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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대다그대

내 인생의 '스무 살'

2013년 9월의 아그대다그대

훈창

스무 살에 집을 나와 수원에서 타지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시간 수원과 서울에 살고 있는데, 여전히 서울은 나에게 타지의 이미지이다. 어딜 가나 익숙하지 않고, 영 정이 붙질 않는다. 그래서인지 항상 서울을 떠나고 싶어 한다. 딱히 고향이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 나름 대도시인데도 서울의 거리를 거니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 스무 살에 서울에 처음 간 날도 그랬다. 종로에 많은 사람들, 지하철이란 낯선 교통수단, 사당역의 북적거림이 너무 어색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가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모습,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쑥쑥 피해가는 모습이 간혹 어색하고 이상하다. 스무 살은 내가 타지에 타인으로 살게 된 시작이었다. (스무 살 사진 무존재;;)

아해

나의 스무 살은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체.
집회,시위,술,미팅,나이트,보이스카우트,오토바이,축구부,학회,당구,짝사랑,친구들,가족들... 혹시라도 여기에 학과공부가 추가되면 그게 제일 이질적인 것이려나. 큭큭.
달그림자의 처량함에 울 뻔 했던 것도 스무 살 겨울이었을 것이다.

미류

사춘기도, 스물도, 서른도, 별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살아지는 대로 사는 편이라 그런지. 그랬던 거랑 비교하면 사랑방 20주년은 뭔가 뻑적지근하다. 스무 살의 설렘이나 두려움 같은 것도 이제서야 느껴보는 것 같고. 그러고 보니, 스무 살이라며 빨간 립스틱을 선물로 준 선배가 있었다. "너는 피부가 하얗고 고와서 맨 얼굴에 립스틱만 발라도 참 이쁠 거야." 으흐흐. ㅠ,ㅠ 나도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었군요! 사랑방의 스무 살은 어떤 이야기들을 듣게 될지 궁금합니다~

승은

스무 살이 된 것에 대해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어른이다, 법적 성인이다’는 자의식은 별로 들지 않았다. 다만 19살 대학 1학년 때 온통 신비롭고 호기심 왕성하던 시절을 지나, 20살 대학교 2학년이 되니 후배들을 향해 누군가를 책임져야하는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인생에 큰 십자가를 왜 짊어졌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한다.

돌진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 동아리방. 크리스마스 이브에 동아리방에 모여 있다가 후배 하나가 느닷없이 눈물을 터뜨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게 뭐냐."며. 스무 살 즈음엔 그랬던 것 같다. 뭔가 막연한 기대는 가득하면서도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어른이 된 것도 아닌 것 같은 시간. 스무 살, 사랑방은 좀 달라야 할 텐데.

'고민 있을 때 연락해요'라는 그 말이 그토록 고맙고 든든해 누른 통화버튼. 과거를 오바스럽게 강조하는 것 같아 불쾌하기까지 했던 것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몇날몇일을 고민했던 마음을 펼쳐보였는데, 너무도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그녀로 인해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직면했던 순간들은 무척이나 아팠지만 참 벅차기도 했다.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선택한 것 같던 그때,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정록

대학생이면 성인취급을 해주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스무 살은 진짜 별 생각 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2학년이 되어서 후배가 생겼는데, 다들 선배들이 뭔가 대단한 거라도 있을 것처럼 기대하고 행동했던 게 부담스러웠던 기억만 스물스물. 생각해보면 대학 들어와서 맺은 선후배 관계가 내 인생의 최초이자 마지막 선후배 관계가 된 것 같다. 그것도 스무살의 기억이라면

초코파이

'스무살'하면 생각나는 것...
김광석, 봉천동 철거 현장, 같은 해 대학에 입학한 누군가의 죽음, '스무 살까지 살고 싶어요'......
어릴 때 '스무 살까지 살고 싶어요'(?)라는 소설이 유행했었다.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난 어른이 되지 않고 스무 살까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어느새 스무 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에 처음 접한 충격적인 소식이 김광석의 자살 소식이었다. 그런 노래들을 만들어낸 사람이 결국 삶을 접었다는 소식에 당시 학교에 함께 있던 이들이 묵묵히 짐을 싸서 낮부터 술집에 들어가 새벽까지 조용히 술을 먹다 노래하다 하며 보냈던 것이 내 스무 살의 첫 흔적이다.
그리고 1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집회 현장 등에서 나와 같은 때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이 죽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그 광풍이 지나가고 나서 한 해 동안 봉천동 철거 투쟁 현장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그런 기억들 속에서 새벽 순찰을 돌며 보게 되는 서울 하늘은 너무 스산했다. 내 스무 살의 기억은 그런 스산함이었던 듯

세주

나 20살? 대학생 되서 공부하고, 실험하고, 미팅하고, 동아리 하고, 운동하고, 밤새서 시험공부하고, 엠티가고, 음악 듣고, 적당히 하지 말아야 할 것 하지 않고, 맞다고 생각 하는 거 쫓아다니면서 하고, 세상에 딴지 걸고 그렇게 지났다. 내 딴에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해도 되는 건 다한 후회 없는 삶이라고 생각 한다. 그때로 돌아갔어도 뭐 별반 다를 게 있나 싶은데, 근데 그 시절이 현재의 자양분이다.

유성

내 인생의 스무 살.. 게임으로 날을 지새고 있었던 것 같다. 후회는 안하련다. 덕분에 허무함에 진력이 나서 그만두었으니. 부끄럽긴 하다. IMF 때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