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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15년 독거는 보복차원"

조세형 씨, 2차 공판 진행


15년간의 폐쇄독방 수용, 개밥고문 등의 사실이 폭로되면서 충격을 주었던 '대도' 조세형 씨의 보호감호처분 재심청구재판이 한 달여 만인 5일 서울지방법원 319호 법정에서 속개됐다.

이날 재판에서 조세형 씨는 "15년 간 엄정독거를 당한 것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것을 두려워한 교도소장들의 안일무사주의 때문"이라며 "이는 '감옥권력'에 의한 가혹행위였다"고 주장했다. 조 씨는 또 "84년 청송교도소에서 재소자가 교도관들에 의해 타살된 사건이 있었다"며 "당시 '입막음'을 요구하는 교도관들의 회유를 거부한 대가로 15년 동안 엄정독거를 당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엄정독거'란 요주의 인물을 감시와 통제할 목적으로 독방에 수용하는 것으로 행형법 시행령은 재소자를 최대 2년6개월 이상 독방에 가두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재소자 살해 뒤 '입막음' 회유

이날 조 씨의 진술에 따르면, 군삼청교육대 출신으로 조 씨와 함께 특수시설(7사동)에 수감되어 있던 박영두(당시 32세) 씨가 84년 10월 교도관들의 집단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뒤 사망했으며, 조 씨는 이 사건에 대해 '입막음'을 요구하는 교도관들의 회유를 거부했다고 한다.

조 씨는 "당시 박영두 씨는 수갑에 채워진 채 짐승처럼 교도관 너댓 명에 의해 끌려 다녔고, '살려달라'는 애원에도 불구하고 집단구타를 당한 끝에 7-8시간 후 사망했다"고 밝혔다. 박 씨의 사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을 받았지만, 결국 심장마비에 의한 변사로 결론이 났다. 조 씨는 당시 교도관들의 회유를 거부한 뒤 57일간 수갑과 포승에 묶인 상태로 3층 특수방에 감금됐다고 밝혔다.

또한 조 씨는 85년 9월 발생한 난동사건에 대해서도 진상이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조 씨는 "당시 교도관들이 감방문을 열어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있었으며, 그때 박영두 씨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8사동으로 옮겨가 그곳 재소자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조 씨는 "3일간 무장교도관과 대치하다 스스로 시위를 해산했지만, 교도관들은 몽둥이로 우리를 때려잡은 뒤, 난동과 탈주를 꾀한 것으로 허위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증거없는 주장" 이의제기

한편,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청송교도소의 인권유린 실상과 조 씨의 체포·수사과정에 관련된 변호인 신문이 이어지자, "본 재판의 초점을 흐리고 증거없는 주장을 여과없이 선전하는 것"이라며 잇따라 이의를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조 씨의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선 종합적인 진술과 상황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재판의 초점인 재범 가능성 여부와 관련, 조 씨는 "내 진실은 나의 마음이다. 나의 징역살이 과정은 누구보다도 교정공무원들이 잘 알고 있으며, 청송교도소의 교도관들 가운데는 탄원서를 써주겠다는 직원들도 많았지만, 모두 '윗사람'들 때문에 좌절됐다. 15년간 내가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안다면 재범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또 "나는 '대도'니 '의적'이니 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말하고 다닌 적도 없다"며 "나를 있는 그대로의 인물로 판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다음재판은 7월 3일 오후 2시 같은 법정에서 속개되며, 변호인이 신청한 증인 4명에 대해 신문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