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미카엘 카코아니스/ 제작: 그리스, 1986년
인권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때 우린 '인권'을 지켜야 한다.
사회가 불안한 나라에서 '개인의 인권'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정권의 격변기에는 더욱 더 하다. 80년 쿠데타에 의한 5공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삼청교육대'라는 명분으로 끌려간 사람들을 놓고, 드러내서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표면적으로 조직폭력배, 불량배들이 다 끌려가 치안이 좋아졌다고 일반 시민들의 호응을 받았지만 그 속셈에는 반정부 지식인을 겨냥한 마녀사냥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적으로 반하는 생각을 갖는다고 해서, 악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그들의 인권이 마구 짓밟혀도 된다는 원칙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행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이들은 무참히 정권의 폭력을 맛보아야 했다.
영화 <스위트 컨트리 Sweet Country>는 이렇게 정권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을 다룬 '인권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70년대 칠레의 자유주의 정권이 군사 쿠데타로 무너진 후 당시 일어난 온갖 사건들과 함께 군부 세력의 포악성과 집단적 폭행을 폭로, 비판하고 있다.
자유주의 정권이 군사독재정권으로 바뀌면서 수난을 당하는 사람들에는 핵심 못지 않게 그 정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이런 경우가 '에바'의 처지다. 당시 에바는 칠레 대통령 부인의 비서였다는 이유로 개인의 추억마저 불태워야했고, 경찰로부터 무단 침입과 은근한 성적 모욕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많은 여자들이 트럭에 실려 어딘가 알 수 없는 경기장으로 끌려가 '맑시스트의 계집'이라는 멸시를 받았다. 군인들이 뺑 둘러 있는 경기장 한 가운데 발가벗겨진 채로 성적 모욕을 집단적으로 받아야 했다.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지만 그 사이에 '에바'의 불리한 입장을 이용한 경찰의 강요된 성관계는 권력의 폭력성으로 집요하게 묘사된다. 그러면서 한 개인의 '인권 문제'를 끊임 없이 이 영화는 던지고 있다. '에바'가 마지막 탈출을 시도한 대사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죽음뿐이었다.
독재권력 앞에서 에바는 자기변론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민중의 모습 그 자체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혼란스런 시대일수록 가장 피해를 보는 쪽은 남성보다는 여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캐롤라인 리치즈가 당시의 자료에 바탕을 두고 쓴 유명한 소설 <스위트 컨트리>를 그리스의 영화감독 미카엘 카코아니스가 영화로 만든 것이다. 당시의 끔찍했던 사건을 겪은 여성들이 자원하여 무료로 출연하고 있다.
자유라는 것이 어느정도 보장받을 때 우리는 '인권'을 겨우 이야기한다. 배를 채우는 것이 지상목표일 때 '인권'은 어디에도 없다. '인권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도 길들여지는 것인지 모른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영화반 '영상세대' 전미희
- 1071호
- 전미희
- 199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