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에서는 한창 집회가 진행 중이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 긴장감은 이마트를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삼삼오오 모여있는 남자들의 모습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굳이 숨길 이유도 없다는 듯이 연신 집회 장면을 흘끗거리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를 찾은 한 방송국 카메라가 집회 장면을 찍기 시작했을 때 ‘삼삼오오’의 남자들 중 몇몇은 따라서 사진기를 들기 시작했다. ‘오호라˜감시의 눈길이라˜’ 노조 가입 이후 지난해 12월 28일 사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조합원 이종란 씨와 함께 이마트 매장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삼삼오오’의 남자들은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사진기를 들이민 채 다가왔고 다른 두 남자들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 문 앞을 가로 막은 사내들은 “이 사람(이종란 씨)과는 함께 들어갈 수 없다”며 은근히 위협했다. ‘그냥 쇼핑하러 가는 것도 안되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법적인 근거를 물었을 때에는 “어디서 나왔냐”는 동문서답만 돌아왔다. 현장에서 일했던 이 씨가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그들은 노조 설립 후 이마트 ‘안팎’에서 갑자기 늘어난 사람들이다. 이제는 급기야 자체적으로 ‘출입금지가처분’까지 행사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노조 설립 후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 모양이었다.
신세계 이마트 수지점에서 일하던 계산원(캐셔)들은 지난 한 해 동안 ‘극비’리에 하나 둘씩 경기일반노조에 가입했다. 그 결과 계산원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2명의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이들은 경기일반노조 신세계 이마트 분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이후 이들에게 가해진 노조와해 공작과 인권침해는 이전의 삼성 계열사-현재도 ‘무노조 경영’을 계승하고 있는-답게 감시와 감금, 가족?친지를 통한 회유 등 거의 ‘고전적인 수법’의 양상을 보이며 ‘최고수준’으로 진행됐다.<인권하루소식 1월 6일자 참조>
이마트 관리인들은 노조원들을 회유하며 “고 이병철 회장의 유언” 운운하며 “노조는 절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트 계산원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한 동기는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지난해 2월 회사는 근무 이외의 시간에 계산원들에게 청소를 시켰다. 이를 부당하게 여긴 계산원들이 회사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이를 무시했다. 결국 50여 명의 계산원들은 다함께 하루 청소를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최옥화 현 분회장이 경기일반노조에 이와 관련해 문의를 했고 22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노조에 가입하며 분회를 설립하게 된 것. 이후 노조원들에게는 노조 탈퇴를 위한 탄압과 인권침해가 이어졌다. 면담을 ‘핑계’로 몇 시간동안 사무실에 ‘감금’한 상태에서 회유를 지속했고, 밤 늦게까지도 면담은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왔을 때도 관리인들은 천연덕스럽게 ‘감금된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무실 안쪽에서 외부의 사람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결국 사무실에 한 노동자가 ‘감금’돼 있던 것이 확인됐다.
또한 근무에서의 차별도 이어졌다. 노조원 고경희 씨는 “한 달에 많아야 한두 번 가는 ‘소량’ 계산대에 3일 연속 배치됐고 이틀 후에 다시 배치됐다”고 ‘차별’을 토로했다. ‘소량’ 계산대는 매장 이용객들과 마찰이 잦은 편이어서 대부분의 계산원들이 기피하는 곳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표를 짤 때도 명백하게 차별받는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노동 조건을 갖기 위해서 노조를 설립했는데 회사가 노조 탈퇴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됐다”고 전한 고 씨는 “식사시간이 30분밖에 안된다는 현실을 부당하게 느껴” 노조에 가입한 경우다. 회사의 강경한 노조탈퇴 공작으로 결국 고 씨와 분회장 최옥화 씨, 이종란 씨 등 4명의 조합원만 현재 남았다.
5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조합원들에게 ‘사과문’을 요구한 이마트는 조합원들이 사과문을 제출하지 않자 16일 3명의 조합원 모두에게 3개월 정직처분과 이마트 수지점 출입금지조치를 통보했다. △불법 유인물 배포와 집회 참여 △허위사실 유포 △상사의 명령불복종 등이 징계사유였다.
최 분회장은 “노조 홍보활동을 ‘불법 유인물 배포’라고 하고, 감금?미행 등 명백한 사실을 ‘허위사실 유포’하고 하며, 노조탈퇴를 거부한 것을 ‘상사의 명령불복종’이라고 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14일에는 신세계 이마트 관계자들과 경기일반노조 대표들이 출석한 가운데 쟁의조정회의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경기지노위는 노 측이 제안한 ‘정당한 조합활동 보장’ 조정안을 공익위원과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의 만장일치로 수락해 노사 양측에 권고했지만 사 측이 조정안을 거부하면서 ‘조정 중지’를 결정했다. 이로써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해 보이기만 하다. 회사측이 공개적으로 ‘노조인정 불가’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노동조합이 왜 신세계에서만 안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기업이념이 법보다 우선인지 묻고 싶다”는 최 분회장의 말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게 던지고 싶은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