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4대강 사업의 공정률이 벌써 30%를 넘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사업은 어쩔 수 없다고 손을 놓을 때는 아니다. 설령 100% 완공을 했더라도 돌이켜야 할 것은 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강은 사람들 사이로 흐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강에 마음이 붙들려 꼬물꼬물, 들썩들썩 무언가를 하고 있다. <인권오름>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해야 할 이유를 묻지 않으려고 한다. 안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 이상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강을 따라 흐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작은 이야기들이 강물처럼 모여 흐르게 될 것을 믿는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신은혜 님(아래 르네)은 멋쩍어 하면서도 설레는 목소리로 반겼다. 까르르 웃을 때는 더 없이 해맑은 목소리와 얼굴을 가진 르네는 대학교를 다니다가 휴학 중인 20대 초반의 여성이다. 자기 소개를 부탁하자 “열시쯤 자서 아침 열한 시에 일어나고 밥 두 끼 먹으면 하루가 끝나는 ‘잉여’생활자”라고 소개했다.
“공간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데, 그 동안 너무 일직선으로만 힘들게 달려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대학 오면 끝인 줄 알았는데 경쟁은 끝이 없더라고요. 난 이제 됐다, 좀 쉬면서 세상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학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양평에서 자연과 함께 살던 추억이 있어서 그런지, 자연과 어우러지는 공간디자인 건축을 연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건축 잡지를 보면 엄청 큰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놓고 자연스럽다거나 표면이 ‘내추럴’거나 하잖아요. 모티브만 자연에서 따면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그 환경에서 나는 소재들로 집을 짓고 대지에서 어울려 살 수 있는 집이 자연스러운 집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쪽으로 연구하고 싶었어요. 휴학하고 나서 입시공부랑 미술공부 외에 바깥세상을 보다 보니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찾게 됐어요.”
공간에 대한 고민에서 4대강 사업 반대로
르네는 2008년 촛불 때 대운하 얘기를 들으며 이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시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스물스물 ‘4대강’으로 이름이 바뀌어 얘기가 나오자 르네는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 나눔문화>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세미나를 했다고 한다. 스스로 잘 알아야 입장도 분명해지고 다른 사람에게 잘 얘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김정욱 교수의 논문을 읽으며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진 후부터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반대하게 됐다고 한다.
“그 전에는, 뭔지 몰라도 강을 개발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고, 불가능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이걸 어떻게든 하려는 게 실감나고 진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세대든 미래 세대든 자연을 위해서 이건 안 된다고 생각이 바뀌고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도 된 것 같아요.”
“팔당 농민 분들이 삼보일배 할 때 같이 가서 하고, 낙동강에서 지율스님과 순례를 함께 하기도 했고, 이포보나 금강 사업 현장에 가서 공사 하는 걸 보면서 피켓도 들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팔당 농민 분들이랑 가장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 지내는 분들이라서요. 그 분들이 농사짓는 걸 내가 먹으니까, 그 전에도 우리가 사먹는 게 없어진다는데 어떡하나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팔당에 계속 공권력이 투입될 때 같이 농성하던 분이 연락주면 찾아가고 그러면서 가까워졌어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는 것과 반대를 위한 행동을 시작하는 것 사이는 의외로 멀었다. 하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것은 한 걸음 거리에 있었다. 그러자 또 새로운 길이 열렸다.
“‘잉여들의 낙동강 순례’를 다녀왔어요. <시사인>에서 우연히 기사를 봤어요. 방학인데 바쁘다고 공부만 하지 말고, 4대강 잘못됐다고 말만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반대하는 운동을 하자는 짧은 인터뷰 기사였어요.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갔지요. 안동에서 부산까지 3주를 걷는데 일주일씩 하는 사람도 있고 쭉 걷는 애들도 있었어요. 저는 상주에서 대구까지 일주일 걸었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걷다가 열한시쯤 되면 땡볕이니까 정자나 마을회관 얻어서 좀 자고, 할머니들 계시면 안마도 해드리고, 밭일도 도와드리고, 밥도 얻어먹고, 다시 떠나서 마을회관 얻어서 자고 그랬어요. 공사현장을 쭉 돌았는데, 강에 발 한 번 담글 곳이 없더라고요. 공사 현장을 직접 막지는 못했지만 마을 돌면서 어르신들이랑 4대강 사업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방 쌓으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얘기 나누고 공감도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얘기도 하고 그러는 게 좋았어요.”
