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대체로 한데 모아보면, ‘대체복무제를 허하라’는 구호로 요약된다. 총을 드는 대신, 공동체를 위해 다른 일을 하겠다는 주장이다. 이에 국가도 응답했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와 관련해 전향적인 제도마련을 촉구한 것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국방부가 단계적인 대체복무제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의 입장이 대거 번복됐다. 국방부는 대체복무제 도입방안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더욱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도입을 외치는 목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형국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이번 인권오름 ‘삶 세상’은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경수 씨는 2006년 7월 13일에 입대를 해야 했지만, 이튿날 병무청을 찾아가 병역거부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는 같은 해 11월 20일 병역법 제87조, 제88조를 위반한 죄로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기본권으로서의 양심의 자유, 그리고 국가가 요구하는 병역 의무
인권의 문제는 ‘공동체’의 경계에 갇혀 있지 않다. 인권이 보편성을 갖는다고 일컬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권과 국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바라본다면 쟁점은 명확해진다.
“저는 국가가 개인의 양심을 지켜주지 않으면, 무엇을 지켜주겠다는 것인지 역으로 질문하고 싶어요. 국가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 역할이 꼭 총을 들어야만 하는 일 밖에는 없는 걸까요?”
‘주관적인’ 양심과 국가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이행의무의 충돌문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거리다. 그러나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망설임없이 답했다.
“저는 ‘군대를 가기 싫다’는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군대를 가는 문제가 선택이 되기를 바라지요. 개인의 양심을 지킴에 있어 이렇게 많은 방어 논리를 필요로 하는 것 자체가 기형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한마디로 엄청난 사회적 스트레스에요. 따라서 저는 군대가 무섭다고 하면서 병역거부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때 진정으로 자유권이 보장될 수 있다고 봐요.”
틀을 바꾸기 전에 필요한 소통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국가기구의 반대논리는 견고하다. 또한 국가를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해 병역거부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반대를 표시하는 이들이 한국사회의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과의 소통문제에 대해 물었다.
“저는 사회적 정의에 대한 뚜렷한 기준은 없다고 생각해요.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이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각각 자신의 경험세계가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스무 살까지는 군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기존의 생각들이 쉽게 바뀌진 않을 것 같고, 적절한 계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결국 보수와 나의 신념이 다른 것은 저의 포지션(위치)과 그들의 포지션(위치)이 다르기 때문인 것이고, 이것을 맞춰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러한 과정이 바로 사회운동이라고 봅니다. 보통 ‘투쟁’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저는 이러한 표현도 군사주의의 산물이라고 봐요. 물론 여전히 보수주의의 틀이 견고하기 때문에 그 틀을 ‘이겨내는’ 과정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틀을 존중하면서 서로 터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요. 저는 평화를 지키면서 군대를 가겠다는 사람들의 입장도 존중하고 싶어요. 다만, 우선적으로 그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할 것 같아요. 현재 전문가들의 인식은 (일반 대중보다) 훨씬 더 높은 편이고, 법과 제도가 꼭 여론에 따라서만 바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에 기대를 걸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대체복무제 실현을 위한 사회적 논의 지형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의 핵심이라 할 ‘대체복무제’의 실현을 둘러싼 쟁점인 대체복무제의 운영방식, 사법부의 판결 등 사회적 논의 지형 등에 대해 물었다.
“처벌이 아니면 되고, (의무복무 기간의) 1.5배 정도가 되면 돼요. 사실 제 주변의 병역거부자들 중 대체복무 기간이 2배, 3배가 되든 불문하고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법률로서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대체복무제가 마련되길 바라고 있지요. 다만, 등가성 확보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고, 적어도 대체복무제 찬성하는 사람들은 일반 현역 군인보다는 힘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니까요.”
“한나라당도 원칙적으로 대체복무제의 논의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편이에요. 합리적으로 이 사안에 대해 생각했던 의원들은 그 대체복무의 강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입장을 취할지언정 기본적으로 대체복무제는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당장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는 것은 국방부 등의 헤게모니 다툼이나 정치적인 논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헌법재판소에서도 대체복무제 마련을 촉구하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고, 어쨌든 대체복무제는 마련돼야 한다고 봐요. 다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 그 제도가 마련될 것 같지는 않아요.”
“대체복무제는 병역거부 자체보다는 다른 차원에서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가령, 대만의 경우, 대체복무제가 도입될 당시 인구가 2000만 명이었고, 군병력이 40만 명이 넘었는데, 보수주의자들이 군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군 병력을 감축하면서 대체복무제가 도입된 거니까요. 한국도 사회적 자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대체복무 자체가 독립변수는 아닌 것 같아요.”
