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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여성노동자의 경험을 노동의 이름으로 말하라

노동 환경의 안전을 얘기할 때 손님과 거래처 직원에게 성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포함되어 있을까. 스토커에 의하여 피폐된 심신을 이끌고 다시 직장으로 출근하여 가해자와 얼굴을 맞대야 하는 레즈비언 여성의 고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작업장 곳곳이 턱으로 막혀 있기 때문에 휴게 시간에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기는커녕 화장실 한번 다녀오기에 급급한 지체 장애 여성의 속도를 고려해 보았을까. '어머니'라는 이름 아래 온갖 희생을 강요당하면서도 정작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받는 가사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을까. 전국인권활동가대회 준비모임은 19일 노동사목회관에서 '노동과 차별'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여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고자 했다.

일상을 지배하는 여/남, 비장애/장애, 동성애/이성애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는 노동시장에 그대로 투영되어 사회적으로 현존하는 차별을 강화한다. 자본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면서 좀더 차별에 익숙한 이들을 찾아 일자리를 없애고 임금을 나눈다. 이에 여성 노동자들은 법적
보호의 테두리에서 한 발씩 멀어지며 비정규직, 비공식의 이름을 부여받는다. '모성' 에 대하여 찬양하며 여성들에게 출산과 양육을 책임지라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 달리, 생리휴가 무급화와 육아휴직 시 40만원에 불과한 임금지급 등에서 도드라지듯이 모성보호를 사회적 책임으로 환원하려는 노력은 지극히 미미하다.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 강조되지만, 임금을 환산하는 가치의 기준은 고학력·사무직·남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앞세워 정해진다.

특히 이날 포럼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시장에서 취약한 환경에 처해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여성들에게 부과되는 가사 노동이 현저히 저평가 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지현 활동가는 "집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감정 노동과 보살핌의 노동을 비롯, 여성 노동자들이 실제로 굉장히 많은 노동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으로 간주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학을 가르치는 조주은 씨 역시 "가사 노동이 가족애의 실현이라는 허울 아래 당연시되고 있다"며 "여성들의 노동권과 가족노동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당수의 여성 노동자들이 간병인, 간호사, 텔레 마케터 등 가사 노동과 유사한 성격의 직종에 종사한다. 그런데 여성들이 감정과 보살핌을 수행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져있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을 감싸고 있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환경이 정당화되어 결과적으로 여성 노동권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 씨는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모성본능 이데올로기가 자리한다고 진단했다. 여성들에게는 희생과 부드러움을 앞세운 모성이 마치 타고난 것처럼 여겨져,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고통이 수반된 가사 노동이 여성의 역할인 냥 치부된다는 것이다. 조 씨는 "육아의 사회화를 통하여 보살핌의 노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가족 내에서 가사 노동을 평등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1순위로 으레 여성 노동자들이 꼽히지만 실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노동이란 말속에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이 녹아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