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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류정순의 인권이야기] 사각을 찾아서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제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임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에 방치된 수급권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 이유로는 홍보부족으로 인해 수급권자들이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 수급권자들이 가족간의 비밀이나 다른 여죄가 심사과정에서 드러날 것이 두려워서 신청을 기피하는 경우, 주민등록이 말소된 경우 등도 일부 있으나, 신청과 조사과정에서 정밀한 조사 이전에 일선 읍·면·동사무소의 담당자가 부정적인 답을 한 후 신청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 돌려보내거나 소득인정액 조사를 정밀하게 하지 않은 채 대강 추정소득을 부과시킨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부설)전국빈민상담 네트워크본부'에 급여상향조정이나 탈락자 구제를 요청한 사람의 90% 이상이 결국 급여를 더 받거나 수급자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인구가정과는 탈락자 구제나 급여상향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SOS 상담 핫라인(hot line)' <1688-1004>를 작년 봄에 개통했다. <1688-1004>로 전화를 하면 전국 234개 시군구 중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가까운 시군구에서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상담사업에 대한 예산이 편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상담요원이 파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1688-1004>에 전화를 해보면 구청에서 기존에 쓰던 전화에 이 hot line을 연결해 두었기 때문에 전화 근방에 있는 공무원이 아무나 받는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부서의 담당자에게 연결을 해준다. 이에 대하여 보건복지부 인구가정과의 담당공무원은 담당부서에 연결해 주는 업무를 하는데 무슨 전문가가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동사무소 담당자와의 실랑이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구청 담당자와 설전을 벌인 후 결국 SOS전화를 걸면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시 조금 전에 설전을 벌이던 사람에게 연결시켜 주는 것이 'SOS 상담 핫라인' <1688-1004>를 통한 이의신청 및 심사청구 제도의 현실이다.


포기를 권하는 사회

민간기관의 상담원이 동사무소 담당자에게 "이 사람은 자격요건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왜 수급자로 책정해 주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담당 공무원은 "신청을 하지 않고 갔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대구에서 아사한 후 장롱 속에서 발견된 4살짜리 아이의 아버지 또한 수급신청을 하러 갔으나 장애판정에 필요한 사진을 제출하라는 말을 들었을 뿐 기초생활보장 신청을 하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는지, 그것이 자신에게 해당되는지 잘 모르는 수급권자가 동사무소에 찾아가서 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하면 그것은 바로 신청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의 담당 복지사는 단지 장애판정만 요청한 것으로 간주했는데, 전국 어디서나 담당 복지사의 태도는 대부분 그러하다.

한국의 제도는 빈곤의 원인이나 근로능력 여부를 추궁하지 않고 단지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 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일반부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담당복자사는 정중하게 상담을 하고, 상대의 주장을 잘 들어주는 것 같아도, 마지막에는 신청서를 건네지 않고 상담만으로 귀가를 권하는 것이 유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일반부조주의가 선별주의, 제한주의로 변화했다. 한국의 제도 시행은 "신청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있다" 혹은 "전부 신고하였는가를 체크할 필요성이 있다"고 신청자를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것은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므로 1원이라도 낭비를 해서는 안된다는 '혈세주의'로 설명된다.

일반인들은 표적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 사생활이 침해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기초생활보장 신청자와 그 부양의무자는 금융거래 상황을 샅샅이 다 조사해도 좋다는 '금융정보제공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의심받을 것을 각오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포기하며 신청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한국제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이러한 조사를 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기초법에 근거한 생존권보장의 신청단계가 이러한 것이다.


사각 줄이기

사각지대에 방치된 수급권리가 있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국과 같은 선진국은 필요한 서류양식이 관공서에 마련되어 있어 필요한 서류양식을 직접 작성하여 제출할 수도 있고, 우편이나 이메일 신청 혹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신청하는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먼저 신청서를 제출한 후에 상담을 받는 형태로 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8조에는 "수급권자가 구두로 이의신청을 하면 보장기관의 공무원은 이의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법규정대로 수급권자의 이의신청을 도와주는 공무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정이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이의가 있는 경우에 구두로 이의 신청을 하면, 담당자뿐만 아니라 옆자리의 다른 공무원까지 가세하여 비난 한 후 돌려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법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은 제대로 시행해야만 할 것이다. 정부와 정부기관이 법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누가 법을 따르겠는가? 그리고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법과 법의 정신을 제대로 제도운영에 반영하지 않는 현장을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여 개선으로 연결되도록 적극적으로 활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셋째, 수급권자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급을 받고 있는지는 수급율(Take-up Rate)을 통해 알 수 있다.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수급율을 조사해 공표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생활보호 수급율은 1970년대에 24%, 1980년대에 24%, 1990년에 10%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수급율을 조사·공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수급율을 조사·공표함으로써 제도시행 현황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소득수준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사람들 모두에 대하여 생계급여를 제공할 의향이 있다면 이 3가지는 반드시 개선해야만 할 것이다.
덧붙임

류정순 님은 한국빈곤문제연구소 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