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날로 심각해지는 빈곤의 현상이 여성에게는 어떤 모습을 띠는지 3.8여성의 날을 맞아 살펴본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정부의 공식통계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 홈리스 여성, 성매매 여성, 여성 이주노동자의 빈곤문제를 3회에 걸쳐 싣는다.
아이엠에프로 상징되는 98년 이후 한국사회가 경험한 극단적 빈곤은 '실직노숙인의 증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 되었다. 실직노숙인의 다른 말은 '실업상태에 놓인 남성노상생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빈곤은 여성이라고 비껴가거나 봐주지 않는 법. 노숙여성에 대한 성폭력 등 선정적인 언론의 보도가 있었지만 극단적인 빈곤에 이른 여성에 대한 관심과 지원체계는 남성노숙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여성이 경험하는 극단적 빈곤
갈 곳 없는 여성들을 위한 쉼터 '화엄동산'에서 일하는 임동숙 씨는 "홈리스를 '거리' 노숙인으로만 한정해서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며 "정부의 노숙인 대책은 쪽방이나 여인숙, 쉼터 등 불안정한 주거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 씨는 '노숙'과 같은 '극단적인 빈곤'을 경험하는 방식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경험이 매우 다르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경우 성폭력의 위험 등으로 노상생활을 하기에 매우 힘겨운 조건이라는 것. 또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더라도 여성들의 경우 곧장 '거리의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모순적이게도 남성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여성에겐 노동과 주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불안정한 일자리가 존재한다. 찜질방, 식당, 다방 등 서비스업종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삶이 결코 노상생활보다 낫다고 단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조건에 놓여있는 여성에 대한 실태 파악이 전무하다는 것뿐이다.
홈리스 개념 확대해야
유엔은 '집이 없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옥외나 일시적인 보호시설 또는 여인숙 등에서 잠을 자는 사람 등 안정된 주거공간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을 홈리스의 개념에 포함시키고 있다. 유엔이 홈리스를 이렇게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지원체계는 거리 생활인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임 씨는 우리사회에서 홈리스 여성으로 "가정폭력을 경험한 후 갈 곳이 없는 여성, 경제적 대안 없이 40-50대에 남편과 이혼·사별 등을 경험한 여성, 정신과 마음의 병이 커져 병원을 전전하다가 가족마저 포기해 쉼터를 오가는 여성"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직업이 없고, 지상에 방 한 칸이 없으며, 이들을 지지해줄 사회적 관계망이 무너졌다는 공통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임 씨는 "단지 노상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을 홈리스의 범주에서 제외시키고 정책을 세우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며 "홈리스 여성을 단지 거리생활인으로 국한시킬 경우 오히려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가난한 여성에 대한 정책은 부재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현재 임시보호소, 쪽방, 여인숙 등 불안정한 주거공간에는 일자리를 구해도 높은 주거비를 감당할 수 없는 홈리스 여성들이 불안정한 노동과 주거 상태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사회적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이들이 겪는 정신·심리적인 소외감은 물질적인 어려움과 동시에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온다.
빈곤의 굴레를 씌우는 사회
이처럼 여성을 가난하게 만드는 구조는 무엇일까? 여성을 빈곤한 삶으로 내모는 첫 번째 이유는 성 차별적인 고용환경에 있다. 전체 노동자의 6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 7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은 단순노무, 행상, 하위 서비스직 등 주변적인 노동에 종사하며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저소득과 예측할 수 없는 소득에 의존하는 삶이 여성을 쉽게 '빈곤'으로 내쫓고 있음은 분명하다.
두 번째 이유는 성 차별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지적할 수 있다. 사회보장권이란 노령, 질병, 재해 등으로 인해 적정한 소득을 유지할 수 없을 때 국가의 조치에 의해 적절한 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권리를 향유하는데 있어서 남성·여성이 동등하게 혹은 권리를 쉽게 침해받은 사람에게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차별적이다. 국민연금 수급자 중 남성은 82.6%, 여성은 17.4%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은 전일로 일하는 남성노동자를 기준으로 구조화되어 육아나 자녀양육으로 임금노동을 중단하거나 연기할 가능성이 높은 여성은 연금혜택을 불리하게 적용 받거나, 남성처럼 노년기의 소득보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젠더에 기반한 빈곤 정책 필요
우리 사회 빈곤의 얼굴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한 쪽이 거리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한 쪽은 자살을 하거나 창고인지 부엌인지 분간할 수 없는 구석에 몸을 누이는 모습도 있다. 노숙만이 우리사회 빈곤의 상징을 나타내는 것일 수 없듯이 정부의 대책 역시도 다양하게 포진된 빈곤층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 전체 빈곤가구 중 여성가구주 비율이 67.4%나 되고, 소득수준도 빈곤 남성가구주의 67.5%에 불과한 현실을 주의 깊게 고려한다면 빈곤을 없애는 방식에 있어서 젠더(인지적 성)에 기반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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