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의혹 간첩사건에 대한 재조사 필요하다
백흥용 씨 양심선언을 보는 각계의 의견
지난 9일 있었던 안기부 간첩 공작수사 진상발표 기자회견은 현 정부에서도 안기부가 프락치 공작을 통한 간첩조작활동을 하고 있음을 구체적인 물증을 통해서 폭로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기부의 프락치 공작에 대해 직접 변호사들이 독일까지 가서 현지조사를 하고 발표한 것이란 점에서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희대의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 4-50명이 기자 회견 장을 가득 메웠다. 사지만, 한겨레신문과 기독교방송만 이 사건을 보도했다.
두 신문사 하이텔과 천리안 통신에는 기사가 올랐으나, 막상 신문에는 실리지 않았다. ㅈ일보의 사회부 한 기자는 “이 문제가 본질적인 문제임을 알면서도 쓰지 못한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H일보의 한 기자는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한 일간지의 기자가 이 사건을 쓰면서 세 군데에서나 압력을 받았다며 기사가 실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흥용(가명: 배인오)씨가 기자회견을 한 독일에서는 일제히 이 사건을 보도했다. 타게스짜이퉁(die tageszeitung)를 비롯한 신문에는 “재야의 비밀을 탐지한다”란 제목 하에 이 사건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다른 신문도 이와 비슷하다. 또,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백씨와 생방송으로 인터뷰한 것을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 언론의 특파원들도 취재는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신문에도 특파원들이 보내온 기사는 실리지 않았다.
강수림 의원 (민주당 인권위원장)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사법기관은 즉시 그 전모를 밝히는 수사에 착수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언론의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지만 싣고 안 싣고는 그들의 자유다. 결국 언론이 누릴 자유는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비례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독일 현지에서 조사를 한 이덕우 변호사는 “안기부는 우리가 사건을 조작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지목한 두 명의 직원에 대해 밝히고 조작했다면 비디오 테이프를 조작했다는 것인지 먼저 명확히 해야한다. 언론에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실망했다. 하지만, 언론이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경선(참여연대 부 집행위원장, 방통대 교수)씨는 “이 사건은 현 정권의 그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공작활동의 피해자들은 인권피해자들이다. 언론이 이들의 구제를 위해 먼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권오헌(민가협 공동의장)씨는 “이처럼 확실한 증거가 있어도 보도조차 않는 언론의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도 이 사건의 공범이다. 언론은 안기부와 함께 민주기본질서를 해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범(전국연합 조통국장)씨는 “역대 간첩조작사건을 전면적으로 재수사해야 한다”면서 “안기부가 언론 그 자체를 통제하는 것부터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국가보안법과 안기부 법, 국회정보위법 등이 다시 개정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민영(국제사회주의자들(IS) 구속 자 후원회 회원)씨는 언론이 이런 사건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것에 분개한다면서 “항의시위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의사를 표명했다. 김산환(이내창추모 사업회 간사)씨는 “해바라기성 언론이 문제고, 그런 언론이 사회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독자투고 등을 통해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김숙경(회사원)씨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언론부터 반성해야 한다. 알아서 기는 그런 자세로는 언론의 자유는 생각도 할 수 없다. 언론이 늦었지만, 이 사건을 자세히 보도하고 안기부의 태도를 감시해야 인권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박정기(유가협 회장)씨는 “언론은 우리사회의 암적인 존재다. 이런 사실을 보도조차 않으면 무엇을 보도하겠다는 것인지 한심하다”고 말했다.
이영숙(재 독 양심수후원 회장)씨는 백씨의 정치적인 망명을 돕기 위해 국제사면위원회 법률가 모임이 돕고 있고, 백씨는 독일 앰네스티와 재 독 양심수후원회 등이 보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백씨는 자신의 얘기를 원고로 쓰고 있다고 전하며 기자회견이 잘 되었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며 “언론이 해도 너무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언론이 안기부의 하수인으로 남겠다는 게 아니냐”며 분개했다.
한편, 인권단체에서 이와 같은 언론의 태도는 국민의 인권 중 알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라며 후속작업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