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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 즐거운 물구나무 ◀ 다리 좀 오므려 주시겠어요!


옆 좌석에 앉아 있던 40대 가량의 남성은 당황하고 불쾌한 듯한 표정이었다. 좀 전까지의 태평한 표정에서 울그락 불그락해진 얼굴, 작지만 거친 중얼거림. 다름 아닌 "다리 좀 오므려 주시겠어요!"라는 말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말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 편하게 좌석에 앉아서 가게 됐다는 것보다는 지금까지의 불쾌감을 알려줬다는 후련함에 한결 가뿐한 기분이 된다.

"다리 좀 오므려 주시겠어요!" 지하철이나 좌석버스, 극장 등 좁은 좌석이 연결되어 있는 공간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경험을 되돌아보면, 바로 '말하기 어려운 상황'과 연결된다.

특히 30분씩 혹은 1시간 이상을 낯 모르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있을 것을 생각하면 자리를 찾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여성들은 좌석을 찾아 앉을 때 우선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옆 좌석에 누가 앉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30분 이상 되는 긴 시간을 자칫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 있든지, 아니면 도중에 앉는 것을 포기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낯을 붉히며 대판 싸움을 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사숙고'의 1순위는 옆 좌석의 성별. '다리 벌리고 앉은 남성'을 피해서 마음 편한 자리를 찾는 것이다.

'다리 벌리고 앉은 남성'에게 불편을 자연스럽게 말하고 고쳐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이상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주변 사람의 불편을 배려하거나 혹은 타인의 시선을 생각해서 '다리 오므리고 앉기'를 요구받아 본 적 있을 리 없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불편을 호소'하는 것은 바로 '봉변'의 위험을 무릅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큰소리 치며 '뭘 잘못했냐'고 말하는 적반하장 말이다.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사람'이 여성이거나 나이 어린 남성일 때와는 달리 나이 많은 남성이라서 느끼는 '말하기 어려움'은 바로 좌석버스의 비좁은 공간에도 존재하는 나이와 성별에 따른 사회적 억압 관계이다.

'다리 벌린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다리를 오므려 달라'고.. 그리고 '다리를 오므려 달라'는 말이 못 들을 말이라도 되는 양 '놀람'과 '불쾌감'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비좁은 자리에서 주위 사람을 위해 다리는 마땅히 오므리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