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을 사실상 '집회시위 금지법'으로 바꾸는 집시법 개악안이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9일 오후 5시 35분경 본회의 표결에 붙여진 집시법 개악안은 출석의원 191명 중 찬성 136명, 반대 37명, 기권 18명으로 법사위 원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이에 앞서 천정배 의원(열린우리당)이 집회 제한 사유를 좀더 업격하게 하는 수정동의안을 제안하고 임종석 의원(열린우리당)이 찬성 발언을 했으나 출석의원 188명 중 찬성 61명, 반대 121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개악 법률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집회 중 사소한 방어적 폭력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이른바 '폭력시위'라는 구실로 당해 기간의 집회 시위가 금지되고 △주요도로에서는 질서유지인이 배치되는 평화행진도 금지되며 △초중고 학교시설과 군사시설 주변 집회가 금지되고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음이 발생하는 집회도 금지되는 등 집회시위의 자유가 사실상 말살된다. 또 집회 신고를 한 달 전부터만 받도록 해 미리 일정과 장소를 정해야 하는 대규모 집회 준비가 어렵게 됐다. 한편 외국 공관 주변에서는 공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소규모 집회와 휴일 집회만 가능하게 됐다. 이 법률은 부칙에 따라 공포 후 한 달이 지나면 효력을 발휘한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즉각 성명을 발표해 "도심에서는 집회시위를 하지 말고 사람도 없는 산 속이나 바다 가운데 가서 집회 시위 하란 이야기"라며 "헌법이 보장한 집회 시위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하위법을 과연 지켜야 하는지 심각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규탄했다.또 "앞으로 집회시위 제한과 집회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격화되는 모든 책임은 정치권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경고했다.
또 민중연대, 민변 등 '집시법 개악에 반대하는 민중·시민·인권·노동단체'들도 긴급성명을 발표해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의 잘못된 결정에 대해 생존권적 위협을 받고 있는 민중들이, 항상적으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집회와 시위뿐이었다"며 "반민주, 반인권 독소조항들로 가득한 집시법이 공포 절차를 거쳐 발표되더라도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강력한 불복종운동과 함께 "경찰 당국의 침탈에 맞서 지속적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고, 내년 국회에서 집시법 재개정을 위해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집시법 개정안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시위의 자유에 반하므로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국회법사위에 제출했다. 이어 같은 달 28일 국가인권위 제1소위도 "개악안의 일부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제21조를 침해한다"며 국회의장에게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또 29일 국회 국민은행 앞에서 민변 최병모 회장, 서울대 김진균 명예교수, 불교인권위 진관 대표 등 사회각계 원로·대표들이 집시법 개악안 국회통과를 반대하는 100인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중요한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단 한차례의 공청회나 여론 수렴 과정이 없이 입법을 강행하고 있고, 입법 논의를 시작한지 단 하루만에 기습적으로 해당 상임위에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면서 국회의원들에게 부결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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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