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주년 연속토론회의 마지막은 <피해자의 자리, 연대의 거리>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기획단에서는 이 시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이야기를 아래처럼 소개했다.
“인권운동은 어떻게 피해자와 피해경험을 박제하지 않고, 그 요구를 국가의 보호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문제로 구성해낼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한다. 하지만 최근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 적대가 표출되는 양상은 포퓰리즘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혼란스럽고 난감한 상황을 만들고 있고 인권운동에게도 많은 고민을 안겨준다.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주권을 강화하면서 보호를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 연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자.”
인권운동을 하면서 다양한 피해경험 당사자들을 만나왔다. 언제나 피해자와 어떻게 관계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됐던 것 같다. 이슈화하기 위해 피해경험을 ‘전시’하면서 피해자로서만 대상화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며 피해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듣고 전해야 할지는 늘 맞닥뜨리는 문제였다. 최근 논란이 된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판결에서 ‘피해자다움’을 잣대로 삼는 재판부에 대해 문제제기도 있었다. 고정된 ‘피해자’ 상을 갖고 그에 부합하는지 여부로 접근하는 것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피해경험을 납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피해자’로서만 접근하는 것은 피해경험을 해석하고 발화하기까지 긴 시간을 통과한 후 다시 삶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전환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번 토론회는 ‘피해자의 자리’를 키워드로 연대의 방향, 운동의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피해자로만 산다는 것은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임을 자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피해자로 산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영원히 형제복지원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희들의 고통과 상처가 박물관에 걸려 있는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 현재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고 물건처럼 처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였던 한종선 씨의 말을 소개하며 시작한 기초발제에서 타리 님은 혜화역 몰카 규탄 시위에서 보여지듯 피해경험을 공격적 혐오표현이라는 전략으로 가시화하는 양상에 주목하며 언제나 운동이 고민해왔던 ‘피해자와의 관계 맺기’에 대해 더욱 고민해야 할 때임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피해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질문하면서 피해를 또 다른 권리의 문제로 주장하며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의 요구는 위계의 순서만 재배치될 뿐 ‘모두’, ‘함께’ 대항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했다. 또한 어떤 정체성/집단에 대한 낙인은 그 집단에 속한 이들만이 아니라 그 집단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점, 이렇듯 모두의 수행 속에서 낙인이 강화되거나 약화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이러한 수행으로서 ‘이용당하기’를 거부하는 것-누군가의 억압에 동원되지 않기-을 연대의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이어진 심화발제에서 김보명 님은 <여성시위, 피해와 권리의 정치학, 그리고 페미니스트 행위성>이라는 제목으로 권리 박탈/침해로 피해자가 생기지만, 피해자여야만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짚으며 피해와 권리는 어떻게 발화되고 요구되는지 살폈다. <피해자 되기를 넘어, 얼굴을 가진 피해자로 싸우기>라는 제목으로 심화발제를 진행한 이진희 님은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피해자에게 피해 증명이 어떤 식으로 요구/강요되는지 보여주고 피해자를 '위해서'라며 공권력이 강화될 때 결국 인권이 약화된다는 문제를 짚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이 만들어낼 가능성을 제기했다. 시우 님은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란 말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병역거부 과정을 피해의 경험이면서 동시에 국민국가의 시민임을 자각한 경험으로 떠올리며 피해의 문제를 '물화'시키지 않는 방법론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야기했다.
발제자들의 발표에서 경험과 더불어 그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깊이 들여다본 시간이 떠올려졌다. 어떻게 언어화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던 것들이 발제자들의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떠오르기도 했다. 참여자들도 저마다의 경험과 고민을 끄집어냈다. 구체적으로 손해/손실/손상의 결과가 있을 때 피해로 인정되는데 피해를 어떻게 규정할 건가. 주체성은 인정되지 않고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드러나나 한편으론 자원이 있는 경우에만 피해자로서의 위치가 가능한데 피해자는 누구인가, 누가 피해를 말할 수 있나. 피해자로서만 위치 지어지는 것이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로서 이야기해야 그나마 들어주는 사회에서 고통의 얼굴이 아닌 다른 피해자가 가능할까. 어떤 피해로 규정되는가에 따라 피해경험이 굴절되면서 타자화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로 해석하고 말하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권리 간 경합, 피해 간 경쟁처럼 구도화하면서 차별과 혐오를 (잠재적) 피해자의 권리언어로 왜곡하는 상황에 인권운동은 어떻게 맞서야 할까.
이런 고민들에 명확한 답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이 나눈 이야기들에서 인권운동이기에 더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지금 운동이 부딪히고 막혀있는 지점에서 한 발짝 내딛기 위해 쥐어야 할 질문이 드러났다. 피해자와의 관계 맺기에서 (전형적인) 피해자의 서사를 다르게 드러내기를 고민하고, '피해자되기'가 아닌 방식으로도 공론장에 들어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자는 제안도 있었다. 고민이 또다른 고민으로, 질문이 또다른 질문으로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다시 이 고민과 질문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하나 막막함도 들기도 했다. 동시에 타리 님이 발제 마지막에 이야기한 “피해자로 머물러있기를 거부하는 한종선씨가 다른 사람이 되려면,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 되기'가 어떻게 가능할지 막연하고 나부터 자신이 없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 되기'를 시도하고 촉진하는 게 운동의 과제겠다 싶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경험이 재구축되고 관계가 재구성될 때 열리는 지점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