“대체복무제를 시행한 나라가 50개국이 넘고, 그 국가들 중 대체복무제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경우는 하나도 없어요. 모든 나라에 문제가 없었는데, 한국만 특수한 국가라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한국과 유사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이나 독일의 경우,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보다 안보상황이 열악한 대만의 경우에도 대체복무제를 인정했다는 점을 봐도 이러한 반대 주장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봐요.”
여론이 대체복무제의 ‘등가성’ 여부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재 군대의 인권현실이 그만큼 열악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에 내재한 군사주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렸다고 볼 수도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 교수는 군대에서 남성들이 가부장주의, 군사주의를 학습하는 기존의 관행을 병역거부운동을 통해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회학적 의미로 병역거부운동이 일단 반군사주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봐요. 많은 평화 운동가들이 병역거부 운동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박노자 선생님이나 한홍구 선생님의 경우 병역거부 운동의 큰 지지자로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병역거부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반군사주의라고 말했었고요. 군대가 동원체제를 구성요소로 하고 있고, 반군사주의는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병역거부운동이 반군사주의 운동, 탈근대주의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단일한 병역거부운동의 차원을 넘어 다양한 사회적 차원에서 동시에 변혁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병역거부운동이 어떠한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사회학하는 분들 혹은 사회를 분석하고자 하는 분들은 그러한 해석도 할 수 있다고 봐요.”
기존의 병역거부에서 한발 나아가 개인의 양심보다는 평화주의 쪽으로 더 나아가 진행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평화주의자라서 병역거부를 한다고 하면, 논의의 방향이 군대 존폐문제로 번지게 돼요. ‘평화를 주장하면서 병역거부를 한다면, 군대가 없어도 된다는 거냐’라는 반박이 돌아옵니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군대는 존재해야한다. 따라서 병역거부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문제의 본질은 대체복무제인데, 대체복무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소모적인 논의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따라서 병역거부 문제를 일단 대체복무제라는 결론으로 매듭지은 이후에, 비로소 다른 운동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병역거부운동을 넘어서는 고민 풀기
경수 씨는 병역거부운동의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병역거부운동이 군대․전쟁의 문제를 지적할 때, 일정한 한계를 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그는 군비축소운동을 제시했다. 적정 군사량, 군 인권 문제 등의 쟁점들을 내세워 군 문제와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현재 군대의 언어들, 군대의 구성요소들을 공부하고 있다.”며, “군대의 언어를 통해 군대와 대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현재 평화문제와 통일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자신이 처한 이 땅의 총체성들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그 고민의 연장선상으로 그는 주한미군범죄근절본부(이하 주미본)에서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는 경험적으로, 일상적으로 우리가 전쟁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그렇지 않나요. 북핵 사태가 벌어져도 아무도 최소한의 사재기조차도 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전히 한반도가 분단상태여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있죠. 저는 그것을 미군기지라고 봐요. 우리 단체는 미군범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평택 미군기지 이전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통일문제와 미군기지 운동이 다소 결을 달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에요. 주미본은 소개를 통해 알게 됐고, 저의 운동에 대해 고민해 보니 필요한 부분이 이 단체에 있다고 느꼈어요. 최소 3년 정도는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곳에 참여하게 됐어요.”
그가 언론과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여러 언론에 등장했다. ‘공인’으로서 그가 겪는 압박감은 상당히 내면화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 내내 그가 내놓은 답은 대체로 질문이 담아낼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넘어선 것이었다. 그 스스로도 “사람들과 만날 때 스스로 방어적으로 자세를 취할 때가 굉장히 많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질문할 것을 예상해 미리 답변을 했다. 그의 말처럼 “이런 불편함들이 오히려 드러나지 않는 더 커다란 문제점”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병역거부를 통해 자신의 삶이 더 건강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위 시선 때문에 더욱 건강하게 살아야 하고 더 민감해져야 하는 것에 대해 그는 “감사한다”고 했다. 또한 “인간에 대한 애정은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고도 했다. “척박한 현실에서 인간애를 포기하고 살면 허무주의자가 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인터뷰는 본래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 ‘한 개인’이 풀어낸 이야기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표상되는 ‘수백 명의 규격화된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즉 이 글은 각각의 고민과 배경이 있는 개별적인 삶들을 일괄적으로 규격화한 어느 현실에 대한, 한 개인의 증언이다.
덧붙임
상현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