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조약 10년' 무색한 2000년의 자화상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동절기 강제철거를 당해 지금은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치하의 이야기도, '문민정부' 시절의 이야기도 아닌 바로 지금 '국민의 정부' 아래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10일 오후 2시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열린 민가협 목요집회에서는 지금도 쉼 없이 발생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사건과 강제철거의 사례들이 소개됐다.
이적표현물 판매 혐의 등으로 구속된 홍교선(도서출판 책갈피 대표) 씨의 재판소식, 영남위원회 사건으로 구속중인 박경순 씨의 옥중투병소식, 지난 8일 국가보안법 위반(범민족대회 개최) 혐의로 구속된 박해전(범민련 남측본부 대변인) 씨 연행소식, 10년 가까이 공개적 활동을 해오던 청년단체 회원들이 이적단체구성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 등 국가보안법 사건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잇따랐다. 그리고 지난 1월 강제철거로 보금자리를 빼앗긴 서울 마포구 상암동 주민은 "오갈 데가 없어 서울시청 앞에서 보름이 넘게 노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털어놨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약칭 자유권조약) 및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약칭 사회권조약)에 가입한 지 10년이 되는 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학문 탐구와 사상의 소통이 여전히 범죄행위가 되고, 축구경기장을 짓겠다며 서민의 보금자리를 빼앗는 야만은 여전한 것이다.
민가협 상임의장 임기란 씨는 "여당 인권위원장을 만나 양심수들의 석방을 요청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표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더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잇속 앞에서 한 양심수의 생명과 가난한 서민들의 삶은 휴지조각만도 못한 게 우리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