순례를 하는 동안 큰 도시에 가면 일주일동안 찍은 사진들을 뽑아서 판넬을 만들고 현장에서 바로 사진전을 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마음에 드는 사진에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하면서 사업의 실상을 알렸다. 순례가 끝난 후 순례단에 참여했던 친구들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그 판넬을 가지고 가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순례를 다녀온 후 르네는 조금 더 재미있게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르네는 “이제 그냥 삶에 녹아나서 생활이 되는 것 같아 즐거워졌어요.”라고 변화를 설명했다.
‘잉여’가 이어준 행동
“‘잉여들의 낙동강 순례’ 커뮤니티에 한 친구가 ‘팔당 에코토피아’ 포스터를 퍼 날랐어요. 와, 재밌겠다, 그것도 우리 동네라니, 그래서 신청했어요. 일단 힘들었어요. 비가 그렇게 많이 올 줄 몰랐어요. 밤에 막 도랑을 파서 천막을 치는데 처음이라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참 좋았어요. 작은 거에 감사하게 됐달까? 시원한 물이 콸콸 나오는 것도 감사하고 옥수수가 있다는 것만도 감사하고요. 그동안 자동차나 에어컨이나 필수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더러우면 빗자루로 쓸고 차 없으면 자전거 타고 다니고, 다 같이 도우면 적은 소유로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를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실천해야겠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르네는 팔당 유기농지 인근의 양평에서 살았는데 지역의 농민 분들과 친해진 건 팔당 에코토피아에 참가하고 나서다. “에코토피아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게 되니까 더 친해지더라고요. 저만 보면 ‘신원리 사는 친구래’, ‘아이구, 여기까지 어떻게 나왔어? 집에 갈 길이 머네.’ 이렇게 농담도 하시면서 얼굴도 많이 텄어요.” 팔당 에코토피아에 참여하면서 르네의 삶으로 강이 더욱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강은 삶 자체를 대안적으로 바꾸는 물길을 만들었다. “지율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새만금을 막고 고속도로랑 터널 뚫는 걸 막았으면 4대강도 안 나왔다. 정부만 문제가 아니라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의 사고관과 익숙해진 생활이 문제다.’ 당장 사업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삶을 작은 것부터라도 바꿔가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에코토피아에서는 그 가능성이 넓어진 것 같아요. 다 손으로 만들어서 하는 것 보니 나중에 이렇게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르네도 4대강 사업에 계속 관심을 가지며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율스님처럼 계속 강 옆에서 파괴되는 걸 보게 되는 건 아니니까, 안 와 닿을 때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이야기 나누는 것도 쉽지는 않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면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애들도 힘들어하는데, 얘기할 때 한숨만 쉬고 말게 되요. 마음이 무겁다고 얘기하는 친구가 있어서 어디 순례 갈 때 같이 가자고 얘기는 하는데 같이 하기 어렵더라고요.”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닥칠 재앙은 정부의 4대강 청사진만큼 선명하지 않다. 엄청난 홍보 물량을 자랑하며 쏟아져 나오는 정부의 선전물들은 하나같이 투명한 강물과 주위의 번쩍거리는 빌딩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역사도 없고 자연도 없다. 수십 년 수백 년을 돌아보고 내다보며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려는 시도는 ‘인간’이라는 종에게는 너무 어려운 과제일까.
