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왔네요. 날씨가 추워졌다 누그러졌다 하네요. 누구는 삼한사온이 좋다던데, 저는 매일같이 따뜻하기만 하면 좋겠어요. 추워지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세지는 건 늘 주말이니, 어디 바람 쐰다는 말도 안 나오고요. 올해 겨울 날씨는 아주 춥거나 전혀 춥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데 어떨까 궁금해요. 이번 겨울에 또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요. 바로 사무실이 있는 중림동 개발 소식입니다. 몇 달 전부터 소식지에 보고를 해서 아실 듯해요. 중구청에서 사랑방 사무실이 있는 중림동 398번지 일대를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하려고 해요. 도시환경정비사업은 재개발의 일종인데, 상업지구를 포함해서 개발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요. 작년 용산참사가 있었던 용산4구역도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이었지요. 다행히 구역이 지정되기 전에 소식을 접하게 돼서 이런저런 궁리를 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생긴 셈이지요. 구역이 지정되더라도 실제로 집을 허물고 새 건물들을 지어올리는 데까지는 3~5년이 더 걸리니까요. 하지만 일단 개발구역으로 지정되고 나면 다른 선택지가 거의 주어지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사업이 추진되는 터라 그만큼 긴장이 되기도 해요. 중구청에서는 올해 안에 주민설명회를 열고 공람을 거쳐 구역 지정을 내년 2월까지 마치려고 해요. 그래서 이번 겨울 궁금한 소식 중 하나가 됐어요. 얼마 전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가가호호 편지를 배달했어요. 개발 추진 소식을 듣고 나서 참 막막했어요. 몇 년 전부터 주거권운동을 만들어가고 개발의 문제점에도 많이 주목하면서 대응을 모색하던 중 막상 당사자가 된 셈인데, 정말 막상 그러고 나니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더라고요. 특히 개발구역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대응이 있었던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아서 더 그랬어요. 일찍 대응할수록 다양한 선택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먼 먼 일인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리고 사랑방이 동네에서 주민들과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서먹하기도 했어요. 경험만의 문제는 아니고, 엄두가 안 나기도 한 거죠.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고 서로 다른 가치와 고민을 들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모아갈 수 있을지, 그게 수백 명이 되니 더욱 부담스러웠어요. 지금도 뭘 어떻게 해보자고 결론을 내린 건 아니예요. 다만, 우리가 아는 만큼의 정보를 동네 사람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나누는 건 기본이지 않을까 싶어 편지를 돌리기로 한 거예요. 그런데 편지 돌리는 일도 쉽지는 않았어요. 오르막 내리막을 다니며 층층이 편지를 꽂아놓으려니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은근, 긴장되더라고요. 어쩌면 낯선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혹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 편지를 놓고 다니는 건데 주민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었어요. 다니다 보니, 역시나 ‘당신들이 뭔데’ 이런 편지를 돌리냐며 경계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어, 사랑방 알지~’라면서 반기는 분들도 있었어요. 뭔가 조금 무거워진 책임감이 생기기도 했지요. 대문에 편지를 놓고 오는 거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는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몇 분 만나보니, 역시나 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소식을 모르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주민들 대부분이 모르는 상태에서 개발이 추진되어 문제라고 누누이 지적해왔는데 현실은 역시나 쉽게 바뀌지 않는군요. 사실, 편지를 배달하는 동안, 이런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건 구청의 역할인데 우리가 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하기도 했어요. 물론 편지에는 정보만 담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걱정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종이 몇 장에 내용을 담으려니 쉽지가 않더군요. 편지를 배달한 다음날에는 주민 두 분에게서 반응이 왔습니다. 한 분은 사랑방처럼 소식을 알고 개인적으로 구청과 시청, 국민권익위원회에 개발을 하면 안된다는 민원을 넣고 있었던 분이었어요. 와,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던 분도 있구나 하며 반가워했지요. 그런데 좌파단체는 안된다며 그냥 인권만 하라는 말씀을 몇 차례나 강조하시더라고요. 흠, 그 분에게 인권과 좌파의 경계는 뭘까 하는 고민도 살풋 들었어요. 개발하지 말라고 하는 건 좌우와 무관한 걸까, 그러면 좌우가 갈리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개발이 주거권에 영향을 미치는 큰 사안인데도 아마 이 분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은 생각해보지 않았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쳐 씁쓸하기도 했어요. 지금으로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각하할 게 뻔하지만서도요. 참, 다른 한 분은 물론 개발을 찬성하는 분이셨어요. 물론 본인 스스로는 “난 중립이다”라고 주장하셨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불편하고 동네도 낡아서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기대를 걸고 있으셨어요. 우리 편지의 ‘뉘앙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죠. 에구, 이거 편지가 아니라 긴 사업보고 같은 내용이네요. 개발 소식 듣고서부터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데 잘 펼쳐지지가 않네요. 다른 활동들보다 집중하고 신경 써서 고민을 정리할 여유도 잘 안 생기고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마음을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전할게요. <진보복덕방>에도 중림동 개발을 놓고 끙 하는 고민들을 연재할 예정이니 지켜봐주시고요. 오늘은 이만 마칠게요. 이 겨울 그 소식을 함께 궁금해해주세요.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