한 '남성스러움'을 자랑한 것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두 아들 앞에서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죄 많은 운명 탓이라고, 그저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오빠는 더 크게 일을 벌여봐야 집안 창피고, 번거롭기만 하니 합의가 되면 사건화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남동생은 우리 집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이럴 수가 있겠냐며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법적으로 안 되면 혼자서라도 복수를 하겠다고 크게 분노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피해 장애여성에게 가족들이 2차, 3차의 가해를 가하게 된다. 문제의 근원이 장애여성이 되고, 결국 가족들이 그녀에게 원망을 돌리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그녀를 어쩔 수 없이 이런 불안정한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해자와 아래위층에 살고 있는 상황인데, 그녀가 그러한 공간으로 가야 한다는 것부터가 심적으로 2차 가해가 되는 것이었다.

평생 장애를 가진 딸 때문에 눈물의 세월이었던 어머니의 아픔도, 성장하면서 심적 부담으로 힘들었다는 형제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미자 씨의 잘못도 집안의 수치도 아니기 때문에 가해자의 처벌은 물론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자 씨의 치유여야 한다고 설명해주었다. 미자 씨의 치유를 위해 가족들이 가정의 안정을 회복해야 하고 그녀를 원망하거나 분노를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가족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돌아보며 가족들을 따라나가는 미자 씨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장애여성 쉼터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미자 씨와 같은 장애여성들이 당분간만이라도 안정을 찾고 치유될 수 있는 쉼터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소망한다.

(박영희 님은 장애여성공감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