“팔당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예순다섯 정도 되신 한 아저씨가 말씀하셨는데, 팔당 댐이 생기기 전에는 두물머리 일대가 얕고 유속이 느려서 자갈이 많고 한양 왔다 갔다 하는 배들이나 상인들이 많이 오고 번성하던 지역이었대요. 우리 동네에도 남한강이 잠기면서 동네가 사라진 사람들이 이주한 공동주택 같은 게 있는데, 옛 추억이 있는 어르신들 중에도 찬성하는 분들이 많은 듯해요. 관심 없는 분들도 많고요. 저희 집은 남한강 안쪽으로 2킬로미터 정도 들어와서 있는데 댐이 생겨서 물이 고이니까 안개가 많이 끼고 잘 걷히지 않아요. 아침에 창밖을 보면 자욱하지요. 정부에서는 ‘안개비료’라는 걸 나눠줘요. 해가 잘 안 들어서 농작물이 안 되니까, 작물피해를 막기 위한 거죠. 이런 피해가 있는데도 별로 관심이 없고, ‘그냥 잘하겠지’, ‘지금처럼만 살면 돼’,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댐을 만든다고 개발을 해서 오히려 지역이 쇠퇴한 건데 오히려 보상 심리로 개발을 원하는 분들도 있고요”
늘 ‘현재’를 흐르는 강, 그리고 삶
르네에게도 강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물장구 칠 엄두가 안 나는 곳, 안개만 뿌옇게 자욱한 곳. “낙동강 순례 갔다 오니까, 강이 이런 게 아니구나, 알게 됐어요. 동네 분들이랑 얘기하다 보니 예전에는 강이 얕아서 강 건너편 조그만 학교를 강 건너 다녔대요.” 그러나 순례를 다녀온 르네에게 강은 부쩍 가까운 곳으로 다가왔다. “강이 멀리 있지 않아요. 밥상에 오르는 것 하나 하나가 강이 없으면 먹을 수 없는 것들이예요. 강을 포함한 모든 자연이 순환하니까 그 속에서 제가 이렇게 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모내기를 하는데, ‘볍씨 한 톨에서 어떻게 이렇게 모가 자랐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걸 키우는 무언가가 있구나, 어린 아이들이 기어 다니다가 커서 걸어 다니는 게 인간의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 더 큰 자연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환에서 강을 없애 버린다면 순환이 안 될 거고 우리 삶도 피폐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강에 대해 어떤 기억들을 가지고 있을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 ‘강’을 기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미 빼앗겨왔기 때문이다. 한강에 더위를 피하러 나온 사람들이 물장구를 치던 장면은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개발은 과거를 덮어버릴 뿐만 아니라 미래를 막아버린다. “걱정되는 건, 나중에 공사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잘됐다’, ‘놀기 좋겠다’, 이러고 오는 거예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한강변에서 자전거 타고 그러지만 안개가 많이 끼는 이유는 모르잖아요.”
르네는 자신에게로 강이 왔던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순례를 권한다. 하지만 시간 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줄은 이미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익히 알고 있다. 그래서 관심이라도 많이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저도 힘들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면 좋겠어요. 4대강의 문제점을 알리는 기사도 많으니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참여도 하게 되고 같이 할 사람도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주위에 같이 할 사람이 없었다면 저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것 같아요. 같이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삶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하게 되고,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잠깐 멈춰 서서 보게 되요. 그리고 <나는 반대한다>라는 책도 권하고 싶어요. 조목조목 따져 읽다 보면, 이렇게 상식적인 걸 왜 우리는 잊고 사는가 싶어져요.”
막상 듣고 보면 아주 작은 일들이다. 책을 읽는다거나 기사를 본다거나 하는 일들은 출퇴근 길 지하철 안에서 약간의 여유만 낸다면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이 작은 행동이 어디선가 또 물꼬를 틔울 것이다. 그것은 강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우리들 사이로 흐르는 강을 만나는 것이다. 차라리 삶을 위한 것이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꿈틀꿈틀 움직였던 르네에게, 강이 다른 삶을 꿈꿀 여유를 만들어주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좀더 ‘잉여롭게’ 살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잉여가 되면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잉여가 있어야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가 가진 것 돌아보고 삶을 즐길 수 있잖아요. 친구들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예요. 다들 취직 걱정하느라 휴학 생각 하다가도 뒤쳐질까봐 못 하고 자기를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지죠. 그런데 경쟁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으니 더 잉여롭게 살아도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경쟁사회 속에서 살다보면 남이 좋다고 하는 게 내가 좋아하는 게 되어버리고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게 되면서 타인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게 되잖아요? 시간을 내는 것 자체로 여유가 생겨요. 잠깐 머물러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되지요.”
덧붙임
미류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