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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교육, 날다] 살만한 집에 살 권리는 어디로

인천민주노동자연대와 함께 한 주거권 교육



날개달기 -‘집’이 뭐지?

반이 넘는 노동자들이 집을 구하려고 대출을 받는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간에 그들은 직장과 가깝고 공공서비스시설과 밀접한 곳을 찾고, 자녀들의 교육과 관련된 곳, 공기가 좋고 교통이 편한 곳 등 여러 가지를 따져가며 집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조건의 집은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조건은 ‘돈이 얼마나 있는가’ 에 따라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인천민주노동자연대에서 하는 릴레이강의 중 주거권에 대한 교육은 노동자들이 살만한 집에 살 권리에 대해 고민하고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일상에서 부딪치는 집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고민하도록 준비되었다.

<B>더불어 날개짓1 - 살만한 집 빙고

빙고게임은 어떻게 보면 매우 진부한 게임이지만 막상 하게 되면 흥미진진해진다. ‘살만한 집 빙고’는 우리가 집을 구할 때 어떤 조건을 따져가며 구하는지 이야기를 꺼내보는 자리였다. 빙고게임을 시작하기 전, 다른 팀에 대한 묘한 심리전이 이어졌고 곧 이어 각자가 집을 구할 때 따져보는 조건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물이 잘 나오는지, 햇빛이 잘 드는지, 교통은 편리하며 직장과 가까운지, 주변 환경은 어떠한지, 이웃들은 좋은지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을 구할 때 고려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살만한 집 빙고'의 빙고판을 참가자들이 채우고 있다.

▲ '살만한 집 빙고'의 빙고판을 참가자들이 채우고 있다.


그렇지만 살만한 집에 살 권리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주거비부담, 즉 ‘가격’ 이야기는 의외로 한 팀에서만 이야기됐다. ‘가격’을 따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보다는, ‘가격’은 모두들 집을 구할 때 ‘따져보는 조건’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집의 조건들을 이야기하다보니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마주치게 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더불어 날개짓2 - 우리가 살 집은 어디에, 우리가 살 집은 어디로

이번에는 몇 가지 조건과 상황에 따라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각자가 이야기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바닥에 9개의 선을 그어놓는다.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적절히 보장되는 선을 기준선으로 해서 양쪽으로 눈금을 표시한 것이다. 상황이 좋아진다고 생각하면 한 칸씩 올라갈 수 있고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한 칸씩 내려올 수 있다. 사람들에게는 조건카드를 나누어 준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받은 조건이 처한 위치를 고민해보고 자리를 잡고 그 이유를 이야기해본다. 그 다음 몇 가지 상황의 변화를 제시하면 참가자들은 위아래로 움직인다.

<우리가 살만한 집은 어디로> 의 조건카드

○ 쪽방과 거리노숙을 오가며 인력시장에서 그날그날 일자리를 구하는 노숙인
○ 직장 근처에 월셋방을 얻어 출퇴근하는 금속산업 비정규직 노동자
○ 가정폭력을 피해 딸과 함게 집을 나와 쉼터에서 5개월째 지내고 있는 여성
○ 전셋집을 구해 애인과 동거하고 있는 동성애자 초등학교 교사
○ 청약예금에 돈을 적립,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
○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독립을 꿈꾸는 비혼여성 학습지 교사
○ 뉴타운 예정지역에 집을 한 채 더 사서 전세를 내주고 있는 중소건설업체 사장
○ 부동산 펀드로 재테크하고 있는 국회 건설교통위 의원

자신의 조건에 따라 첫 자리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곳에 자리를 잡았고 한명, 두 명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전 그래도 밑에 선 사람들보다는 형편이 좀 나아서, 청약예금도 들고 있고 전세아파트에 살고 있고, 또 공공부문 노동자니까 일자리 걱정도 많이 하지 않게 되고.”

“부모님과 같이 사는 비혼 여성은 그래도 집이 있으니까, 집구할 걱정은 없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해서 중간쯤에 섰어요.”
이 이야기가 나오자 여성 참가자들에게서 ‘헉’ 하는 반응들이 나온다. “니가 살아봤냐~” 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말이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비혼 여성은 굉장히 괴로울 수도 있잖아요. 집에서는 결혼압박, 밖에서는 독립하고 싶어도 살 집이 없고,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한 참가자가 답답한 마음을 보탰다.

우리가 살 집은 어디에, 우리가 살 집은 어디로. 참가자들이 직접 고민하고 움직여본다.

▲ 우리가 살 집은 어디에, 우리가 살 집은 어디로. 참가자들이 직접 고민하고 움직여본다.


각자가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한 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각자 살고 있는 동네가 개발되는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예상외로 노숙인 카드를 든 참가자가 위로 올라왔다.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 같아요. 그래서 한 칸 위로 올라갔어요.”
“그럼 쪽방이 개발로 인해 철거되면 어떻게 하시려고?”
“아, 그러네요. 그럼 다시 한 칸 밑으로~”

개발이 되면 일자리창출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널리 퍼져있다. 물론, 개발 사업이 진행된다면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결국 비정규직양산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정작 자신이 살만한 집에 살 권리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저는 조금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으니까 개발이 된다고 해도 별 걱정은 없는데 임대아파트 들어가는 조건이, 나 혼자면 들어가는데 지금 같이 사는 애인이 같이 들어갈 수 없으니까, 동성애자를 부부로 인정을 안 해주니까, 고민되죠.”

“전 공무원용 임대아파트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못 들어간 적이 있어요. 부양가족이 있어야 하고, 일정한 수입도 있어야 하고, 이런 조건들 때문에 점점 주거문제에 부딪치는 것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한 참가자가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맞장구를 쳤다.

양도소득세가 줄어드는 상황이 되자 비정규직 노동자 한 분이 이야기를 하신다.

“집을 살 돈도 없고, 팔아야 할 집도 없는데 양도소득세가 완화된 것과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양도소득세는 집을 사고 팔 때 나오는 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세금이다. 양도소득세가 줄어들면 집 사고팔며 돈 버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심지어 건설위원회 의원과 중소건설업체 사장은 계속 위로만 올라가다가 더 이상 올라갈 선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이 투기를 목적으로 더욱 많이 사고 팔리다 보면 집값이 계속 올라갈 것이고 월세나 전세도 따라서 올라가기 마련이니 결국 집 없는 사람들의 주거권 수준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집을 부동산투기와 재테크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현실에서는 양극화, 부익부빈익빈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프로그램을 마칠 즈음에는 그것을 참가자들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를 맞대어 - 우리가 고민해야 할 주거권은 무엇일까?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자 건설교통위위원을 조건카드로 가지고 있던 참가자가 이야기를 한다.

“전 사실 건설교통위 위원을 하면서 좀 짜증났거든요. 원래 이렇다는 거는 알고는 있었지만 우리의 상황이나, 내 상황과 비교하면서 보니까 짜증나죠. 미리 뉴타운 정보 알아서 땅 사고, 집 사놓고, 집 굴리면서 돈 벌고, 그래서 우리는 더 나빠지는데 막상 우리도 어떻게든 집을 사려고 아등바등하고...”

집은 딜레마다. 부동산 투기와 집값 폭등,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되는 집, 너무 많은 주거비를 투덜대면서도 우린 집을 사려고 목을 매게 된다. 그러나 너도나도 돈 모아서 집을 살 궁리만 하는 사이에 우리의 살만한 집에 살 권리는 오히려 밑으로 추락할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집단의 주거권 현실을 고민하며 같이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주거권 교육이 우리가 살만한 집에 살 권리를 고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집’이란 문제를 사회구조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