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0일 용산 남일당에서 들렸던 그 절규가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쳐질 절규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법원 거리를 지날 때마다 ‘3000쪽 수사기록 공개’ 피켓팅을 하고 있는, 그리고 서울시청 별관 앞 스티로폼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전국철거민연합(이하 전철연) 회원들을 볼 때, 매일 매일 남일당 현장에서 진행되는 미사 소식을 메일로 접할 때, 100일/반년/200일 어느덧 실감나지 않는 숫자로 추모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내 일상에서 그 날의 용산을 어느 순간 잊고 있었다는 죄스러운 마음이 돋아난다.
1월20일, 그 날의 용산
다섯 명의 철거민이 죽었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1월19일, 그이들은 왜 망루에 오르게 되었을까?” 질문해보아야 한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생계를 꾸리며 살아가던 사람들, 어느 순간 동네가 개발된다는 소문이 나돈다. ‘하루아침에 길가로 나앉진 않겠지’란 생각은 갑작스런 불청객들에 의해 깨진다. 보상평가를 하겠다며 집과 가게로 찾아온 이들, 그러나 이 공간에서 생활하기 위해 쏟아 부은 돈과 시간, 마음에 훨씬 못 미치는 보상액을 제시한다.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 묻자 돌아온 것은 이 정도도 고맙게 생각하라는 퉁명스런 말 한마디.
불안감은 어느 날부터 깍두기 같은 용역 직원들이 동네에 상주하면서 공포로 바뀌었다. 오가는 주민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욕을 해댄다. 무서워서 어디 살겠냐고 대책도 없이 떠나는 이웃들을 보니 차라리 안 좋은 꼴 보지 않게 떠날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 떠날 수는 없겠다 싶어 찾아간 구청은 생떼 쓰지 말라 하고, 용역들의 괴롭힘에 못살겠다 싶어 부른 경찰은 오히려 용역의 편에 서서 방조한다. 더 이상 호소할 곳도, 호소할 의미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올라간 망루. 그러면 그나마 절박함을 이해해주고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들어줄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살려고 올라갔기에 죽어서 내려오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망루에 올라간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새벽, 경찰은 대테러진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특공대까지 투입하며 무리한 진압작전을 벌였다. 안전사고를 대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진행된 강제진압은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진실
7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개발로 인한 주거권, 생존권의 침해가 철거민들을 죽게 한 구조적 원인인데도,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뉴타운, 개발 광풍 소식들.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이들을 폭력으로 짓눌러 직접적으로 죽음으로 내몬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은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또다시 반복되었다. 경찰에 면죄부를 줬던 검찰은 수사기록 3000쪽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면서 구속 철거민들이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권리를 방해하고 있다. 장례조차 치루지 못하고 있는 용산의 상황을 알리며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을 요구하러 거리로 나서는 유족들에 대한 폭행도 서슴지 않고 있다. 여전히 용산에서 죽은 철거민들을 추모하는 모든 집회는 가로막혀 있다.
변한 것이 없는, 오히려 잘못한 이가 뻣뻣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잔인한 현실을 마주해야만, 넘어지는 것을 반복해도 끈질기게 변화를 향한 갈망에 동참해야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들이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가 나서 철거민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진실의 꽃으로 살아나기 위해
10월18일 용산 국민법정이 열린다. 우리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휘두르는 이들을 더 이상 가만둘 수 없기에 국민법정을 열어 우리가 나서 잘못을 짚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 한다. 철거민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할 대통령, 서울시청, 용산구청, 경찰, 검찰, 건설업체, 용역, 조합을 피고인으로 소환하고 심판함으로써 용산에서 잃어버린 정의를 다시 세우고자 한다.
국민법정은 법적 효력은 없지만 주권자인 우리, 권리의 담지자인 우리가 직접 권력의 인권침해를 낱낱이 파헤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법이 무력한 시대, 오히려 법이 가해의 도구가 되는 시대에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심판대일수도 있다. 그래서 국민법정에서 피고인 소환을 함께 할 기소인과 피고인들에 대한 심판을 함께 할 배심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국민법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리의 시민․정치적 권리를 더욱 확장해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의 가치와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한다.
가해를 시인하게 하자!
어쩌면 현실에서 우리같이 힘없는 약자들에게 법정은 무섭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그래도 법정에 설 때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명한 침해가 있을 때가 아닌가. 게다가 비극의 원인에 책임이 있는 권력자들은 근본적 성찰은커녕 오히려 이런 시스템을 비호하고 강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법정’에서 그들을 단죄하고 처벌해야 하지 않겠는가. 낱낱이 세상에 고하는 것, 그게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되찾고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세입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게 하는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 맞설 우리의 힘을 키우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알아야한다, 우리의 권리를.~ 너희는 시인해야 한다. 너희의 인권침해를. 이것이 되지 않는 한 어떠한 정책의 개선도, 사법적 정의도, 이를 집행하는 이들의 양심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지 않겠는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야 하는 세상을 넘어 더 이상 “여기 사람이 있다”고 울부짖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내딛는 이 한 발짝의 여정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한다.
덧붙임
민선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