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항상 인권감수성의 더듬이를 세우고 민감하게 단련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인권침해의 가해자 되기도 하고 혹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더위에 늘어져 버렸을지도 모를 인권의 세포들 하나하나에 생기를 불어넣어 보자.
날개달기
통합교육 도우미분들은 일의 특성상 인권옹호자와 약자의 위치를 수시로 오간다. 장애인 학생들의 활동을 보조할 때, 보조교사로서 학교 내 담당 특수교사들을 대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인권을 기준으로 한다면 많은 사람들과 좀 더 편안하면서도 동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7월 28일~31일, 성북지역 통합교육 도우미분들과 함께 그러한 인권의 기준을 세워보고자 머리를 맞댔다. 하루 3시간 30분씩 나흘 동안의, 흔치 않은 장기교육을 조금이라도 알차게 채워보고자 끙끙. 우선 인권에 대한 일반이해와 인권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고정관념 깨기’로부터 시작하여 둘째 날은 통합교육 도우미들이 만나고 있는 아동, 청소년의 인권을 들여다보았다. 아동들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며 보호보다는 아동의 자기결정권과 인권이 존중되어야 함에 참가자들 가운데 아이들 의견을 잘 들어준다며 뿌듯해하는 이도 있었다. 셋째 날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와 약자들이 형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차이와 차별, 그리고 차별이 강화, 고착되는 과정을 살피며 차별감수성을 기르고, 3일간의 인권의 조각들을 탄탄히 얽어 풍부한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소통의 길 찾기로 마무리. 물론 소통의 기술은 풍부한 인권감수성을 바탕으로 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인권의 가치를 이해하고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인권감수성을 흔드는 첫날의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더불어 날갯짓 1-‘자연스러운 것’들을 뒤집어 보기
인권에 흠뻑 몸을 담그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고정관념들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몸에 배어 고정관념인지조차 불분명한 관념들,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우리사회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시간. 참가자 2~3명이 한 모둠을 만들고 각 모둠에 이야기 쪽지를 나누어 주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참여자들은 동화에 그림을 그려 넣는 삽화가가 되었다.
아픈 할머니께 밥상을 차려오는 어린이, 학생회의를 진행하는 학생회장, 무용수가 꿈이었던 선생님과 트럭운전사를 꿈꾸는 학생, 고뇌하는 가장 등등.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성별을 부여받지 않았지만 그림으로 재구성되면서 밥상을 차리거나 무용수를 꿈꾸는 선생님은 여성으로, 학생회장이나 가장, 트럭운전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성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어떤 기준에 따른 선택이 아닌 여성이 할 일/남성이 할 일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작동되는 우리 사회시스템의 반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여성가장은 여전히 없는 듯하고, 더 이상 신문을 장식하지 않는 여성 학생회장은 아직도 낯설다. 그리고 이런 성역할 고정관념은 어느 순간 ‘여자가/남자가 말이야’로 변신하여 누군가에게 ‘여자답게/남자답게’를 강요할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자연스러운 것’들을 뒤집어보는 것으로 인권감수성 키우기는 시작된다.
더불어 날갯짓 2-인권과 일상의 화학작용
인권감수성 맛보기를 지나 각자의 관계망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들 각각에게 4절지를 나눠주고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망을 그려보도록 요청했다. 엄마, 딸, 고모 등 가족관계로부터 시작해서 믿을만한 친구, 교회 총무, 활동보조교사 등 사회적 관계로 관계망은 쭉쭉 뻗어 나갔다. 나의 관계망을 생각하면서 참가자들은 내가 가지는 다양한 정체성과 ‘내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구나’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중한 관계맺음의 가운데 나/너의 인권이 항상 존중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내가 상대적으로 우월하지도 그렇다고 항상 약자인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인권을 존중/침해했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내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침해했을 때는 언제일까? 참여자에게 각각 A4 한 장을 나눠주고 이러한 경험들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참여자들은 인권 존중/침해라는 말을 거리감을 느끼는 듯했다. 조금 말을 바꿔 ‘인권존중’은 ‘누군가 나를 존중해준다고 느꼈을 때’, ‘인권침해’는 ‘무시당하거나 모욕감을 느꼈을 때’로 설명하니 조금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유행할 뿐 우리의 생활 속에서 화학작용을 일으키진 못한 결과가 아닐까.
참여자들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경우가 인권침해이고 존중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참여자들의 통합교육 보조교사인 특성상 학교에서 다른 학교 선생님과 동등하게 대우받거나 자신이 전문가로서 존중받을 때 나의 인권이 존중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러한 인정과 지지, 칭찬이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한 경우라고 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의 일을 통해 인정받고 지지받을 때, 나의 존재감을 확인할 때 인권을 존중받았다고 생각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인권존중이 지지와 존중이라는 일정한 맥락 속에서 발견되었다면, 인권침해는 다양한 권력관계 속에서 드러났다. 참여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침해받은 사례들의 구조를 잘 들여다보면 그 안의 권력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특수교사/보조교사라는 지위에 의한 권력관계(학교 내 특수교사에 의한 보조교사를 차등 대우), 집주인/세입자라는 빈부에 의한 권력관계(전셋집 주인이 사전예고도 없이 집을 수리할 때), 남성/여성에 따른 권력관계(한 노숙인(남성)의 오해로 인해 (여성이)일방적으로 구타당했을 때), 그리고 그 사례에서 다시 남성 연장자/연소자라는 나이에 의한 권력관계(할아버지에 의해 노숙인이 구타를 멈추고 도망감), 어른/아이의 사이의 권력관계(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기, 협박하기) 등. 이처럼 인권침해는 다양한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작동함을 짚으면서, 노인에 대한 자리양보 및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등 우리가 인권과 혼동하기 쉬운 예절 및 도덕과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경험으로 인권을 반추하고, 사회현상들을 뜯어보면서 지식으로서의 인권이 아닌 실천하고 살아 숨쉬는 ‘인권’에 한걸음 다가서는 듯 보였다.
머리를 맞대고
이처럼 우리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우리는 우월한 위치에 있기도 하고 반대로 약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여기에 나열된 것 이상으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므로 몇몇 상황에 대한 이해를 넘어 침해가 발생하는 구조를 살피고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인권 감수성을 다듬고 현재의 모습에 질문을 던질 준비를 해야 한다.
덧붙임
묘랑 님은 인권교육센타 ‘들’의 활동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