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에 자리잡은 노동사목 전국 사무국은 보기 드문 마당 한 자락을 끌어안고 있다. 상추며 알타리 무우가 곱게 자라 실무자들의 밥상에 오를 뿐만 아니라 매연과 소음을 간데 없이 씻어내고, 전국의 노동사목집들에서 날아온 씨앗들이 즐거운 노동의 소망과 인간사랑의 싹을 틔우고 있는 듯 하다.
전국노동사목은 반월, 성남, 부산, 광주 등 16개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데 이는 단체협의체의 성격이 아니라 ‘만남의 집, 새날의 집, 내일을 위한 집, 노동자의 집’ 등 다양한 명칭의 노동자의 대중공간들이 공동체 성격으로 뭉친 것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하는 노동사목이 걸어온 길은 노동의 꿈과 희망을 소중히 여기며 총체적인 인간개발을 위해 자신을 투자해온 사람들의 어울림이었다.
70년대 JOC(지옷세라 부르는 가톨릭노동청년회)활동을 통해 노동현장에 투신했던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해고된 뒤에도 노동의 삶과 함께 하고자 시작한 것이 노동자를 위한 공간마련이었다. 이 공간에서는 신변잡기를 얘기하며 노동문제상담도 하고 문화·놀이공간으로 독서, 등산, 기타 배우기 등으로 어울리고 공동체전례와 성서모임을 가지면서 초대교회와 같은 공동체의 체험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지역 속에 뿌리박고 노동운동과 함께 하는 터줏대감이 되었고 지역노동자, 특히 처음 노동조합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공간이 되었다. 이런 대중공간으로서의 ‘사목집’들이 84년 노동사목 ‘연구소’로 모이게 되었고 그것이 발전하여 오늘의 노동사목의 모습이 된 것이다.
현재구조는 회장단과 정책위원회, 지도위원회(위원장 문정현 신부, 직무대행 문규현 신부), 각지역공간 대표자로 이루어진 실행위원회와 각 지역 노동사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서울 사무국에는 정인숙 회장, 총무, 교육분과, 신앙생활분과를 맡는 간사 3인 그리고 최영 정책위원장이 상근하고 있다.
주요활동은 노동계의 복음 화와 교회쇄신, 하느님나라 건설을 과제로 한 노동상담, 문화공간 활용, 노조지원사업인데 그중 주목할 것은 ‘자발교육’이라 불리는 교육활동이다. 자발(자기발견) 교육은 단순히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나 정치 경제적 상황에의 눈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아의식, 새로운 가치관과 인간관을 내면화하는 심성개발 프로그램이다. 인간과 노동에 대한 심성의 변화 없이는 노동자가 자본주의 인간관에 오염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노동사목의 교육활동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생기기 전까지는 전국적으로 유일한 선진노조 활동가 교육구조였으며 현재는 지역노조협의회가 그 역할을 이어받고 있지만 인간개발과 인간발전에 초점을 둔 노동교육은 여전히 노동사목의 주요과업이며 올 하반기부터는 실무자 소양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그밖에 ꡔ기쁨으로 일하는 사람들ꡕ이라는 제목의 회보를 현재 53호까지 발행하였다. 또 올 10주년 행사로서 10월경에 전국가톨릭노동사목헌장제정, 심포지엄, 전국노동자 문화재, 10주년사 발간 등을 기획하고 있다.
그간 활동 속에서 가지게 된 가장 큰 자부심은 10년 이상 지역에 뿌리박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87년 이후의 민주노조결성에 지대한 역할을 한 점이다. 전북노련의 결성 등이 그 예이고, 10여 년 동안 이합집산 하거나 정파에 흔들림 없이 공동체적 관계로 단일한 전국조직을 유지하여 왔다는 점을 뒷심으로 하여 노동운동진영의 분열을 극복하는데도 큰 역할을 해왔다. 이런 역할에 있어서 특히 독신여성노동운동가들의 힘이 컸는데 청계피복노조와 전태일 기념관에서 잔뼈가 굵어진 정인숙 회장을 비롯하여 노동자를 위한 터를 닦고, 상처받고 분노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애인보다 더 사랑하며 마주하고 살아온 이들의 삶이 노동사목의 동맥을 더욱 강하게 고동치게 한 것이다.
물론 어려움도 컸다. 조합결성을 시도하다가 관리자와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연행된 일들은 물론이지만 가장 큰 아픔은 교회 밖으로 내돌리는 일이었다. 노동사목수도 성직자 모임에 소속된 신부, 수녀, 수사 10-11명이 영성적, 신앙적 뒷받침을 하고 있으나 어떤 교구에서는 성당 안에 있는 노동사목집을 철거하려고 해서 교회 내에서 농성을 벌여야만 했던 일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부유해지고 커져 가는 교회의 지붕아래 노동자를 위한 공간과 관심은 처마 밑 신세인 것일까? 이는 해외원조가 올해로 끝나는 등의 교회재정지원의 전무로 나타나고 있어 국내모금에 의존해야 하는 노동사목의 재정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에 노동사목은 회원의 회비에 의존하는 구조마련과 해고노동자들이 무공해 비누공장을 차리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교회 내 신자를 자기대중화하고 연대의 틀로 이끌어내기 위해 가톨릭 사업체와 기관에 소속된 노동자의 처우개선노력에 힘쓰고 있다. 한 예로 93년 가톨릭의대 노동조합 산하 8개 병원노조와 공동심포지엄(복음선교의 관점에서 본 가톨릭계 노동조합의 역할)을 가졌고 파티마병원노조에 대한 지원사업을 벌인바 있다.
마지막으로 인권활동가들에게 보내는 노동사목의 메시지를 들어보자.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은 인간이다. 노동은 창조적 기쁨의 원천이나, 일그러진 구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노예적, 굴절 적 노동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고 있다. 인간존엄성 약화에 따라 인권회복은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봐야 할 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인 모든 것이 돈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과정에서 인간성의 회복, 인권이라는 것은 노동의 해결을 거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다.”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