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12일 단병호 의원 외 16명의 의원들이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아래 파견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같은해 11월 29일 국회 환노위에 상정되었지만 3년이 넘게 국회에서 표류중이다.
2004년 당시 정부는 현행 26개 업종에 한해 파견을 허용하는 포지티브 리스트를 없애고 대신 일부 금지 업종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을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파견기간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1년 늘리고 중간에 휴지기간 3개월을 두며, 파견기간이 끝나면 사용자에게 고용의무를 부여하고,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면 고용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 노동부의 원안이었다. 이후 파견법을 둘러싸고 폐지냐 개정이냐라는 노사간의 쟁점은 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문제로 옮겨갔고 파견법 폐지는 명목상의 요구로 밀려났다.
파견법이 시행된 지 9년, 파견법폐지안이 국회에 3년째 계류되어 있고, 2000년부터 수많은 간접고용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와 파견법 철폐, 직접고용 쟁취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2006년 11월 30일 파견법은 ‘비정규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날치기로 개악되었다.
파견법 제정의 역사를 기억하자
1998년 2월 20일 오랜 논란 끝에 파견법이 제정되어 같은해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근로자 파견이라는 고용형태는 파견법이 제정되기 전부터인 1980년대부터 벌써 존재하고 있었다. ‘직업안정법’은 “자기가 고용하는 근로자 또는 자기의 지배관계에 있는 근로자를 공급계약에 의해 타인에게 사용시키는 것”을 ‘근로자공급’으로 정의하고, 이러한 근로자공급사업은 노동부장관의 허가를 얻은 노동조합을 제외하고는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제33조 제1항). 따라서 대개의 파견업체들이 ‘용역계약’이나 ‘도급계약’의 형식으로 불법적 근로자파견사업을 해왔다.
노동계가 오랫동안 반대해왔던 노동자파견제의 합법화 시도는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투쟁에 의해 계속 입법이 보류되고 있다가 1996년 5월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통과 사태로 노동계의 총파업에 직면하게 되자 파견법과 정리해고제 입법화의 문제는 다시 가라앉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12월 5일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자금지원 합의내용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추가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고 결국 1997년 12월 24일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1998년 2월 중에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의 입법을 추진하기로 IMF측과 합의하였다고 발표했다. 결국 1998년 2월 9일에 노사정 사이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이 이루어지면서 6년여를 끌어온 근로자파견법의 제정 문제가 현실화 되었다. 결국 2월 20일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견법이 제정된다.
파견법은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1998년 파견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날치기 통과되어 시행된 지 9년이 되는 파견법은 통과 당시에도 수많은 반대와 우려를 남겼다. 그리고 9년 동안 시행되면서 벌어진 사태는 노동운동진영의 우려가 현실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9년의 경험을 우리는 ‘안정적인 일자리 파괴’와 ‘노동기본권의 무력화’, 그리고 ‘저임금· 주기적 해고·노예노동의 확산’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지난 9년 동안 파견법 6조 3항 “2년 이상 계속 사용한 파견노동자는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 직접고용의제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용업체가 파견노동자를 교체 또는 해고해왔다. 이는 2년 주기 해고뿐만 아니라 단기파견의 확산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불법파견은 규제되고 있는가? 그동안 정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감독을 방기했을 뿐 아니라 정부 기관에서도 공공연하게 불법파견이 자행되어 왔다.
파견제의 합법화는 불법파견을 규제하기는커녕 반노동적, 반인권적인 간접고용 사용을 정당화시켜주었다. 파견제가 새로운 취업기회를 보장해 주리라는 자본의 논리는 철저한 기만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정규직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된 자리는 파견용역노동자들로 채워졌고, 외주·용역, 분사화를 통해 정규직의 일자리는 급속하게 간접고용화 되고 있다. 정규직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기간제법으로 인해 기존 계약직 일자리도 급속하게 파견용역 노동으로 대체되고 있다. 근로자파견제는 정리해고제와 함께 일상적 구조조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파견용역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이란 장식물에 불과하다.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도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가 교섭회피 수준을 넘어서는 집요한 노조와해 공작과 탄압을 가한다는 점은 최근 가열찬 투쟁을 하고 있는 코스콤 비정규지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요구는 파견법 철폐, 직접고용 보장, 원청의 사용자책임 인정임을 잊지 말아야
불법파견이라 함은 겉으로는 도급이나 용역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청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불법의 당사자는 원청과 파견업체 모두이다. 하지만 불법파견임이 발견되면 피해를 당하는 것은 바로 파견노동자들이다.
그러나 불법적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문제를 피해가고, 오히려 노동자들만 계약해지의 피해를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법이 파견법이다. 현행 파견법 아래에서는 합법파견이든 불법파견이든 파견노동자는 보호받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파견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1998년 이전 노동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직업안정법의 노동자 고용보호가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간접고용은 금지되고,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조항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원청사업주에 의한 부당노동행위 금지를 포함하여 노동법상의 사용자책임을 확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요구였다.
파견법은 개정 대상 아니라 폐지 대상
그렇다. 우리의 요구는 파견법 폐지였다. 그러나 비정규보호법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파견법이 개악되었다. 폐지해야 한다고 법안을 올리고 투쟁했건만 돌아온 것은 파견 대상업무의 확대였다. 그러나 개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정규보호법 후속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파견대상 업무의 전폭적 확대를 꾀하고 있다. 한번 만들어진 악법은 개악에 개악을 거듭해 파견제도의 확대로 나아가고 있다.
정권과 자본의 공세로 법이 더욱 더 개악되고 있는 현실에서 파견법 폐지가 어렵다면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듯하다. 이러한 입장들은 비정규법안 폐기 투쟁 과정에서도 많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물론 한번 만들어진 법을 폐지하기란 쉽지 않다. 현실의 노동-자본 간 역관계 속에서 파견법 개악도 막아내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파견법 폐지가 가능하겠냐는 무기력은 우리 투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것은 2007년부터 시행된 비정규악법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파견법은 아무리 제한 규정을 둔다고 하더라도 ‘고용’과 ‘사용’의 분리로 인해서 사용자책임회피, 중간착취, 노동3권 무력화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파견법은 개정이 아닌 폐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파견법의 내용을 함께 담고 있는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파견법이 파견노동자를 아무도 보호할 수 없었듯이 비정규보호법도 태생 자체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은 비정규법 시행 이후 뉴코아·이랜드를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투쟁사업장을 통해 이미 다 드러났다.
지난 5월 노동부의 ‘비정규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 대표적 불법파견 사업장 기륭전자 조합원의 외침이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당신들 문자로 해고당해 봤어?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파견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하루아침에 해고하고... 누가 이런 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 파견법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냐고.. 보호해 줄 수 있다면 당장 나부터 보호하라고!”
그렇다. 이것이 파견법의 현실 즉 ‘비정규보호법’의 현실이다. 보호해 준다던 파견법 때문에 해고당했고 그 법으로 인해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한 것이 아닌가. 파견법과 그 내용을 담고 있는 비정규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이 아닌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 파견법 폐지안이 다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비정규노동자들은 없을 것이다. 아니 파견법 폐지안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잊히고 있는 파견법 폐지안은 비정규악법 폐기투쟁의 과정 속에 파견법 철폐 투쟁으로 다시 살려내야 한다. 아니 수많은 비정규투쟁 사업장의 투쟁을 통해, 그리고 비정규법 폐기투쟁을 통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덧붙임
◎ 유현경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