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보안관찰 정당화 위해 악의적 음해
법무부가 인권사회단체 활동가를 비롯해 노동운동 및 재야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를 간첩이라고 주장해 인권사회단체가 분노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입장은 법무부가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한 활동가에게 내린 보안관찰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법원에 공식적인 문서로 제출한 것이어서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법무부는 지난 22일 보안관찰처분취소소송을 제기한 현정덕(인권실천시민연대 간사) 씨와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 앞으로 보안관찰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여기서 법무부는 "주한미군철수나 국가보안법 철폐 및 안기부해체 등은 원고(현정덕)를 비롯한 재야운동가 및 운동권학생들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이나 이들 주장은 북한에서 수십 년 동안 상투적이고 끈질기게 주장해온 것들"이라며 주한미군철수 및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주장하는 것이 마치 북한의 사주아래 진행되는 행위인 것처럼 설명했다. 법무부는 또 "남한 내에서 겉으로는 통일이니 민주화니 외치며 노동운동이나 재야운동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간첩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따라서 재야운동을 하고 있는 원고(현정덕)는 오히려 보안관찰의 지속적인 실시로 재범을 사전에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이러한 시각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말할 가치도 없는 악의적 모욕"이라며 법무부가 정부기관을 자처할 최소한의 자격마저 상실했다고 입을 모았다.
"재야운동가 간첩 많다" 비방
현정덕 씨가 몸담고 있는 인권실천시민연대는 성명을 발표해 법무부의 시각을 "악의적 음해"라고 규탄하고 "한국의 인권운동이 북과 어떻게 연계돼있는지를 밝히지 않거나 공식적 사과를 해오지 않는다면 법무부는 물론 정부여당에 대한 대대적인 규탄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진보연대의 홍석만 씨는 "법과 인권의 주무부서라 자칭하는 법무부가 군사독재시절에나 통용되던 냉전적 논리를 가지고 우리사회의 인권운동과 재야운동을 바라본다는 것은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러한 법무부의 인식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나 국가인권기구 설치 등 당면한 민주 개혁과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가협의 남규선 총무 역시 "국가보안법 철폐, 안기부 폐지 등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으로 그러면 UN도 간첩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냐"며 "이렇게 천박한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법무부 등 정부부처에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민주화가 아직도 진척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법무부는 인권사회단체의 비난이 점점 거세지자 "공식적인 입장"이라던 처음 입장을 철회하고 "작성 사무관의 의견"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 문건의 최종 담당자인 법무부 김진수 검사는 "오해를 살만한 내용이 있다는 비판은 수렴하겠지만 이 문장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며 인권사회단체의 사과요구를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