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사랑방에 처음 발을 들인 지는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사실 그 기간에 비해 실질적으로 활동했다고 꼽을 수 있는 날은 적은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편지를 시작합니다.
제가 사랑방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권 운동에 대한 회의와 무력감 때문이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제 주변에 소위 과거에 ‘운동권’이셨던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기 때문에, 그 영향에서인지 사회 전반에 걸친 인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와 보니 이러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일이 ‘특이하고 유난스러운 일’로 여겨지더군요. 단순히 인권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인권관련 책을 들고 다녔을 뿐인데, ‘취업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그런 책을 왜 읽느냐’는 시선부터, 운동권이 아니냐며 경계하는 불편한 시선들과 마주해야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들과의 토론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자리에서까지, 인권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모습에서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랄까요? 물론 처음에는 그 시선들을 제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인권, 인권활동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차갑고 냉정하더군요. 점점 아무리 홀로 이를 녹여보려 노력해봤자, 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만큼이나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스스로도 소시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주류’를 지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 어차피 안 돼’ 라는 생각과 함께 언제부턴가 외부로 제 생각을 드러내는 것조차 자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근데 인권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스스로 뭔지도 모르면서 인권‘타령’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무작정 인터넷에 인권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연관검색어에 뜨는 인권운동사랑방이 눈에 딱! 들어오더군요.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여기에 가면 인권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려나 라는 생각과 함께, 정말 이러한 활동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무작정 들어온 곳이 인권운동사랑방의 반차별 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동안 사랑방 사람들과 함께 차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장애여성 인터뷰도 하며 제가 인권, 특히 차별 문제에 대해 여태까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를 차별로 볼 수 있는지 그 기준을 정하는 것도 참 어려운 문제였고, 또 항상 제 삼자의 눈으로만 차별 문제를 봐왔는데 제가 차별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차별의 대상을 규정하는 것 역시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렇게 1년여 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누가 인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또 아직 겉으로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 눈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도 확인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랑방 식구들을 보면서, 또 사랑방 활동을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인권 활동은 소수의 일이고 또 이러한 소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회의를 품은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 쑥스럽지만 사랑방 식구들을 통해 참 많은 위안을 받았고 또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 영어로 땡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