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노예'가 차별 해결인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 정부가 찾아드립니다.' 최근 노동부가 제작한 비정규직 관련법안에 대한 해설서의 제목이다. 이미 노동계에서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악법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법을 해설서까지 만들어 설득에 나선 노동부의 끈기를 높이 평가해야 하는 것일까.
4부로 나눠 입법안을 설명하고 있는 해설서에는 비정규직 차별의 심각함을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면서 마치 이 법만 통과되면 마술처럼 차별이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법안은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차별적인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차별받은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어 차별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업장에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비교 가능한 정규직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업무를 명확하게 구분해 비교할 수 없게 만들고, 설사 유사한 업무를 하더라고 정규직이 한 가지라도 다른 업무를 한다면 차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에 대해 사용자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경우 대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시정 조치는 연기된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박현진 활동가는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최소 2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그 기간동안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더욱이 "차별을 한 사업주에 대해 아무런 처벌 규정이 없는데, 어느 사업주가 미리 알아서 차별에 대한 조치를 취하겠느냐"고 꼬집었다. 해설서에서 담고 있는 '비정규직의 차별 금지'는 그저 말잔치에 불과할 뿐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해설서는 "정부안이 시행되면 그동안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했던 사업주들이 차별 금지로 인해 정규직 고용을 늘릴 것"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미 지적된 것처럼 차별 금지에 대한 강제력과 실효성이 없어 해설서가 입이 닳도록 주장하고 있는 '차별 해결'은 허구에 불과하다. 더욱이 해설서는 중간착취의 주범인 '파견' 대상업무를 26종에서 전 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이 마치 세계적인 추세인냥 떠들고 있다. 또한 고용불안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을 뿐인 기간제 노동자 사용에 대한 설명에서는 기업이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무런 제한 없이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사용자에게 '기간제'와 '파견제'라는 양 날개를 달아 주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나지 않을 거라는 해설서의 확신은 정부의 '자기 최면'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해설서를 통해 정부가 말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란 비정규직의 차별을 고착화시키고, 정규직의 노동 조건을 후퇴시키는 것이며, 하향 평준화로 모든 노동자들을 '평등한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일 뿐이다.
지난 11월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넘기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연내처리는 불가능해진 상태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에 떨게 하고, 노동3권마저 무력화시키며, 노동자들에게 노예이기를 강요하는 정부의 야욕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